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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May 14. 2021

백제(百濟)의 향기를 따라 其3

(2020-07-01) 논산여행: 노성산성, 황산벌, 계백장군 유적지

며칠전 부여 여행에서 마음 먹었던 논산 여행을 떠나기로 하였다. 이번 논산 여행에서 가장 큰 목적은 <은진미륵>을 구경하는 것이나, 내심 <웅어회>도 잔뜩 기대하고 있다. 논산까지는 세종시 집에서 40킬로 남짓, 차로 4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먼저 노성산성(魯城山城)으로 갔다. <노성산성>은 논산시에 있는 노성산에 지어진 백제시대의 산성이다. 논산지역은 과거 백제와 신라와 대립하고 있을 때 전략상 중요한 지역이었다. 유명한 황산벌이 바로 논산 지역에 있었으며, 양국의 군사력이 충돌하는 지역이다보니까 주요 거점마다 많은 산성들이 축성되어 있었다. 노성산성도 그러란 목적의 백제 산성이다. 노성산성은 “퇴뫼식 산성”이란 특징을 가지고 있다. 퇴뫼식 산성이란 산 정상을 중심으로, 산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성을 말한다. 


노성산성으로 입구 주차장에서 차를 내렸다. 산성 입구는 근린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여러 코스의 산책로가 절 정비되어 있었고, 조경도 아주 말끔히 되어 정리되어 있고,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운동기구들도 설치되어 있다. 요즘 여행을 하다보면 왠만한 시골에 가더라도 근린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주민들이 쉽게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운동기구들이 준비되어 있다. 시골생활도 옛날보다는 훨씬 나아진 것으로 보인다. 지방자치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지방 곳곳이 주민들이 살기 좋게 정비되어 가는 것을 보면, 역시 장점이 많다. 이렇게 지방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 IMF 경제위기가 끝난 이후 2000년 경부터 인 것 같다. 여하튼 지방 곳곳이 살기 좋아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산성까지 거리가 멀면 가지 않으려고, 근처 산책을 하는 주민에게 산성까지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어보았다. 30-40분쯤 걸린단다.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산성으로 가는 길은 넓고 잘 정리되어 있다. 경사도 완만하다. 산책하기 좋은 길이다. 올라갈수록 길은 좁아지고 경사는 급해지지만 여전히 길은 좋다. 가다보면 몇 군 데 갈림길이 나오는데, 길 안내판이 붙어 있지 않아 어디로 가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었다. 길 가에는 시를 써놓은 글자판들이 여러 개 보였는데, 시도 좋지만 먼저 길 안내판을 붙여놓았으면 좋겠다. 

노성산성

점점 길은 가팔라지고 숨이 차온다. 꽤 높이 올랐다고 생각되는데, 갑자기 화려한 한옥이 나온다. 일반 주택과 절의 중간 쯤 되어 보이는데, 그 앞에는 <금강대도 노성본원>이라는 석제 표시판이 보인다. 그리고 그 뒤에는 목판에 설명이 붙어있는데, 아마 <금강대도>라는 것이 작은 종교인 모양이다. 건물이 크지는 않았지만, 꽤 화려하게 보인다. 주위에는 새로 쌓은 돌 축대 같은 것이 보여, 이 높은 곳에 무덤을 만드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꽤 많이 올라온 것 같은데 노성산성은 보이지 않는다. 산 위에서 내려오는 등산객에게 물으니, 15분 정도 더 걸어 올라가면 된다고 한다. 상당히 가파른 길이다. 계속 걸어 올라가니 갑자기 사방이 탁 트이며 정자가 나온다. 노성산 정상이다. 아니 노성산성은 어디로 간건가? 산성이 산 정상을 둘러싸고 있다고 했으니, 오는 도중에 성벽이나 성문을 지나야 했다. 그런데 산성이라곤 보지를 못했다. 


