EDM과 가십걸로 태교한 이야기

해꿈이 다이어리 5 - 태교 편

by 곽재혁

소개로 만난 우리 부부는 첫 만남이 이루어진 지 4개월 만에 결혼했다.

두 사람 모두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긴 나이에 만났던 관계로, 느긋하게 연애를 즐길 여유 없이 결혼행 고속열차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연애 기간이 마냥 허투루 흘러가버린 건 결코 아니다.

우리는 비록 짧았지만, 그래서 외려 더 드라마틱하고 로맨틱한 사랑을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2015 워커힐 봄꽃 축제


우리는 '2015 워커힐 봄꽃축제'에서, 당시에는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든 핵인싸 아이템이었던 허니버터칩(우리의 첫 데이트를 위해 피터소아과 고 간호사 님이 특별 공수해서 제공해주었다.)을 까먹으며 첫 데이트를 했다.


린다 매카트니 전 - 2015년 5월 5일, 대림 미술관


그리고 만난 지 30일째 되는 날이었던 어린이날엔, 그 무렵 한창 뜨는 동네였던 서촌을 산책한 후 대림 미술관의 린다 매카트니 전을 관람했다.


이태원 '글램 라운지'


첫 키스는 당시에 가장 핫했던 라운지 바 '글램'에서….


서울 재즈 페스티발 2015


대망의 프러포즈는, 2015 서재페에서 '존 스코필드 우버잼 밴드'의 공연 도중에 했다.


결혼식 - 2015년 8월 9일, 남산 제이그랜하우스


꿈결처럼 지나가버린 결혼식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시월의 첫 주말,


포시즌스 호텔 서울 - 2015년 10월 3일


그랜드 오픈 3일 차였던 포시즌스 호텔 서울에서 우리 딸 채연이가 잉태되었다.




아내 입장에선 위의 과정이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겠지만, 사실 그 모든 건 나의 치밀한 계획 하에 이루어졌음을 고백한다.


한데 그 가운데는, 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그해 2월에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티켓 2매를 얼리버드 할인으로 예매할 당시만 해도, 그 공연에 누구와 함께 가게 될지 전혀 몰랐던 나였다.



예매한 후에도 8개월의 기다림이 필요했던 그 공연에, 나와 백년가약을 맺은 진짜 내 사람과 같이 가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따로 있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에 다녀온 지 얼마 후, 우리 부부는 채연이가 우리에게로 온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빈 필 공연에 갔을 당시에 이미, 채연이가 엄마의 뱃속에 잉태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우리는 채연이의 태명을 원래 '빈필이'로 지었더랬다. 그런데 임신 중반기에 접어들어 채연이가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 태명을 빈필이에서 해꿈이로 바꾸게 된 것이다. 빈필이라는 태명은 주변인들의 반응이 썩 좋지 않았던 데다, 왠지 사내아이 이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쯤에서, 채연이의 탄생 전후로 일어난 상서로운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행운목 꽃 - 2016년 3월, 피터 소아과


채연이가 엄마 뱃속에 있었던 2016년 3월에는 피터 소아과 앞 복도에 둔 행운목 두 그루에서 꽃이 피어났다.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행운목 꽃은 행운을 가져다주는 꽃이라고 알려져 있다.


산세베리아 꽃 - 2016년 8월, 피터 소아과


채연이 백일을 앞둔 2016년 8월에는 산세베리아 꽃도 피어났다. 이 꽃 역시 행운목 꽃만큼이나 보기 어려운 꽃이라고 했다.


'이건 분명 신의 계시야!'


우리 가족은 채연이의 탄생 전후로 피어난 이 두 꽃을 범상치 않은 행운의 징조로 여기며, 필시 채연이가 장차 비범한 인물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어머니가 즐겨 찾으시는 총각 도사님께서 이미 채연이가 잉태되기 전부터 예언한 바가 있었다. 그 예언인즉슨, 우리 부부가 대단한 인물을 자식으로 두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총각도사의 예언에 사뭇 고무되었던 우리 부부는 우리에게 찾아온 생명을 큰 인물로 잘 키워내야 한다는 모종의 사명감 같은 걸 느꼈다.

