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8 환상의 반지옥(Ban Gioc) 폭포
어제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니 아침 일찍 반지옥 폭포에 갔다 온다면 하노이로 가는 오후 4시 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숙소에 들어와 생각을 해보니 그 시간에 하노이로 간다면 자정 근처에 도착할 것이고, 숙소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을터인데 무리해서 하노이로 갈 필요가 없었다. 다음날 가는 것이 현명하다.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느긋해진다.
아침 7시 좀 넘어서 숙소를 나섰다. 좀 기다리다가 7시 30분 버스를 탔다. 25인승 미니버스인 로컬 버스였다. 시내를 한 바퀴 돌면서 승객을 태우고 짐도 싣고 한다. 운전사 외에 젊은 여차장이 있어 손님에게 승차권을 끊어주고 짐정리도 한다. 승객은 나를 포함하여 15명 정도인데, 모두 현지인으로서 차림새를 보니 폭포로 놀러 가는 사람들인 것 같지는 않았다.
많은 분들이 반지옥 폭포라는 이름은 기억을 못 해도 한 번씩은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세계테마기행 등 우리나라 여행 다큐멘터리에서 이 폭포는 여러 번 소개된 바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폭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지옥(Ban Gioc) 폭포는 이곳 까오방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약 90킬로 떨어진 베트남과 중국 국경 상에 있는데, 중국에서는 이를 덕천폭포(徳天瀑布)라 한다. 까오방에서 버스로 3시간 거리이며, 요금은 85,000동으로 5천 원이 조금 못된다. 버스는 시골길을 달린다. 주위가 온통 산이지만 산길은 아니다. 산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 지역도 카르스트 지형이어서 산들이 모두 밥공기나 밑 둥근 컵을 엎어 놓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지역도 닌빈 못지않게 절경을 자랑하는데, 평지가 부족해 사람들이 산 가까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버스는 시골길을 달리며 내리겠다는 사람은 어느 곳에서나 내려주고, 또 손을 드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서나 정차하여 태워준다. 승객들이 수시로 바뀐다. 출발한 지 한 시간 정도 지나자 까오방 시내에서 탄 사람은 나 혼자 남았다. 그런데도 차는 항상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을 태우고 다닌다. 그만큼 승객의 승하차가 잦다는 것이다. 우리의 시내버스와 마찬가지이다.
버스에 실린 짐도 다양하다. 전자 레인지 등 전자제품 박스가 두어 개 보이고, 쌀자루, 채소가 든 비닐봉지, 생선 2마리가 든 작은 비닐 주머니, 의자, 대나무 닭장에 들어있는 닭 몇 마리 등등.... 이렇게 다양한 구색을 갖추기도 힘들 것이다. 조금 더 가니 길이가 3미터는 넘어 보이는 대나무처럼 보이는 큰 다발 2개를 싣는다. 알고 보니 사탕수수 줄기다.
이런 짐들은 승객이 휴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택배처럼 짐만 부치는 것이다. 가다 보면 짐을 받을 사람이 길가운데로 나와 손을 흔든다. 그러면 버스를 세워 차장이 짐을 건네주고 돈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차장이 상당히 바쁘다. 사람이 나와있지 않으면 자신이 직접 짐을 들고 집까지 가져다준다. 길가의 집이라면 괜찮겠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짐을 받으러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해본다.
처음에는 불편한 자리에 앉아 3시간이나 달리는 것이 괴롭게 느껴졌지만, 이들의 이런 운수 시스템을 눈여겨보고 있자니 재미가 있어 지루함도 사라진다. 이렇게 승객과 화물이 몇 번씩 바뀌는 사이에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나는 EBS의 <세계테마기행>이나 그 밖의 여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이곳 반지옥 폭포를 여러 번 봤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 나서기 전에도 이곳을 소개하는 유튜브 동영상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비록 처음 오는 곳이지만 풍경이 익숙하다. 그들 프로그램을 보면 이곳 폭포 입구에서는 제법 큰 장이 선다. 중국과의 국경지대이고, 또 중국이 베트남보다 경제적으로 앞서 있다 보니 중국제품들을 파는 행상들이 대부분이다. 마치 이전 1960-70년대 우리나라에서 양담배나 C레이션 박스를 팔던 아주머니들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들 행상들이 보이지 않는다. TV에서 본 반지옥 폭포 매표소로 가는 좁은 길 양쪽은 행상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는데, 막상 와보니 길은 넓어지고 행상들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네 명소에 가면 맞이품점과 식당이 길 양쪽에 늘어서 있는 것처럼 여기도 대여섯 개 정도의 기념품점과 꼬치를 파는 간이식당이 보이고 있다. 매표소 근처에서 몇몇 행상 아주머니들이 모자나 간단한 기념품을 팔고 있다. 입장료는 8만 동이었던 것 같다.
