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서유럽 렌터카 여행(5)
빠른 시차 적응을 위하여 어제저녁 늦게 자려고 참고 참았는데 유튜브에서 다운로드한 바둑중계를 보다가 결국 오후 7시가 되어 잠들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오후 11시이다. 이때부터 다시 자다 깨다 하면서 오전 5시 정도에 일어났다. 짐 정리를 대충 하고 난 뒤 어제 사둔 음식들로 아침을 먹었다. 빵에 햄과 소시지, 우유, 오렌지 주스까지 먹었으니 푸짐한 아침이다. 누룽지 삶은 것으로 식사 마무리를 했다.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는 독일의 서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중세시대부터 발전해 왔다.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아름다운 중세시대의 건물과 풍경 또한 자랑거리이다. 그러나 하이델베르크는 역사적으로 많은 전란에 휩쓸리기도 하였다. 30년 전쟁에서 도시가 크게 파괴되었으며, 30년 전쟁의 후유증이 아물기도 전에 팔츠 계승 전쟁 때 프랑스에 점령당해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에도 나폴레옹 시대에는 프랑스의 점령하에 있으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하이델베르크의 관광명소는 하이겔베르크 성 주변에 몰려있다. 9시가 조금 못되어 먼저 하이델베르크성으로 향했다. 내비 길안내 음성이 우리말로 나오니 한결 운전하기가 쉽다. 하이델베르크 시내로 들어가더니 이내 강변도로로 방향을 꺾는다. 하이델베르크 성 아래를 흐르는 네카르 강(Neckar River)이다. 그리 넓지는 않아 보이지만 아주 깨끗한 강이다. 하이델베르크성 주위는 옛날 중세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작은 돌 포장으로 된 좁은 길 양쪽으로 중세풍의 건물들이 길게 들어서있다. 골목같이 좁은 길이 이리저리 나있어 내비게이션이 있어도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일단 주차부터 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역사유적의 경우는 입구 근처에 큰 주차장이 있어 입구를 쉽게 찾을 수 있고 주차도 쉽게 할 수 있는데, 여긴 그렇지 않다. 내비는 아주 좁고 가파른 골목길로 인도한다. 어쩐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내비가 안내하는 대로 운전을 하니, 성 담장이 나온다. 골목길 양쪽은 모두 주택들이고, 자동차들이 골목 한쪽으로 주차되어 있다. 이곳에 주차하여야 하나 하며 고민을 하던 중, 1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하이델베르크 성을 찾는다고 하니, 여기는 주차할 수 없다고 하면서 가는 길과 주차장을 친절히 가르쳐준다.
다시 골목길을 내려가 작은 광장 아래에 있는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주차장을 나오니 언덕 저 위에 성의 한 모퉁이가 보인다. 성으로 향하는 길은 좁은 돌멩이 포장길이다. 제법 가파른 길이다. 성주의 가족이나 고위직들은 아마 말을 타고 이 길을 오르내렸을 것이다. 그럼 여자들은? 아마 마차를 타고 다녔겠지.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 이렇게 가파른 길을 마차로 내려간다면 마차가 굴러 끌고 가는 말을 덮칠 것인데, 어떤 방법으로 그를 피하나? 마차에 브레이크라도 달려있었나 등 쓸데없는 생각들이 떠오른다.
성 입장료는 9유로이다. 여긴 경로 할인도 없다. 성으로 올라가니 먼저 넓은 테라스의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 오르면 성 아래쪽 풍경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성 바로 아래쪽은 올드타운이고 그곳을 지나면 네카르 강이 흐른다. 강폭은 넓지 않지만 수량이 많고 아름다운 강이다. 하이델베르크성은 아름다운 성이지만 올라오면서는 성 전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성 안으로 들어오면 기대와는 달리 별로 볼 것이 없다.
이 성은 13세기 중반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우리로 치면 고려말 무렵이다. 그렇게 건설된 시대를 생각한다면 아름답고 잘 지은 성이다. 처음 지을 당시에는 작은 요새로 시작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특히 팔츠 선제후들의 거주지로 사용되면서 성은 점점 더 화려하고 웅장해졌다고 한다. 성 안의 건물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건물 밖에서 건물 외양만 보는 셈인데, 그저 그런 느낌이다. 성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현대에 들어 보수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성 뒷문으로 나가면 작은 식당가가 있고 성 위쪽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조금 걸어 올라가면 테라스 형태의 정원이 나온다. 18세기의 유명한 정원 디자이너인 프랑스인 피가게라는 사람이 설계를 하였다고 한다. 정원은 길게 연결된다. 이곳에 오면 비로소 하이델베르크성의 전경이 보인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성이다. 하이델베르크 성의 진면목은 이곳에 와서야 제대로 알 수 있다. 잠시동안 가졌던 하이델베르크 성에 대한 실망감이 일순간에 날아간다.
이곳 정원에 오는 데는 입장료도 필요 없다. 만약 하이델베르크 성을 방문할 기회가 있는 분이라면, 입장권을 끊지 말고 곧장 이곳으로 오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성으로 내려갔다. 성 안에 작은 박물관이 있어 들어갔더니 약 박물관이다. 이곳 하이델베르크는 중세시대 약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많은 약학 관련 서적이 발간되었으며, 많은 약을 개발하였다고 한다.
박물관을 나와 성밖으로 나가려는데 길을 잘못 들어 옛날 와인 제조창으로 들어가 버렸다. 엄청나게 큰 술통이 건물 한쪽에 놓여있다. 1751년에 만들어진 이 와인통은 약 220,000리터의 와인을 저장할 수 있어, 세계 최대의 와인 통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