따라서 우리는 태교에서부터 한 치도 소홀히 할 수가 없었다.


W Seoul / Aloft Gangnam / Glad Yeoido / Four Points Namsan / Westin Chosun


내가 휴가를 마음 놓고 쓸 수 없는 개원의인 탓에 남들 다 가는 태교여행 한 번 못 간 대신, 서울 시내의 호텔을 돌며 여행 기분을 냈다.



그리고 뱃속에 있는 우리 딸에게 예쁜 것만 많이 많이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그해 봄에 피어난 봄꽃이란 봄꽃은 다 찾아다니며 구경했다.



음악은 아무래도 클래식을 많이 들려줬다.

하지만 이동하는 차 안에선, 짧은 연애 기간 동안 우리가 함께 즐겨 듣곤 했던 EDM을 주로 들었다. 엄마가 즐거우면 뱃속의 태아도 즐거울 거란 생각에서였다.

그래서인지 채연이는 아빠·엄마만큼이나 흥이 많다. 그리고 만 세 살도 안 된 나이에, 비트가 아주 빠른 퓨전 그루브 트랙인 ITZY의 「달라달라」를 곧잘 따라 하는 놀라운 리듬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 게 바로 태교의 힘일까?




태교 한답시고 좋은 곳 예쁜 곳 찾아 너무 많이 싸돌아다닌 탓이었을까?

임신 30주 차에 방문한 산부인과 진료실에서, 우리는 주치의로부터 이런 경고를 듣게 된다.


"아기가 주 수에 비해 약간 밑으로 내려와 있네요. 주의를 요합니다. 무리한 동작이나 활동은 피하고, 외출을 자제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날부터 우리 부부는 별수 없이 칩거를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 내가 퇴근만 했다 하면 어김없이 새로운 볼거리와 먹거리를 찾아 어디론가 떠나곤 했던 우리 부부에게 외출 금지는 이만저만한 고행이 아니었다. 우리는 저녁 먹은 후부터 잠들기 전까지, 소파에 앉거나 누운 채로 TV를 보면서 시간을 죽여야 했다.


칩거하는 기간 동안 영화나 실컷 볼 요량으로 IPTV 내 영화 정액제 서비스에 가입을 했는데, 막상 두 사람이 함께 재미있게 볼 만한 작품을 고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서비스 안에 포함된 영화와 시리즈물 중에서 유일하게 부부간에 의견 일치를 보인 드라마는 다름 아닌 미드 '가십걸'이었다.

아내는 시즌 1까지, 나는 시즌 4까지 본 상태였지만, 우린 그냥 처음부터 정주행 하기로 합의를 봤다.

몰입도 높은 막장 스토리에 영혼을 저당 잡힌 채 멍하니 빠져있다 보면, 우리 앞의 시간이 순삭 되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었다. 더구나 이 드라마는 우리 신혼여행지였던 맨해튼의 추억을 상기시켜주기도 했다.



사실, 엄마 뱃속에 채연이를 품은 채 이 콩가루 개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에 대한 우려가 없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즐거우면 태아도 즐거울 거라는 자기 합리화를 여기에도 적용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왕 자기 합리화로 빠진 김에 정신승리성 행복회로를 좀 더 돌려보자면, 우리 채연이가 세레나 밴더우드슨만큼 매력적이면서 블레어 월도프처럼 똑똑한 여성으로 자라났으면 좋겠다.

아울러, 서로 살벌하게 물고 뜯으며 싸우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엔 둘도 없는 한 편이 되는 두 사람 사이 같은 인생친구가 채연이에게도 생겼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그렇다고 저 둘이 그랬던 것처럼 베프의 남친을 빼앗는다거나 남자를 서로 바꿔치기하며 사귀는 행위 같은 건 절대 안 됨!




모체가 행복해야 태아도 행복합니다.

태교는 즐겁게!


[커버 이미지 : https://www.instylemag.com.a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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