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옥 폭포에 가기 위해 오늘 아침 7시 15분 버스를 타고 까오방(高平, Cao Bang)으로 간다. 하장에서 까오방으로 가는 차는 하루에 한 대뿐이다. 커피 한 잔과 반미 반 개로 대충 아침을 때우고 버스를 기다렸다. 슬리핑 버스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어제와 같은 로컬 버스만 아니면 좋겠다. 그러나 불안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한다. 어제보다도 더 낡은 미니버스가 도착한다. 버스에 오르니 자리의 태반을 박스 등 화물이 차지하고 있다. 베트남의 버스들은 택배도 겸업하는 것 같다.
하장에서 동반까지 150킬로, 동반에서 까오방까지 180킬로로 도합 330킬로가 된다. 그런데 내비를 찍어보니 230킬로로 나온다. 동반을 거치지 않는 우회 도로가 있는 것 같다. 버스가 출발하여 30분 정도가 지나자 본격적으로 산악도로로 들어선다. 내가 며칠 전 오토바이로 동반까지 갔던 길과, 어제 동반에서 버스로 온 길과는 다른 새로운 길인 것 같다. 그러나 길이 험하기는 마찬가지.
차가 심하게 흔들리니 잠이 쏟아진다. 산악도로 커브 길에서 차가 경적을 울리는 것은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그래야 마주 오는 차나 오토바이와 충돌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버스 운전자는 정도가 좀 심한 것 같다. 거의 전구간을 경적을 울리며 달린다.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경적음을 듣는다는 상상을 해보시라. 그 고통이 어떻겠는가를. 그뿐만이 아니다. 차장 일을 하는 50대쯤 보이는 남자는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목소리가 너무 크다. 그런 큰 목소리로 입을 닫고 있을 때가 없다. 흔들리는 차에 계속되는 경적소리, 거기다가 한 순간도 쉬지 않는 고함소리, 고통도 이런 고통이 없다.
까오방행 미니버스
보통이라면 창밖의 경치를 즐겼겠지만 요 며칠 동안 싫도록 본 경치라 크게 끌리지도 않는다. 지난번에 오토바이로 동반까지 갔을 때는 도중에 마을을 만난 적이 없었는데, 이 버스는 꽤 여러 마을을 거친다. 뒤에 짐 실은 좌석을 제외하곤 자리가 꽉 찼는데, 내 옆에는 검은 수염을 길게 기른 프랑스인 청년이 앉았다. 버스는 11시쯤 어느 마을에 도착하였는데 다 내리라 한다. 그리고는 차는 말없이 떠나려 한다. 출발하려는 버스를 황급히 잡고 "까오방! 까오방!"하고 외치니 운전사가 옆에 있는 검은 차를 가리킨다. 그 차로 갈아타라는 것 같다.
베트남에서는 "리무진"이라 부르는 차가 있다. 미니버스보다는 좀 작고, 밴보다는 조금 큰 검은색 차로서, 누을 수 있는 좌석에 보통 승객 4명을 태운다. 옆에 옮겨 타라는 그 차가 바로 리무진이다. 이젠 편하게 가게 되었다고 좋아라 그 차에 올랐는데, 리무진은 개뿔, 그 작은 차에 좌석이 20개는 된다. 그야말로 콩나물시루같이 꽉 끼어 가야 한다.
어느덧 오후 1시가 지났다. 스케줄 상으론 2시에 까오방에 도착한다고 하였다. 내비를 켜보니 웬걸 110킬로 남았는데, 3시간이 넘게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도 가도 산이다. 좀 높이 왔다고 생각되어 고도계를 확인해 보면 해발 1,800미터, 그러다가는 또 하염없이 내려간다. 그래도 이번 기사는 경적을 좀 덜 울리고, 목소리 큰 차장도 없어 그나마 다행이다. 속이 울렁거려 식욕도 없다. 아침을 먹은 이후 물 한 모금 마신적 없다. 아니 마실 수가 없었다. 휴게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어떡하나? 다른 사람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나와 프랑스인 청년만 줄곳 타고 왔지, 다른 승객들은 도중에 타서 도중에 내리기 때문이다. 오후 4시 무렵 까오방 시내로 들어왔다. 생각보단 제법 큰 도시이다. 우리나라의 소도시 정도는 되어 보인다. 베트남 시외버스의 도어 투 도어 서비스는 철저하다. 20명의 승객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집 앞까지 데려다준다. 집 앞 도로 건너편에 차를 세우고 길을 건너 집에 가라는 법도 없다. 유턴을 해서라도 반드시 바로 집 앞에 세워준다.
갈아 탄 밴
갑자기 기사의 전화벨이 울린다. 승객 중 누군가가 핸드백을 두고 내린 것이다. 전화를 받은 가서는 얼른 승객이 앉았던 자리로 가서 뒤에 떨어진 핸드백을 찾아내고는 다시 그 승객이 내린 곳까지 차를 되돌려 가서 핸드백을 전해준다. 이러다 보니 까오방 시내에 들어와서도 거진 한 시간은 가까이 돌아다니다 차에서 내렸다.
예약을 하지 않아서 눈에 띄는 호텔을 찾아 들어갔다. 내 나이 또래쯤 되어 보이는 노파가 카운터에 앉아있는데, 정말 영어는 1도 안 통한다. 이런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하기는 정말 힘든다. 통역기로 대화하는데, 대화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상한 말이 통역되어 나온다. 그러면 내가 통역된 말을 듣고 추리를 하여 "이런 뜻으로 말한 거지?" 하며 하나하나 확인해 나가야 한다.
내일 아침 반지옥(Ban Gioc) 폭포에 가면 오후 5시경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밤 10시에 하노이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고 한다. 오늘 너무 강행군을 해 이곳에서 하루 더 묵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내일 생각하자.
까오방 시내 풍경
■ 곁가지 이야기 05: 유니버설 서비스(universal service)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분들이라도 유니버설 서비스(universal service)라는 말을 한두 번은 들어보셨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전기, 통신, 교통 등 공익 서비스(public utilities)에 대해 최소한의 접근권을 보장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에 필수적인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고, 국민은 그러한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달 전기료를 수천 원밖에 내지 않는 외딴곳의 한 두 가구를 위하여 수백억 원씩 돈을 들여 전기공급 시설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베트남 북부 고산지대를 여행하다 보면 산골마을 구석구석까지 전기가 보급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거의 3,000미터에 가까운 고산지대에 있는 외딴 가구에도 대부분 전선이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경치가 좋은 곳 어느 곳을 가더러도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대면 어김없이 몇 가닥의 흉물스러운 전깃줄이 풍경을 망쳐 놓는다. 전깃줄이 보이지 않는 풍경사진을 찍으려면 각도에 상당히 신경을 써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전깃줄에 대해 불평할 수도 없다. 평생 한 번 오는 관광객들의 눈을 위해 평생을 그곳에서 사는 주민들의 최소한의 편의성 마저 박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여하튼 이 지역을 돌어다니다 보면 전기가 유니버설 서비스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낀다. 베트남도 아마 경제적 여유가 더 생긴다면 유니버설 서비스와 환경을 함께 고려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