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 베트남 혁명전쟁의 출발지 팍보(Pac Bo)
오늘은 정월 초하루, 이국 땅에서 홀로 새해를 맞는다. 어제저녁 늦게까지 밖에서 폭음 소리가 계속 들렸는데, 아마 한 해를 보내는 폭죽놀이였던 것 같다.
까오방에 하루 더 눌러앉아 팍보 동굴을 가보기로 하였다. 당초 까오방에서 1박을 할 계획이었으나 이럭저럭 4박을 하게 되었다. 팍보 동굴은 호찌민이 베트남을 지배하고 있는 프랑스에 대항하여 민족해방전쟁에 나선 출발점이 된 곳이다. 1941년 호찌민은 중국 윈난 성에서 국경을 넘어 30년 만에 몰래 베트남에 잠입하여 이곳에 머물면서 혁명전쟁 준비를 하였다. 이후 프랑스와 미국이라는 서방 강대국을 맞아 장장 30년이 넘은 장렬한 전쟁 끝에 승리한 베트남인들의 영광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숙소 근처 로터리 옆에 코코넛과 음료 등을 파는 행상 아줌마가 있는데, 며칠 지나는 동안 단골이 되었다. 매일 이곳에서 코코넛 한 두 개를 마신다. 카오방을 중심으로 운행되는 모든 로컬 버스가 바로 이 앞에 선다. 그래서 코코넛을 마시며 간이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버스가 오면 타고 가곤 하였다. 코코넛 한 개 15,000동으로 우리 돈 800원 정도에 불과하다.
카오방에서 팍보까지 60킬로가 조금 못 되는 거리이다. 택시나 오토바이 택시로 가는 방법이 있지만 너무 비싸다. 호텔을 통해 알아보니 택시는 약 2백만 동, 오토바이는 100만 동 정도이다. 혹시 다른 방법이 없을까 하여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로컬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다. 팍보에 가는 교통편에 대해 2개의 글이 올라와 있는데, 한 개는 내게 팍보에 가보라고 추천한 페친분의 블로그 글이다.
이들 글에 따르면 로컬버스를 타고 하광까지 가서 거기서 택시나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8킬로 정도 더 가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글을 쓴 두 분 다 무슨 재수인지, 모두 친절한 베트남 사람을 만나 아주 편하게 그곳으로 간듯하다. 페친분은 친절한 호텔직원의 도움을 받았고, 다른 한분은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아주머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거다.
하광행 로컬 버스를 탔다. 차장이 내게 차비를 달라 하긴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그때 옆에 앉은 젊은 아가씨가 차장을 대신하여 내게 어디까지 가는냐며 유창한 영어로 묻는다. 그 아가씨 덕분에 차장과 커뮤니케이션이 되어 차비도 무사히 지불하였다. 그 아가씨가 내게 어디 가느냐고 묻길래 팍보에 간다고 하니까 자신도 두 친구와 함께 팍보로 간다며 함께 가자고 한다.
그 아가씨들은 이미 택시도 예약해 놓아 하광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로 옮겨 탔다. 기아 모닝이다. 8킬로 정도 달려야 한다. 내가 택시비를 지불하겠다고 하자 그 아가씨들은 펄쩍 뛰며 아니라 한다. 결국 염치 불고하고 그 아가씨들의 신세를 져 공짜 택시를 탔다.
이곳 입장료는 1인당 5만 동이다. 택시를 공짜로 타고 온 보답으로 입장권은 내가 끊겠다고 제안했지만, 아가씨들은 한사코 거절한다. 주차장에서 경내로 트램이 운행된다. 경내에 들어서서 그 아가씨들과 헤어졌다.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먼저 호찌민 좌상이 모셔져 있는 사당으로 갔다. 높은 계단 위에 정사각형의 건물이 세워져 있고, 그 안에 등신 크기의 호찌민 좌상이 모셔져 있다. 조금 화려하다는 느낌도 있지만, 과하지 않은 화려함이다.
사당을 내려오면 길 건너편에 제법 큰 탑이 있다. 아마 호찌민과 독립전쟁을 기리는 탑 같은데, 무엇을 기념 혹은 상징하는 탑인지는 모르겠다. 이 구역은 사당과 탑을 중심으로 완전히 공원화되어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흥밋거리를 주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으려는 배려가 보인다.
