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5 로컬 버스에 오토바이를 싣고 하장으로 돌아오다
오전 9시에 숙소 로비에서 대리운전사를 만나기로 했건만 그는 오지 않는다. 어제 몇 번이나 확인했음에도 오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내가 운전을 해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더 이상의 모험은 않는 것이 좋겠다. 대리운전사를 다시 구해야 하나 하고 궁리를 하는 중 숙소 직원이 버스에 오토바이를 싣고 가는 것이 어떠겠냐고 제안한다. 그러기로 했다.
조금 있으니 버스회사 직원이 와서 먼저 오토바이부터 싣겠다며 오토바이를 가져간다. 그리고 10시에 픽업하러 오겠다고 한다. 베트남은 도시 간 이동 교통에 있어 우리나라에 비해 현저히 낙후되어 있지만, 한 가지 편리한 점이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도어 투 도어 방식이라는 거다. 웬만한 곳에 있으면 픽업하러 오고, 목적지를 확인한 후엔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준다.
10시가 되어 숙소 앞에 나가 있으니, 지붕에 오토바이를 실은 낡은 미니 버스가 온다. 버스에 오르니 또 한 대의 오토바이가 버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젊은 사람인데, 그 역시 운전을 포기한 것 같다. “나야 나이가 들어 운전을 포기하였지만, 젊은 녀석이 한번 도전해 보지 뭘 포기하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가 출발했다. 차창으로 하장 루프의 풍경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워낙 좁고 경사진 길이라 버스가 제대로 달리지를 못한다. 달리는 도로를 보고 있자니 아찔하다. 이런 험한 길을 혼자서 달려 이곳까지 왔으니, 나도 참 무모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곳에 올 때는 길이 하도 험하여 다른데 신경은 못쓰고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제 버스를 타고 좀 여유가 생겨 주위를 살펴보니, 그야말로 요즘 젊은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난이 아니다." 커브는 거의 대부분 U자 형태로 구부러진다. 그런 커브길이 수도 없이 이어진다. 끝도 없이 내리막을 내려가는 것 같아 고도계를 확인해 보니 해발 200미터 정도가 된다. 그런 다음 또 끝도 없이 올라간다. 확인해 보면 해발 1,600미터가 훌쩍 넘는다. 이런 길이 계속 반복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높고 험한 길을 차로 다녀본 적이 없다. 설악산 한계령 계곡이나 속리산 말티고개 정도는 여기에 비한다면 어린이 놀이터에 불과하다. 버스가 하도 흔들려서 그런지 잠이 쏟아진다. 대리운전을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능숙한 운전자가 운전하더라도 몇 시간씩이나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이 길을 간다는 게 보통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길을 혼자서 뚫고 왔다는 사실에 한편 뿌듯해지기도 한다. 중간에 한번 휴게소에 들렀지만, 차 안에서 하도 흔들려 식욕도 나지 않는다.
하장을 40킬로 정도 앞두고 그때부터 길이 좋아진다. 벌써 차가 출발한 지 5시간이 지났다. 동반에서 하장까지 150킬로이므로, 110킬로미터의 산악도로를 5시간 걸려 달려온 것이다.
이후 스케줄을 어떻게 할까 선뜻 마음이 정해지지 않는다. 당초 계획대로 반지옥 폭포에 갈까, 아니면 폭포 관광을 생략하고 바로 하노이나 닌빈으로 갈까 망설여진다. 그래,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반지옥 폭포까지 가자. 결심이 섰다. 반지옥 폭포는 까오방에서 90킬로 정도 떨어져 있다. 그럼 까오방은 어떻게 가나? 이곳 하장에서 하루에 한 편 버스가 있다. 이 버스를 타고 오늘 출발했던 동반으로 가, 거기서 온만큼 거리보다 더 멀리 동쪽으로 가야 한다.
며칠 전에 묵었던 숙소로 다시 왔다. 전기매트를 뜨끈하게 깔고 몸을 녹인다. 내일부터 3일 정도는 또 강행군을 해야 할 것 같다.
여러분들 가운데 <바람의 검심>(るろうに剣心)이라는 일본 만화를 읽어보신 분들이 계실 것이다. 메이지 유신 전후를 배경으로 유신파의 칼잡이가 된 켄신(劍心)이라는 청년의 활약을 그린 만화로서, 대히트를 쳐 실사영화, 극장판 애니메이션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젊은이들 사이에 큰 인기를 얻은 걸로 알고 있다.
켄신의 무기는 역날검(逆刃刀)이다. 그는 유신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을 죽였으므로, 유신이 끝난 후 막부 잔당들과의 싸움에서는 더 이상 살인을 않으려고 칼날 쪽은 뭉툭하고, 칼등에 날이 있는 역날검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제 그의 칼에 죽는 사람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일본도는 약간의 초승달 모양으로 굽어있다. 그러니까 켄신의 역날검은 볼록한 면에 날이 있는 보통의 일본도와는 달리 오목한 쪽, 즉 칼등에 날이 있는 것이다.
며칠 전 베트남 박하시장에서 과도를 하나 샀다. 그런데 이곳의 칼은 대형 식칼은 중국식 식칼처럼 직사각형의 둔탁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날이 좁은 칼은 대부분 초승달처럼 크게 휘어있다. 내가 산 과도도 역시 아주 멋있게 휘어있다. 숙소에서 사과를 깎으려고 칼을 꺼내니, 어라? 칼날이 볼록한 면이 아니라 오목한 면에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서양 낫처럼. 바로 켄신의 역날검과 같은 역날과도(逆刃果刀)이다.
과도를 불편하게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속으로 불평하며 사과를 깎는데, 어라! 그게 아니다. 아주 편하다. 나는 원래 사과를 잘 못 깎는다. 그런데 이 역날과도를 사용하니 아주 쉽게 깎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일직선으로 된 우리의 과도보다 훨씬 낫다. 역시 베트남 사람들은 머리가 좋다.
그런데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역날과도는 과일을 깎기 위하여 반드시 날이 있어야 하지만, 다시는 살인을 않겠다고 맹세한 켄신은 왜 칼등에 날을 만들었을까? 처음부터 날이 없는 무날도(無刃刀)을 무기로 하였으면 실수로라도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을 거고, 칼을 만들기도 쉬웠을 텐데. 아니면 처음부터 진검대신 목검이나 죽도를 가지고 다녔으면 더 확실했을 텐데. 그러고 보면 일본인은 머리가 나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