노성산 정상에서 한 숨 돌리고, 잠시 산 아래 경치를 구경한 후 다시 산을 내려왔다. 좀 전에 지나온 <금강대도 본원> 근처까지 오니 여기저기 흩어진 바위 축대 같은 것이 보인다. 그리고 좀 전에 무덤 축대라고 생각했던 것이 새로 복원하고 있는 노성산성의 한 부분이었다. 원래의 성벽은 얼마 남아있지 않고, 대부분 새로 복원한 성벽이다. 힘들게 괜히 정상까지 올라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 다 빠졌다. 


다음 행선지는 황산벌 전적지이다. 황산벌이라면 벌판이라고 생각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크고 작은 많은 산들이 있고, 산마다 산성이 축성되어 있어서, 백제군은 이러한 산성에 진을 치고 신라군과 싸웠다. 그리고 실제로 황산벌이 정확히 어디에 위치하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전해 내려오는 옛 기록에는 기록물마다 그 위치가 조금씩 달리 설명되어 있다. 옛 황산벌의 실제 위치든 아니든 여하튼 황산벌 전적지로 갔다. 내비가 인도한 곳은 언덕길 높은 곳에 자동차로 옆에 제대로 정비되지 않는 큰 주차장이었다. 


황당하였다. 주차장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주차장 옆에는 황산벌 전적지에 대한 안내판이 붙어있었다. 어느 곳이 황산벌이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주차장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차장이 언덕 위에 있으니, 언덕 아래쪽에 크게 자란 잡초 사리로 저 멀리 벌판이 보인다. 아마 그곳이 황산벌인 모양이다. 

황산벌 전적지

영화 <황산벌>이 생각난다. 황산벌 영화의 주요 장면 중의 하나로 기억나는 것은 백제군과 신라군이 욕설 대결을 하는 장면이다. 신라군이 욕 꽤나 하는 군사들을 동원하여 백제군에게 욕설 공격을 하지만, 벌교 출신의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 욕 꾼들에게 패배해버린다. 그 시대 신라와 백제 사이에 말이 어느 정도 통했는지 궁금하다. 과연 서로가 욕하는 것을 알아들었을까? 신라인과 백제인 사이에 서로 말이 통했을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가까운 곳에 <계백장군 유적지>가 있다. 이곳에는 <백제군사박물관>과 계백장군 무덤, 그리고 계백장군 동상이 있다. 이곳의 중심 시설은 <백제군사박물관>이다. 백제군사박물관은 산 중턱 넓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오기 전에는 조그만 시골 박물관이라고 생각하였는데, 그게 아니다. 아주 크고, 넓은 터에 잘 지은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있고, 주위도 조경이 잘 되어 있다. 들어가려고 하니 오늘은 월요일이라 정기휴관일이라고 한다. 오늘은 뭔가 자꾸 일이 꼬이는 것 같다.  

계백장군 유적지

박물관 안으로 들어 갈 수 없으므로, 건물 주위의 산책로를 따라 산책을 하였다. 아주 깨끗이 정비된 시설들이다. 잘 정리되고 예쁘게 들어선 나무와 꽃들 사이로의 산책은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계백장군은 어떤 인물인가? 모두들 잘 알다시피 신라의 침략으로부터 백제를 지키고자 5천 결사대를 이끌고 5만 신라군에 맞서 싸워 4번의 전투에서 이겼으나, 결국은 중과부족으로 전멸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전투기록 외에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잘 모른다. 그게 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의 영웅들 가운데 신라인 외에는 대부분 그렇다. 수나라 백만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이나 당태종의 침략을 막은 안시성의 양만춘, 그 외 등장하는 여러 고구려와 백제의 영웅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결국 역사란 “승자의 기록”을 중심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나는 계백장군이라면 일리야드(Illiad)에 나오는 트로이군의 총사령관인 왕자 헥토르(Hector)가 떠오른다. 나라를 위해 승산이 없는 싸움인지 알면서 아킬레스와의 결투에 나서 장렬히 전사하는 헥토르. 패배가 예견된 전투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전장을 향해 떠나는 계백에게서 헥토르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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