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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n 15. 2023

영화: 맥아더(MacArthur),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맥아더 장군의 반평생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전세를 일거에 역전시킨 전공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그는 이미 태평양 전쟁 때부터 대일본 전쟁에서 미군의 총사령관으로서 활약하였다. 영화 <맥아더>(MacArthur)는 맥아더 장군의 일생을 드라마화한 전기 영화이다. 실존 인물에 대한 전기영화의 경우 당사자를 지나치게 미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영화도 그런 지적을 받을 수 있는 면이 많다. 그렇지만 전기영화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1977년 미국에서 제작되었다. 


진주만을 공격하여 태평양 전쟁을 도발하였던 일본군은 필리핀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필리핀에서 육군 지휘자로 있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에 의해 본의 아니게 오스트레일리아 방어와 보병의 보강을 명령받는다.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의 병력은 생각보다 훨씬 허약하여 처음부터 다시 훈련을 시켜야 하였다. 그때 필리핀에 남은 부하 웨인라이트가 이끄는 병사들이 일본군에 항복하자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한다. 오스트레일리아에 가까운 뉴기니아 전선에서 보병을 투입하여 승리를 이끌어 내었지만,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루스벨트는 하와이로 맥아더를 호출한다. 해군 사령관인 니미츠 제독의 작전을 들려주기 위해서이다. 니미츠 제독에 의하면 일본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대만을 점령하고, 필리핀의 탈환은 뒤로 돌려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맥아더는 이에 반대하고, 필리핀 수도인 마닐라를 되찾는 것이 선결문제라고 주장한다. 맥아더의 주장을 받아들여 육군은 레이테 섬을 되찾고 포로의 해방을 실현한다. 


부하인 웨인라이트는 만날 수 없었지만 무사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연합국의 종전 조인식에서 비로소 그를 다시 대면하였다. 대통령이 트루만으로 바뀌고, 적국 일본에는 원자폭탄이 2발 떨어졌다. 드디어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였다. 맥아더는 필리핀에서 체득한 동양인의 정신을 존중하여 무리하게 천황을 접견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농지개혁, 재벌해체, 여성의 참정권 허용 등 지금까지 일본에 없었던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만들도록 하였다.


일본에 있던 맥아더는 한국에서 북한이 침공하였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대해 트루먼은 “공산주의를 척결하는 경찰적 행동”이라고 하면서 맥아더에게 이를 주시하도록 한다. 맥아더는 한국과 북한의 국경 근처에서 작전을 전개하려고 하지만, 트루먼은 승낙하지 않는다. 맥아더의 강력한 주장에 어쩔 수 없이 허락한 인천상륙작전에서 대승리를 거두자 트루먼도 그를 칭찬한다. 

트루먼은 앞으로의 북한 문제에 대한 방침과 관련하여 대화를 하도록 한다. 맥아더는 한반도 전체를 통일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트루먼은 대륙의 소련과 중국이 북한의 뒤를 받쳐줄 가능성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추수감사제 축제가 열리는 날, 국경부근에서 흥에 겨워 있던 미군을 중국군 25만 명이 공격해 왔다. 맥아더는 군인으로서 동료들이 무력을 보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개죽음당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전투를 강력히 주장하였지만, 트루먼은 제3차 세계대전을 걱정하여 휴전을 제안하고는, 맥아더를 해임시킨다. 


맥아더는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고향에서는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맥아더 장군을 환영하여 성대한 퍼레이드가 벌어지고 있다. 한때 맥아더의 부하였던 아이젠아워는 뛰어난 군인으로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 반면 맥아더는 퇴역 군인으로서 은거생활에 들어갔다. 그는 모교인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서 생도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한다. “의무, 명예, 조국, 이것이 그대들의 목표이다!”


맥아더는 군인으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 그가 정치적 야심은 없었을까?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그도 한때 미국 대통령을 꿈꾸었다. 그를 따르던 부하들은 맥아더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여론조사 등을 통한 판세 분석 결과 그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이런 현실의 벽에 부딪혀 그는 대통령에의 꿈을 접고 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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