까오방에서 이곳으로 오는 버스는 30분에 한 대씩 있다. 이번 버스를 타고 이곳에 온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그래서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11시도 안 되었는데 관광객들이 꽤 많다. 하노이 방면에서 오는 사람이 많고, 또 까오방에서 오더라도 대부분 투어 버스를 이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
출입구를 통과하여 폭포로 가는 길은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지금은 건기라 물 없는 빈 폭포를 보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드디어 저 멀리 폭포가 보인다. 사진을 통해, 동영상을 통해 그토록 여러 번 봐 왔던 폭포가 저기에 있다. 기대보다 규모가 작아서 실망하거나, 기대보다 규모가 더 커 감탄하거나가 아닌 생각했던 딱 그대로의 크기의 폭포가 저기에 있다. 다만 수량은 조금 적다는 느낌이다. 건기라서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폭포 쪽으로 걸어가면 왼쪽에 높이가 높은 몇 줄기의 폭포가 보이고, 가운데 쪽에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본 폭포가 흰 물줄기를 토해내고 있다. 나이아가라나 이과수, 빅토리아 폭포는 이보다 몇 배는 더 크고 웅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아름답지는 못할 것이다. 반지옥 폭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주 익숙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이미 동영상 등을 통해 이곳을 많이 보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수없이 보아온 동양화 속의 꿈꾸는 듯한 폭포가 바로 이 반지옥 폭포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정말 혼자만 보기 아깝다.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집사람에게 페이스 톡을 보냈다. 그리고 폭포의 전경을 현장 중계하였다.
강 건너 쪽은 높은 산으로, 그곳은 중국 땅이다. 이곳 베트남 쪽에서는 평지를 통하여 쉽게 폭포에 접근할 수 있지만, 중국 쪽에서는 높은 산 위에 나있는 긴 잔도를 통해 힘겹게 폭포에 접근하여야 한다.
배를 타고 폭포 아래쪽까지 갈 수 있다. 강변 이쪽에서는 베트남의 유람선이, 강변 저쪽에서는 중국의 유람선이 출발한다. 강 가운데는 양국의 공동구역인 것 같다. 배를 탔다. 아주 넓고 평평한 배에 의자를 몇 줄 설치해 두고 있다. 사람들이 모두 앞쪽으로 몰려가 사진을 찍으려는 바람에 사진 찍는 찬스를 잡기도 쉽지 않다. 유람선은 폭포 물줄기 바로 근처까지 다가갔다가 큰 원을 그리면서 돌아 나온다.
폭포 지역은 그리 넓지는 않기 때문에 두 시간 정도 이곳저곳 다니니 더 갈 곳도 없다. 그만 돌아가자. 폭포지역을 나오니 입장할 무렵과는 달리 입구 부근 주차장이 꽉 찼다. 사람들이 계속 폭포지역으로 들어가고, 차들이 주차를 못해 쩔쩔맨다. 이렇게 갑자기 교통량이 늘어나 까오방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어디에서 타는지 막막해졌다.
이 많은 차 가운데 까오방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운 좋게 곧바로 출발하려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쉰 후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갑자기 술이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어 지난번 박하에서 산 옥수수 술을 들고 나왔다. 이번 여행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파에서 맥주 한 캔, 동반에서 옥수수 술 두 잔 마신 것이 전부이다. 숙소 바로 옆의 전통시장으로 들어갔다. 음식점에는 짙은 갈색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먹음직스러운 오리가 걸려있다. 술안주로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오리 고기를 주문했다.
세상에! 이렇게 맛없는 오리 고기는 처음 먹어본다. 구운 오리라 생각했는데, 맹물에 삶아낸 오리인 것 같다. 지금까지 먹어 본 모든 고기를 통틀어 가장 맛없는 고기이다. 그냥 밥반찬인 두부를 안주로 소주잔 두 잔 정도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