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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Nov 15. 2020

동서고금 당구에 얽힌 이야기들(2)

두 번째 이야기: 당구의 탄생

자, 지금부터 슬슬 당구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먼저 먼 옛날 당구의 유래에서부터 더듬어보자.  


당구란 무슨 어떤 게임일까? 당구를 한자로 <撞球>로 쓴다. 당(撞)은 “치다, 찌르다”라는 뜻이며, 구(球)는 말할 것도 없이 공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당구>란 “(큐로) 공을 찌르는 놀이락” 혹은 “(큐로) 공을 치는 놀이”라는 뜻이다. 


당구란 말은 서양에서 발명된 “빌리어드”(Billiard 혹은 Billiards)란 놀이가 일본에 수입되면서, 일본인들이 이것이 큐로 공을 찌르는 놀이라 해서 당구라 이름을 붙였다. 빌리어드는 영어로 A Billiard 혹은 복수형 명사로 Billiards라 쓰기도 하는데, 주로 복수형 명사인 빌리어즈로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마 여러 개의 공을 사용하여 즐기는 게임이라서 복수형인 빌리어즈로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빌리어드는 구한말에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그리고 또 게임이 대중화된 시기는 일제 강점기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빌리어드”를 일본말 그대로 “당구”라 부르게 되었다. 당구(撞球)란 한자를 일본식으로 발음하면 “도큐”가 된다. 빌리어드가 일본에 수입된 초기 무렵에는 일본에서 당구를 도큐(撞球)와 함께 “타마쯔키”(球撞き 혹은 玉突き), 즉 “공 찌르기”라고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당구, 즉 도큐란 말은 옛날에나 많이 사용했던 말로서, 현재에 와서는 이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 빌리어드, 그러니까 일본식 발음으로 “비리야도”라고 한다고 한다. 


그럼 빌리어드란 놀이는 언제, 어디서 처음 생겨났을까? 그게 잘 알 수가 없다. 대부분의 놀이나 스포츠가 그렇듯이 빌리어드도 언제 어디서 처음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빌리어드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어, 어떤 사람은 중국에서 또 어떤 사람은 이태리에서 처음 생겼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외에도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에서 생겨났다고 하는 주장도 있어 어디가 정확한 발생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빌리어드가 “팰맬”(pall mall)이라는 놀이에서 생겨났다는 설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팰맬이란 십자군 전쟁에 참전한 유럽의 병사들이 중동 지방에서 배워온 공놀이라 한다. 팰맬은 동근 돌을 작대기로 쳐서 원추같이 생긴 목표물에 맞추는 게임이라고 한다. 팰맬이 중동에서 전래되었다는 이런 주장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팰맬과 비슷한 게임은 고대 그리스에서 성행하였기 때문에 굳이 빌리어드의 근원을 따지자면 그리스가 그 발상지라고 주장한다. 옛날 그리스에서는 원추같이 생긴 기둥을 세워두고, 거기에 둥근돌을 봉으로 쳐서 맞추는 경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팰맬 게임

그런데 여하튼 팰맬이 중동에서 시작되었건, 아니면 그리스에서 시작되었건 간에 잘은 모르겠지만, 빌리어드가 팰맬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략 의견이 일치하는 것 같다. 팰맬은 크로켓이나 골프와 비슷한 게임이다. 작대기로 공을 쳐서 정해진 목표를 몇 번 만에 맞추는가 하는 게임이라고 한다. 빌리어드의 선조인 팰맬이 옥외 스포츠이니까 굳이 따지자면 빌리어드도 원래는 옥외 게임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빌리어드가 스페인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옛날 스페인에서는 “비롤더”라는 놀이가 있었는데, 이 놀이는 작대기로 공을 굴려, 2개의 공 사이에 넣은 경기였다고 한다. 이 비롤더가 “빌라루더”란 말로 바뀌었고, 이것이 다시 “빌리어드”로 변화하였다고 한다. 여하튼 어느 주장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빌리어드의 조상이 옥외 게임이었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옥외 게임이었던 빌리어드가 실내 게임으로 바뀐 것은 프랑스였다. 


13세기 무렵 프랑스에서는 크로켓이라는 놀이가 성행하였다. 크로켓은 앞에서 말한 팰맬에서 나온 놀이인데, 이 크로켓은 게이트 볼의 원조이기도 하다. 크로켓은 작대기로 공을 쳐서 골문을 통과시키는 게임이었다. 잘 아시다시피 유럽 중앙에 위치해 있는 프랑스란 나라는 여름에는 푹푹 찌는 더위에다 겨울에는 대단히 추운 지방이다. 그리고 봄에는 심한 비와 바람으로 야외활동이 쉽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크로켓 놀이를 좋아하였지만, 날씨 탓으로 막상 크로켓을 즐길 수 있는 날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크로켓을 실내에서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어 프랑스에서는 13세기에 들어서면서 크로켓 경기가 실내에서 자주 행해지게 되었다. 이 때는 아마 날씨가 좋을 때는 옥외에서 크로켓 경기를 하고, 날씨가 나쁠 때는 실내에서 게임을 즐겼던 것 같다. 그런데 아무래도 옥외 게임인 크로켓을 실내에서 하자면 실내에 그만큼 큰 공간이 있어야 했다. 그러므로 거대한 저택이나 자기 성을 소유한 귀족들이 아니면 실내 크로켓을 즐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크로켓을 실내에서 하게 되면 아무리 저택이 넓더라도 아무래도 장소 상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옥외에서 할 때에 비해 간소하게 이루어졌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옥외 크로켓 게임과 거의 같으면서 좀 더 콤팩트하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 고안되었을 것이고, 이러한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 크로켓을 테이블 게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15세기의 프랑스 국왕인 루이 11세가 크로켓 게임을 몹시 좋아했는데, 그가 전천후로 그리고 좀 더 콤팩트하게 크로켓을 즐기기 위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크로켓 테이블을 만들도록 하였다. 이것이 현대의 빌리어드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현대 빌리어드의 탄생은 프랑스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지도 모른다. 루이 11세는 봉건주의적 질서에서를 타파하고 절대 왕권의 틀을 닦은 강력한 프랑스 국왕으로서, “권력의 화신”이라고 까지 불렸다. 그런 그가 빌리어드라는 새로운 놀이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이다. 우리 당구 애호가들은 루이 11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나?  

루이 11세와 초기의 빌리어드

루이 11세가 빌리어드 테이블, 즉 당구대를 실내에 설치한 때가 1469년이었다. 처음으로 만들어진 빌리어드 테이블은 돌로 만든 판에 천을 깔고, 한가운데 공을 떨어트리는 구멍이 한 개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실내 게임이 된 빌리어드가 그 당시 프랑스 상류사회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왕을 비롯한 귀족들이 너도 나도 빌리어드 게임만 즐기다 보니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 지경이었다 한다. 그래서 루이 11세를 이은 다른 프랑스 왕이나 교회에서는 빌리어드를 “죄 많은 게임”이라고 배척하게 되었고, 이 놀이를 금지하기까지 하였다. 


16세기 중 후반은 프랑스에서 종교전쟁의 진행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급박한 외부 정세와는 달리 프랑스 궁정에서는 빌리어드 게임이 점차 틀을 잡아갔다. 1571년 프랑스 국왕 샤를르 9세의 왕실 예술가였던 도 비니가 실내 크로켓, 즉 빌리어드 게임에 대한 간단한 규칙을 만들었다. 이렇게 프랑스에서 빌리어드 테이블과 게임의 규칙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빌리어드의 시초는 프랑스라는 설이 유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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