이곳의 특이한 점은 모든 설명문들이 베트남어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 같은 외국인들은 여러 조형물이나 시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이곳은 베트남의 “특별 국가역사유적지”이다. 그래서 이곳은 베트남 국민들의 자존심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모든 표기를 베트남어로 고집하는지, 아니면 외국인들이 이곳을 찾지 않기 때문에서 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그런데 이곳이 팍보 동굴이라면, 어딘가 동굴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한참을 헤매다가 경내를 벗어나는 트램이 보이길래 무작정 올라탔다. 트램은 잘 포장된 산길을 10분 정도 달려 올라가서는 산자락에 있는 넓은 공원에 세워준다. 이곳에 팍보 동굴이 있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가는 곳을 뒤따라 올라갔다. 아주 아름다운 계곡이다. 풍부하고 깨끗한 계곡물은 동남아 특유의 코발트 빛을 띠고 있다. 이 계류는 호찌민이 “레닌 계류”라고 이름 붙였으며, 이 주위의 산을 “칼 마르크스 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팍보 동굴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계곡을 지난다. 푸르다 못해 투명해 보이는 맑은 계곡물이 철철 흐른다. 이 아름다운 계곡의 이름이 레닌이라니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돌로 잘 정비된 평평한 산길을 1킬로 남짓 걸어가자 조금 급한 경사길이 보인다. 그곳을 올라가니 두세 개의 작은 동굴 입구가 보인다. 석회암 동굴인데, 입구는 몇 개 있지만 안으로는 서로 통하는 것 같다. 입구는 어른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이다. 그러나 안쪽은 조금 더 넓은 것 같다. 호찌민은 1941년 중국을 통해 이곳에 몰래 숨어 들어와 독립전쟁을 시작하였으며, 이 동굴에서 기거하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 동굴은 오늘의 베트남의 출발점이라 할 것이다.
이곳 팍보 지역은 베트남의 영광스러운 역사유적으로서 아주 잘 정비되어 있다. 사당과 인근 공원, 그리고 동굴 지역으로 연결되는 도로, 동굴 지역의 주차장 및 주변 공원, 그리고 그곳에서 이곳 동굴에 이르기까지의 산길 등 모두가 베트남에서는 드물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이곳 동굴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주위도 좀 지저분하고 보전에도 신경을 제대로 못쓰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는 수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호찌민 정도의 인물을 정말 찾기 어려울 것이다. 조국에 대한 사랑과 애국심, 청빈과 자제심, 인자함과 친밀함 등 정치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그처럼 골고루 갖춘 인물을 또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호찌민을 바라보면 모든 면에서 그와 대비되어 보이는 인간이 있다.
바로 '이승만'
팍보 지역은 그 역사성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기 위해서도 한번 찾을만한 곳이다. 오래 걸었더니 피곤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지금까지 아침에 사과 한 알 먹은 것이 전부다. 트램 주차장으로 내려와 한 가게 앞에 앉아 사탕수수 즙을 주문하였다. 조금 앉아있자니 오전에 신세를 졌던 아가씨들이 옆자리에 앉는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그녀들은 차시간이 급하다며 먼저 자리를 뜬다.
아픈 다리를 쉬면서 집으로 페이스 톡을 했다. 마침 손자도 깨있고, 유학 가있는 아들도 집에 돌아와 함께 있다. 손자를 얼르기도 하고 아들과 이야기도 하며 한참 떠들다가 일어섰다. 계산을 하려는데, 좀 전의 아가씨들이 내 것까지 계산하고 갔다고 한다. 오늘은 무슨 신세를 이렇게나 지는지 모르겠다. 이름도 모르는 아가씨들이라 신세를 갚을 길은 없고, 대신 다른 베트남 사람 누군가에게 이 신세를 대신 갚아야겠다.
까오방으로 돌아와 내일 하노이로 갈 버스를 예약하였다. 예약 방법을 몰라 주위의 큰 호텔에 무작정 뛰어들어가 사정을 얘기했더니,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호텔 여직원이 수배를 해서 예약을 해준다. 정말 친절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