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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Nov 15. 2020

동서고금 당구에 얽힌 이야기들(1)

첫번째 이야기: 이야기를 시작하며

요즘 국민 스포츠로 떠오르고 있는 당구. 특히 캐롬(carom) 당구 분야에서는 우리나라는 이제 당구 왕국,  아니, 세계의 당구 종주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 당구의 대세는 캐롬 당구보다는 포켓볼로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여전히 포켓볼이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영국이나 홍콩 등에서는 포켓볼의 사촌 쯤 되는 스누커(snooker)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으며, 시합에 걸려있는 상금도 어마어마하다. 이에 비해 캐롬 당구를 즐기는 국가는 상대적으로 적은 듯하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당구라면 압도적으로 캐롬 당구이다. 포켓볼이 설치되어 있는 당구장도 드물 뿐만 아니라 즐기는 인구도 적다. 세계의 당구 세력 판도를 보면, 캐롬 당구보다는 포켓볼이 압도적이라 할 수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캐롬 당구가 거의 국민 스포츠화하고 있다. 이런 사정이니 우리나라가 캐롬 당구의 종주국, 캐롬 당구의 성지가 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비록 아직까지는 캐롬 당구 분야에서도 세계 톱 레벨의 선수들 그룹에서는 유럽 선수들이 앞서가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많은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고 있으므로, 우리 선수들이 세계 정상권을 독점할 날도 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세계에서 아마 우리나라만큼 당구장이 많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 2018년 연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14,167개의 당구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4,167개라는 숫자를 들으면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많은 숫자인지 잘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이 숫자를 실감하기 위해 우리 주위에 흔히 이용하거나 볼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업소들과 비교해보도록 한다. 

우리가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편의점이다. 편의점의 수는 전국적으로 42,820개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편의점 3개꼴로 당구장이 하나씩 있는 것이다. 여관과 모텔도 전국 어디에나 있는데, 이 숫자는 모두 23,565개이다. 중국 음식점수는 24,546개이고, 치킨점은 36,791개이다.  PC방은 11,869개이고 노래방은 33,426개, 세탁소는 32,109개이다. 이렇게 보면 전국의 당구장 수 14,167개는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이다. 


당구장이 이렇게 많으니, 당연히 당구를 즐기는 사람 수도 많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당구 단체에서는 우리나라 당구 인구가 1천만 명이라고 한다. 아무리 자기 영역의 사람 수를 과대하게 부풀리는 것도 좋지만, 이건 내가 생각해도 너무 큰 뻥이다. 뻥도 적당히 쳐야지, 너무 크게 치면 사람들이 믿어주질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 당구채널 등에서도 아나운서나 방송 출연자들이 태연히 우리나라 당구인구가 천만 명이라고 떠들고 있으니, 한심한 생각도 든다. 


한번 생각해 보시라. 우리나라 인구 5천만 명 중에 여자가 그 절반인 2천5백만 명이다. 여자들 가운데 당구치는 사람은 정말 거의 없을 것이니, 계산의 편의상 여자들은 당구를 안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거기다 남자들 중에서 중학생 이하에서 당구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터이고, 80세가 넘어서 당구를 치는 사람도 아주 드물 것이다. 이렇게 현실적으로 당구에의 접근 자체가 안되는 사람들만을 제외하더라도 남는 사람은 천만명 좀 넘는 정도일 것이다. 


그렇게 남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당구를 치는 사람에 비해서는 치지 않는 사람의 숫자가 훨씬 많다. 무슨 근거로 당구인구가 천만명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참고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한 <국민여가활동조사> 통계를 보면 2018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15세 이상 인구 가운데 13.3%가 지난 1년 동안 한번 이상 당구장에 가 본적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여하튼 당구 단체의 주장이 좀 뻥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당구가 성행하고 있다는 자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당구가 이렇게 성행하고 있으니, 직접 당구장에 가서 당구를 치며 즐기는 것도 좋지만, 당구에 얽힌 이야기를 한번 알아보는 것도 당구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재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많은 사람들이 당구를 즐기지만, 당구를 소재로 한 이야기 거리는 많지 않다. 기껏해야 영화에서 건달들이 모이는 장소라든지 건달들끼리 패싸움을 하는 무대로 잠깐 등장할 뿐이다. 많은 국민들이 당구를 즐기다보면 당구에 얽힌 이야기도 많을 듯한데, 그런 건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당구 역사가 오래된 미국에서는 허슬러(The Hustler)와 같이 당구를 소재로 한 영화도 있고, 당구를 둘러싼 소설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허슬러 이외에도 당구를 주제로 한 영화로는 <볼티모어 불릿>(1980년 미국), <도돈보리 강>(1982년 일본), 키스 숏(1989년 미국), 풀홀 정키즈(2003년 미국), <파이널 허슬러>(1983년 이태리), <넘버원>(1984년 호주), <컬러 오브 머니>(1986년 미국), <나인>(2000년 일본), <공작 여자 허슬러 수사관>(2007년 일본)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제작되었다. 일본만 하더라도 당구를 소재로 한 영화는 물론, 소설, 만화까지 적지 않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당구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 없는 듯하다. 

나는 바둑을 좋아한다. 바둑을 두는 것도 좋지만 바둑을 둘러싼 이야기를 보거나 듣고, 또 친구들과 바둑에 얽힌 이야기를 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바둑 책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바둑의 수를 가르쳐 주거나, 바둑 고수들이 둔 바둑을 소개하면서 두어진 수를 하나하나 해설해주는 책들이다. 이러한 책들은 바둑 실력을 높이는데 도움을 준다. 당구로 치면 당구교본 같은 것들이다. 당구의 인기가 높아지다 보니 서점에 가면 당구교본은 적지 않게 보인다. 그리고 유튜브에 들어가면 당구교습에 대한 수많은 동영상들이 있다. 이런 책들이나 동영상은 모두 당구실력을 높이는데 도움을 준다. 


바둑 책으로 또 다른 종류는 바둑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들이다. 여기서는 바둑은 언제, 어떻게 생겼으며, 바둑에 관해 옛날에 어떤 이야기가 있었고, 또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에서 바둑 승부에서 어떤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준다. 바둑을 소재로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를 풀어나간다. 즉, 이것은 문하로서의 바둑을 이야기해주는 책들이다. 


얼마 전에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신의 한수>라는 바둑 영화나 <미생>이라는 웹툰 모두가 바둑 실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둑을 둘러싼 이야기를 해주는 영화이고, 만화이다. 바둑실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문화로서의 바둑을 이야기해주는 작품들이다. 당구도 마찬가지다. 영화 허슬러나 그밖에 당구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나 만화 등은 모두 문화로서 당구를 즐기는 작품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문화로서의 당구를 소재로 한 읽을거리나 볼거리가 거의 없어서 안타깝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데, 집에 틀어박혀 별로 할 일도 없으니, 앞으로 9회에 걸쳐 이런저런 당구 이야기나 하면서 보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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