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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an 21. 2024

영화: 츄신구라, 꽃의 편ㆍ눈의 편

일본 문화의 정신적 고향 아코사건(赤穂事件)을 그린 영화

■ 개요


옛날부터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뭐니 뭐니 해도 <츄신구라>(忠臣蔵)이다. 억울하게 죽은 영주의 복수를 위해 47명의 사무라이들이 절치부심 준비 끝에 원수를 죽인 후 모두 장렬하게 절복(切腹)으로 생을 마감한다는 “아코사건”(赤穂事件)을 소재로 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충(忠)을 가장 미덕으로 여기는 일본인들의 정서에 꼭 맞아 이미 300년 전부터 가부키(歌舞伎), 소설, 미술 등 수많은 장르의 예술에서 좋은 소재가 되어왔다. 이 이야기를 소재로 지금까지 영화도 여러 편이 제작되었는데, 이 블로그에서도 이미 <아코성 단절>(赤穂城斷絶)이라는 영화를 소개한 바 있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s://blog.naver.com/weekend_farmer/222081800511


<츄신구라, 꽃의 편ㆍ눈의 편>(忠臣蔵 花の巻・雪の巻)은 1962년 일본에서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크게 두 편으로 나뉘어 있는데, 전편인 “꽃의 편”(花の巻)에서는 아코번(赤穂藩) 영주인 아사노 나가노리(浅野長矩)가 에도성에서 일으킨 칼부림 사건에서부터 아코성 몰수, 그리고 복수의 준비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후편인 “눈의 편”(雪の巻)에서는 거사의 준비와 원수의 집에 난입하여 원수를 처단하는 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아코사건(赤穂事件)이란?


먼저 영화 줄거리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 영화의 소재가 된 “아코사건”(赤穂事件)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알아보자.


이 사건은 1701년 4월 21일 아코번의 영주인 아사노 나가모리(浅野長矩)가 에도성의 “솔의 복도”에서 의전을 담당하는 관리인 키라 요시히사(吉良義央)와 칼부림을 벌인 해프닝에서부터 시작한다. 키라 요시히사는 쉽게 말하면 청와대 의전비서관 정도 되는 인물이다. 이 사건은 우리로 치면 대궐 근정전 안에서 칼부림을 벌인 것이었다. 아사노 나가모리가 무슨 일인가로 인해 격분하여 칼을 빼들고 키라 요시히사에게 죽인다고 달려들었는데, 주위에서 사람들이 말리는 바람에 키라에게 작은 상처만 입히고 말았다.


아사노와 키라 사이에 무슨 일로 아사노가 격분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문학작품 등에서는 아사노가 키라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키라가 고의로 아사노를 곤경에 빠트렸기 때문이라 하는데, 이는 단지 상상에 불과한 것이다. 아사노=좋은 사람, 키라=나쁜 사람 구도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이야기를 만든 것으로, 실상은 무엇 때문인지 불분명하다.

우리의 대궐에 해당하는 에도성 한 복판에서 칼을 빼들고 고위관리에게 상처까지 입혔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막부는 당장 아사노에게 절복(切腹) 명령을 내렸고, 아코성을 포함한 아코번은 막부에 몰수당하였다. 그렇지만 소동의 다른 한쪽 당사자인 키라에 대해서는 어떤 문책도 없었다.


아코번이 몰수당하지 그곳에 속해있던 사무라이들은 모두 낭인(浪人), 즉 실업자가 되어버렸다. 이들을 아코번 낭사(浪士)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군이 키라로 인해 억울하게 죽었다고 생각하여 복수를 맹세한다. 필두 가로(家老)인 오오이시 요시오(大石良雄)는 낭인이 된 아코번 무사들을 하나하나 모아 복수를 준비한다. 여기서 “가로”란 나라로 치면 정승에 해당하는 자리이며, “필두 가로”는 가로 가운데서 가장 높은 자리이다. 또 오오이시 요시오(大石良雄)는 본명보다는 관직명을 붙인 오오이시 쿠라노스케(大石内蔵助)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오오이시 요시오를 중심으로 한 아코번 무사들은 절치부심 복수를 준비한다. 그리고 칼부림 사건이 있는지 2년이 채 못된 1703년 1월 3일 밤, 오오이시 요시오를 포함한 47명의 무사들은 키라의 저택을 습격한다. 키라의 저택에서는 일대 살육전이 벌어진 끝에 숨어있던 키라는 끌려 나와 살해되고 만다. 이 사건에서 키라 측에서는 15명이 죽고, 23명이 부상당하였다. 아코 무사들은 2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아코 무사들은 키라의 목을 베어 높이 지켜 들고  시가행진을 하여 그의 주군이 잠들어 있는 천악사(泉岳寺)로 가서 키라의 목을 바쳤다.

