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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n 05. 2024

영화: 막부말(幕末, 바쿠마츠)

도쿠가와막부 말기의 풍운아 정치인 사카모토 료마의 활약과 죽음

■ 개요


약 2000년의 일본 역사에서 하이라이트가 되는 시기를 꼽으라면 전국시대에서 도쿠가와 막부 초기에 이르는 1550-1620년 사이의 70년 정도, 그리고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정부 초기에 이르는 1850-1880년의 30년 정도의 시기일 것이다. 일본의 역사영화, 소설, 드라마 가운데 압도적으로 많은 부분이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 막부말(幕末, 바쿠마츠)은 막부말기를 시대배경으로 사카모토 료마(坂本竜馬)의 활약과 그의 죽음을 그린 작품이다. 일본에서는 가끔 일본의 역대 정치가들 중에서 누가 가장 위대한 정치가인가를 묻는 여론조사를 하는데, 그때마다 1등으로 선정되는 인물이 바로 사카모토 료마이다. 그리고 그의 뒤를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미나모토 요리모토(源頼朝) 등이 잇는다.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 시고쿠(四国)의 도사번(土佐蕃)의 하급 사무라이 출신으로 막부 타도를 위한 활동을 한다. 당시 막부에 반발하는 주요 세력은 쵸슈번{長州蕃}과 사츠마번(薩摩蕃)이었는데 이들 두 번은 서로 앙숙이었다. 사카모토 료마는 앙숙인 이들 두 번을 중재하여 손을 잡게 함으로써 막부를 타도하고 메이지 정부를 수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메이지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33살의 젊은 나이로 암살에 의해 죽고 만다. 


사카모토 료마를 주인공으로 한 많은 문학작품이 있다. 이 영화는 그 가운데서 시바료타로(司馬遼太郎)가 쓴 <료마가 간다>(竜馬がゆく)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블로그에서도 사카모토 료마를 주인공으로 한 대하드라마 <료마전>을 소개한 바 있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막부말>(幕末, 바쿠마츠)은 1970년 일본에서 제작되었다. 


■ 줄거리


일본 시고쿠(四国)의 도사번(土佐蕃)의 비 오는 날. 다리를 절면서 게다(下駄, 일본 나막신)를 끌며 걷고 있던 행상이 대낮에 번의 상급무사 야마다(山田)에게 억울하게 살해된다. 도사번에서는 사무라이가 아니면 게다를 신을 수 없다는 규칙 때문이다. 하급무사인 나카히라(中平)는 몸이 불편한 행상을 보고는 마음이 아파 우산과 게다를 주었는데, 그 친절로 인해 불쌍한 행상이 죽은 것이다. 분노한 나카히라는 야마다를 창으로 찔러 죽이고 자신도 죽는다. 

이러한 비참한 사건을 알게 된 하급무사 사카모토 료마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고향인 도사번을 탈번(脱藩)한다. “탈번”이란 사무라이가 영주의 허가 없이 번을 떠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사형에 처해지는 중죄이다. 에도(江戸, 지금의 동경)로 온 료마는 평소 갈고닦은 검술실력으로 치바(千葉) 도장에 몸을 의탁한다. 치바는 당시 막부의 해군장관 카츠 카이슈(勝海舟)를 개국론자의 우두머리로 보고 싫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료마는 카이슈의 저택을 찾아가 서로 입장은 다르지만 모두 나라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은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즈음 근왕도막(勤王倒幕), 즉 천황에게 충성하고 막부를 쓰러트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사쓰마(薩摩)와 쵸슈(長州) 두 번은 주도권을 놓고 격렬히 대치하고 있다. 1865년 료마는 나가사키에 사중(社中)이라는 조직을 창설하여 해운업에 나선다. 그러나 료마는 해운업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친구인 나카오카(中岡)와 함께 사쓰마ㆍ쵸슈 두 번의 동맹을 위해 뛰어다닌다. 료마가 자리를 비운 사이 대신 회원 가운데 한 사람인 된 곤도(近藤)가 사중의 규약위반을 이유로 동료들에게 절복(切腹)을 강요당해 자결한다. 나카오카는 동지들의 치사한 차별의식을 보고 격노한다. 

얼마 후 료마는 쵸슈의 카츠라(桂)와 사쓰마의 사이고(西郷)의 만남을 주선하여 두 번 사이의 반목을 해소하고, 나아가서는 두 번의 동맹을 성사시킨다. 이렇게 료마는 정치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올리지만, 막부의 관리들에게 요주의 인물로 찍혀 쫓기게 된다. 료마는 오요시(お良)와 결혼하지만, 마음 놓고 정착할 곳이 없다. 


료마의 활약으로 사쓰마와 쵸슈가 중심이 된 도막파(倒幕派)의 기세가 오르자, 이에 당황한 것은 조정과 막부의 협력을 주장한 도사번이었다. 도사번의 고위관리인 고토 쇼지로(後藤象二郎)는 료마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이에 료마는 쇼군 요시노부(慶喜)를 설득하여 정권을 조정에 반환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설득한다. 마침내 1867년 “대정봉환”(大政奉還)이 이루어진다. 이는 250년 동안 일본을 통치해 온 막부를 폐쇄하고 정권을 조정, 즉 천황에게 바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염원해 왔던 거사를 성공시킨 료마는 자신의 집에 찾아온 나카오카와 함께 앞으로 새로이 들어설 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은 “신정부강령 8조”에 대하여 논의한다. 이때 여러 명의 자객이 료마의 집을 습격하여 두 사람을 암살한다. 이렇게 하여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풍운아 료마는 33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그의 친구 나카오카는 30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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