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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Mar 16. 2023

영화: 달기(妲己)

중국 상나라의 마지막 왕비 달기의 이야기

어릴 때 길을 가면서 보이는 영화 포스터 가운데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중에 하나가 달기(妲己) 포스터이다. 당시 제목은 <비련의 왕비 달기>라고 기억하는데, 그때 아이들이 그 포스터를 보면서 <비련의 왕비 딸기>라며 웃던 생각이 난다. 


먼저 영화 이야기를 하기 전에 달기(妲己)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자. 중국의 첫 왕조는 하(夏)로서 요순시대에 이어 우왕이 세웠다. 이때가 기원전 2070년이라고 하는데, 500년을 조금 못 미쳐 내려오다가 17대 왕인 걸왕의 대에 이르러 폭정으로 인하여 상(商) 나라에게 멸망하였다. 그런데 이 하나라는 전설상의 왕조로서 역사상 정식 왕조로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상나라는 하나라를 멸망시킨 탕왕에서부터 시작하여 기원전 1046년까지 근 600년을 이어온 중국 역사상 가장 긴 왕조이다. 상나라도 이전에는 전설상의 왕조였으나, 그 후 이를 입증하는 사료의 발굴로 지금은 역사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니까 상나라는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중국 최초의 왕조이다. 상나라는 은(殷) 나라라고도 하는데, 30대 왕인 주왕에 이르러 주나라 무왕에 의해 멸망되었다. 달기는 바로 상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의 아내이다. 


달기는 희대의 악녀로 기록되고 있다. 주왕의 폭정이 극에 달하였는데, 이는 대부분 달기가 그를 꼬드겨 한 일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주왕과 달기는 사람들을 고문하는 것을 즐겨, 숯불 위에 기름을 바른 구리 기둥을 걸쳐놓고 그 위를 죄수들이 걷게 하거나, 구덩이를 파 죄수들을 독사와 전갈과 함께 집어넣어 괴로워하는 것을 즐겼다고 하니 그 악랄함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많이 쓰이고 있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는 말도 그들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향락을 즐겨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를 숲처럼 달아놓고 먹고 마시며 즐겼다고 하는데서 유래된 말이다. 

영화 <달기>는 주왕과 달기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일생을 다룬 작품으로서, 우리나라와 홍콩의 합작으로 1964년에 제작되었다. 이 영화에는 지금 돌이켜보면 한국과 홍콩의 쟁쟁한 배우들이 총출동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시 최고 스타였던 신영균이 주왕 역으로 출연한 것을 비롯하여, 남궁원, 김승호, 최은희 등의 톱스타도 출연하였다. 한편 홍콩에서는 당시 인기 정상을 누비던 린다이가 달기 역을 맡았으며, 이후 방랑의 결투, 심야의 결투 그리고 최근에는 와호장룡에도 출연한 바 있는 첸페이페이, 영화 스잔나로 온 나라를 울렸던 리칭 등이 출연하였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서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달기는 희대의 악녀로 평가받지만, 이 영화에는 그녀는 충신의 딸로서 주왕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주왕을 멸망시키려는 의기에 찬 여인으로 나온다.   


상나라의 주왕은 군사들을 동원하여 주위의 국가들을 모두 발아래에 복속시킨다. 수많은 군대와 전차가 등장하는 전투 신은 60년이나 지난 그 시대에 어떻게 저런 웅장한 스케일의 전쟁신을 촬영할 수 있었나 하는 감탄마저 든다. 주왕의 전쟁에 이기고 돌아오자 수많은 공물들이 주왕에게 바쳐진다. 그런데 어느 한 지역에서 보낸 공물이 영 시원찮다. 그것을 보고 주왕이 기분이 언짢아하고 있다. 

왕의 명령으로 그 간신은 그 지역을 찾아간다. 그 지역을 다스리는 관리를 찾아가 공물이 왜 그렇게 부실하냐고 따지자, 관리는 3년 연속 흉년이 들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며 이해해 달라며 사정을 한다. 이때 관리의 미모의 딸(달기, 물론 ‘달기’는 황비가 된 후의 호칭이며, 이때는 다른 이름이 있었다.)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간신은 그녀의 미모에 혹하여 그녀를 자신에게 달라고 한다. 그러나 달기는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이어 화가 난 간신은 돌아가서 주왕에게 그 지방관리가 왕을 업신여겨 변변찮은 공물을 보냈다고 모함한다. 


주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그 관리 일족을 모두 처단하라고 한다. 왕의 군대가 관리의 집으로 쳐들어와 가족들을 모두 죽이자, 혼자 남은 달기는 자신도 자결하려 한다. 그러자 달기를 모시던 시녀가 반드시 부모의 복수를 해야 한다면서, 끝까지 살아남아 주왕을 멸망시켜야 한다고 간언을 한다. 이에 그녀는 자살을 포기하고 주왕에게 다가간다. 이때부터 그녀의 시녀는 전략가로서 달기를 적극 보필한다. 


달기의 미모를 보고 주왕은 넋이 빠졌다. 당장 그녀를 후궁으로 삼고, 이제 그녀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준다. 달기는 시녀의 조언에 따라 계략을 써서 왕비를 쫓아내고 자신이 정식 왕비가 된다. 달기를 옆에 두고 주왕은 매일같이 주지육림의 방탕한 생활에 빠졌다. 자신이 즐기기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충신을 죽여 그 간을 먹기까지 한다. 심지어는 달기에게 하늘의 달을 따준다고 거대한 탑을 건설하는 공사까지 시작한다. 바벨탑에 버금갈 정도의 탑이다. 

이제 달기는 백성들에게 원성의 대상이 되었다. 어느 날 자객(남궁원 분)이 달기를 암살하려 그녀의 방에 침투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달기가 궁으로 오기 전에 장래를 약속하였던 연인이었다. 그가 달기를 죽이려는 순간 시녀가 나타나 달기의 진심을 이야기해 준다. 그제야 진실을 알고 돌아가려는 순간 주왕이 군사를 끌고 와 자객을 체포한다. 주왕은 자객과 달기의 관계를 의심하여 자객을 죽여 그의 고기로 국을 끓여 달기에게 먹으라고 강요한다. 그러나 자객은 이미 달기가 손을 써서 탈옥시킨 후였으며, 죽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달기는 기지를 발휘하여 사람고기 국을 먹지 않는다. 


주왕의 폭정은 갈수록 심해진다. 드디어 그의 압정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봉기한다. 한 사람의 리더가 나타나 주위 여러 나라를 규합하여 상나라를 친다. 그 리더가 다름 아닌 달기의 옛 연인으로서, 달기가 탈옥시켜 준 바로 그 자객이다. 마침내 상왕조는 무너지고, 주왕은 처단당한다. 혁명군의 리더가 된 달기의 옛 연인은 그녀에게 함께 옛날로 돌아가자고 하지만, 달기는 너무나 많은 죄를 지었다고 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아주 스케일 큰 영화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수많은 홍콩 무협영화가 세계로 뻗어나가게 되지만, 이 정도 스케일의 영화는 본 적이 없다. 지금 보아도 아주 훌륭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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