막부는 아키호 무사들을 체포하여 호소카와(細川) 등 4명의 영주 저택에 이들을 감금하도록 하였다. 이들을 맡은 영주들은 이들을 죄인 취급하지 않고 영웅적인 무사로서 대접하였다. 막부는 당초 이들을 죄인으로서 처형하려고 하였으나, 여러 영주들이 이들은 주군의 원수를 갚은 의사라면서 선처를 부탁하는 바람에 결국 명예를 지킬 수 있는 절복 처분을 내렸다. 47명의 무사들은 모두 스스로의 배를 가르고 세상을 하직하였다.  


■ 줄거리


꽃의 편(花の巻)


아카호 성주인 아사노 나가노리는 교토로부터 파견된 칙사를 영접하기 위해 키라 요시히사로부터 예의범절을 배우게 되었다. 칙사를 영접하는 일이란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로, 이 일을 매끄럽게 처리한다면 쇼군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출세의 문이 열린다. 그런데 키라는 매우 부패한 인물로서 그는 뇌물을 아주 밝힌다는 소문이다. 아사노의 가신들은 아사노에게 뇌물을 바쳐야 한다고 보고하지만, 강직한 아사노는 그러한 가신들의 진언을 거부한다.


그러자 키라는 아사노에게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보이며 일부러 골탕을 먹인다. 예의범절과 의전을 잘못 가르쳐놓고는 아사노가 그 말을 듣고는 실수를 저지르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준다. 이렇게 칙사 영접을 하는 날까지 키라는 아사노에게 골탕을 먹이며 아사노를 완전히 바보로 만들어버린다. 그러자 참다못한 아사노가 쇼군 저의 가장 중심인 “솔의 복도”에서 칼을 뽑아 들고 키라를 죽이겠다고 달려든다. 깜짝 놀란 키라는 허둥지둥 도망치며, 주위 사람들은 큰일 났다고 하면서 아사노를 말리려 든다. 이 바람에 키라는 어깨에 가벼운 상처만 입고 달아난다.

막부는 아사노에게 일단 근신처분을 내리고 앞으로의 처분을 기다리라고 한다. 가까운 사람들이 아사노를 찾아와 걱정을 하지만, 아사노는 자신의 행동에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곧이어 막부는 아사노에게 절복 처분을 내리고 그의 영지인 아코번은 막부가 몰수하기로 한다.


사건의 전말을 연락받은 아코성의 무사들은 필두 가로인 오오이시 요시오의 주재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두고 격론을 벌인다. 아코성을 절대로 내줄 수 없으며, 성을 접수하러 오는 막부의 군사들과 싸워 모두 함께 죽자는 강경파들도 있었지만, 결국은 저항 없이 성을 내주기로 결정한다. 성과 영지가 몰수당한 후 오오이시는 시골로 내려가 홍등가를 출입하면서 살아간다. 그리고는 아내인 리쿠와도 이혼을 하고, 장남만을 옆에 두고는 주변을 모두 정리한다.


눈의 편(雪の巻)


키라는 승승장구하며 새 저택을 짓고 이사하였다. 그러나 혹시 아사노의 가신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경호원들을 모으고 있었다. 한편 아사노 가신들은 이름과 직업을 바꿔 에도로 잠복해 들어왔다. 모두들 키라를 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었다.

드디어 요시노를 칠 절호의 기회가 왔다. 무사들은 여러 준비를 착착 진행시켜, 음력 12월 14일 눈이 내리는 추운 날 밤, 오오이시를 필두로 하는 47인의 무사들은 일제히 담장을 넘어 키라의 저택으로 난입해 들어간다.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은 경호원들을 비롯한 키라의 종복들은 허둥지둥 대응에 나서지만 무사들의 칼에 쓰러진다. 이렇게 47인의 무사들은 습격에 성공하였으나, 정작 중요한 키라가 보이지 않는다. 날이 밝아 오는데도 키라를 잡는데 실패한 무사들은 이제 철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차 키라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들은 키라의 목을 자르고 긴 장대에 키라의 목을 꿰어 높이 쳐들고 열을 지어 키라의 저택을 빠져나온다.


■ 약간의 감상평


이 영화에서는 역시 47인의 무사들이 키라 저택을 습격하는 장면이 볼만하다. 키라의 경호원들은 자다가 뛰어나와 무사들에게 저항한다. 이때부터 치열한 결투 신이 벌어진다. 그렇지만 이건 사실과 다르다. 깊은 밤에 습격을 당했기 때문에 경호원들이 제대로 반격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때 죽은 사람들은 대부분 키라의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무사들은 거의 없었다. 이날의 습격은 일방적인 공격과 살육이 있었을 뿐이었다.


또 습격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하여 습격을 하는 날 눈발이 뿌리고 있었는데, 이것도 사실과는 다르다. 며칠 전에 내린 눈으로 눈은 쌓여 있었지만, 당일은 아주 맑은 날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을 가지고 사실과 맞네 다르네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뿌리는 눈발 속에서 습격하는 장면이 분위기가 있으며, 키라의 경호원들이 나와서 맞서 싸우고 해야 영화가 재미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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