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ㆍ라오스 나홀로 배낭여행(2023-12-30)

Ep 17 까오방에서의 평화로운 하루

by 이재형

어제 지옥 같은 10시간의 버스를 타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이곳 까오방에 도착하였다. 잠들기 전까지 오늘 반지옥 폭포에 갈지 말지 결정을 못했다. 그러다가 시계 얼람 기능을 켜지 않고 잠들기로 했다. 만약 오전 6시 전에 일어난다면 폭포로 가고, 6시가 넘어 일어난다면 폭포는 내일로 미루는 것이다.


며칠 전에 오토바이를 타고 동반으로 가다 넘어져 다친 어깨가 많이 아프다. 그때 깨진 무릎도 계속 소독하며 약을 바르고 있는데도 별 차도가 없다. 어깨는 말할 수 없이 아프다. 누워서 몸을 뒤척이다가도 오른쪽이 눌리면 아파서 깜짝 놀라 잠이 깬다. 뼈가 부러지거나 한 것 같지는 않으나 벌써 5일이 지났는데도 별 차도가 없으니 약간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어깨가 아파 몇 번이나 잠을 깼다. 무릎의 상처에서도 아직 피가 멎지 않는다. 혈압 때문에 매일 아스피린을 먹고 있어 피가 쉽게 응고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시계를 확인하니 6시 반이다. "휴! 다행이다." 오늘 하루 쉴 수 있게 되었다. 누워서 뒹굴거리다가 10시쯤 밖으로 나왔다. 입맛이 없어 쌀국수로 아침을 먹었다. 이젠 식당에 가서는 촌스럽게 메뉴를 가리키며 "다스 원" 이런 식으로 주문 않는다. 세련되게 "퍼 가!"(닭쌀국수), "꼼 보!"(쇠고기 볶은밥) 하는 식으로 주문한다.

까오방 시내 풍경

걸어서 까오방 시내를 구경한다. 제법 번화한 거리이다. 숙소 바로 옆에 전통시장이 있고, 바로 옆에 작은 다리와 로터리가 있는데, 이 일대가 중심 시가지인 것 같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이 은행이다. 화려한 점포의 은행이 사방 200미터 지역 안에 10개는 되는 것 같다. 조금 더 가니 제법 큰 쇼핑센터도 보인다. 외국인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음식값은 아주 싸다.


병원에나 가볼까 하며 어슬렁거리는데, 제법 큰 약국이 보인다. 타박상에 바르는 약과 상처에 바르는 연고를 샀다. 우리나라의 '후시딘' 같은 약이 있으면 무릎 상처 같은 건 금방 나을 텐데, 약사가 약을 제대로 준 것인지는 모르겠다. 돌아다니다 보니 병원은 별로 보이지 않는데 약국이 참 많이 눈에 뜨인다. 우리나라의 편의점 정도로 많은 것 같다.


여행사를 찾아야 내일 반지옥 폭포로 가는 버스와 하노이로 가는 버스 스케줄을 확인할 텐데,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베트남의 어느 도시에 가더라도 제일 많이 눈에 띄는 업소가 여행사와 마사지 숍인데, 여긴 확실히 다르다. 아마 외국 관광객이 거의 없는 모양이다.


메인 스트리트 안쪽으로는 깨끗한 개천이 흐른다. 폭이 100미터 조금 넘어 보이는데, 물이 아주 깨끗하다. 개천 옆길로는 여러 종류의 크고 작은 세련된 모습의 카페가 늘어서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음료를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치 유럽의 어느 작은 마을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베트남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확실히 어딘가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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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오방 시내를 흐르는 작은 강과 주위 풍경

까오방은 호찌민이 처음으로 군사적 교두보로 삼고 독립전쟁을 시작한 곳이라 한다. 그래서 교외로 나가면 그 유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하는데, 가볼까 망설이다가 오늘은 그냥 휴식을 즐기기로 했다. 여행사를 찾는다고 두리번거리던 중 럭셔리 호텔이란 간판을 단 큰 호텔이 보인다.


젊은 여직원 혼자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데,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센스가 있어 통역기와 손짓ㆍ몸짓을 통해 쉽게 의사소통이 된다. 반지옥 폭포 가는 버스와 하노이로 가는 버스 모두 이 호텔 앞에서 탈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버스 시간도 알려준다. 이로서 제일 중요한 문제 두 개를 단숨에 해결하였다.


길가의 카페에나 들어가 다리를 쉴까 두리번거리는데, 리어카에서 코코넛을 팔고 있는 중년 여자가 보인다. 옆에 있는 간이 의자에 앉아 시원한 코코넛 한통을 마셨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마시는 코코넛이다. 그리 크지 않은 시가지라 한 시간 정도 어슬렁거리니 대충 돌아본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 또 쉰다. 유튜브를 보다가 바둑을 두다가 하다 보니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내일 하노이로 가는 차를 타기 위해서는 여기서 오전 7시 이전에 폭포로 출발해야겠다. 오랜만에 가진 여유 있는 하루였다.


■ 곁가지 이야기 05: 베트남 공산주의와 사유재산의 보장


이번 여행을 시작한 지 며칠 지난 후 구글을 통해 재미있는 뉴스를 보았다. 베트남 정부에서 메콩 델타로 가는 간선도로를 건설하고 있는데, 두 가구가 보상을 거부하고 토지를 매각하지 않아 20년째 도로를 완공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그중 한 기구인 80대 노인이 보상에 응했다는 내용이다. 그 두 가구는 그동안 국가의 기간 도로망 건설을 방해하고 있다고 전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다고 한다.


베트남은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있는 공산국가이다. 공산국가의 가장 큰 특징을 들라면 사유재산의 부정과 일당 독재정치이다. 그런데 위에서 소개한 베트남의 토지 매각 거부소동은 우리의 이런 기본적 상식과 완전히 배치되는 사건이다.


먼저 이 사건만을 놓고 본다면 사유재산권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강력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공시설 건설을 위해 토지소유자가 거부하더라도 정부가 강제수용권을 발동할 수 있다. 심지어는 재개발 사업의 사례에서 보듯이 주민들의 찬성이 일정비율을 넘으면 재개발에 동의하지 않는 주민의 재산권을 합법적으로 침해할 수 있다. 이런 짐에서 본다면 공산국가인 베트남이 우리니라에 비해 사유재산권이 훨씬 더 존중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또 하나는 공산국가인 베트남이 과연 독재국가인가 하는 점이다. 독재국가라면 국가정책, 그것도 사회 기간시설의 건설에 방해가 되는 사람을 처리하는 것이 너무나 간단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재국가라면 어떻게 이 정도로 개인의 선택에 대해 국가의 강제력이 미치지 못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베트남의 정치나 행정체제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런데 이런 어찌 보면 사소하다 할 사건을 통해 내가 그동안 베트남의 정치체제에 대해 너무 무지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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