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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l 06. 2024

난감했던 이태리 고속도로 경험

(2024-05-06 월b) 서유럽 렌터카 여행(24)

고속도로를 내려오니 이곳 숙소인 리조트는 인터체인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덕분에 별 고생 없이 숙소에 체크인할 수 있었다. 이제 장을 보러 가야 한다. 구글맵으로 검색을 하니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대형 슈퍼마켓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도보로 경로를 검색하니 1.5킬로로 나온다. 리조트 입구에서 조금 가면 왕복 10차선의 도로가 나오는데, 슈퍼마켓은 그 도로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 도로에는 횡단보도가 없어 저 멀리까지 가서 돌아와야 되기 때문이었다. 할 수 없이 차로 가기로 하였다. 큰 도로로 나가 유턴을 하면 바로 슈퍼마켓으로 갈 수가 있다. 


그런데 유턴을 해야 할 네거리로 가니 그곳은 신호등이 아니라 로터리, 즉 회전교차로로 되어있다. 넓은 도로가 만나는 지점이다 보니 로터리의 차선도 4-5개는 되어 보인다. 세종시에는 이면도로는 대개 로터리 형식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로터리 통행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 있지만, 이렇게 차선이 여러 개인 로터리는 처음 경험해 본다. 거기다가 이태리 운전사들이 다른 차를 배려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제멋대로 쌩쌩 달리는 속에서 정말 진땀을 흘리며 겨우 로터리를 통해 유턴을 하였다. 그동안 주위의 차들이 빵빵거리며 난리도 아니었다. 


슈퍼마켓은 엄청 컸다. 우리나라의 중규모 이상의 이마트 정도의 크기였는데, 취급하는 상품은 식료품이었다. 종류가 많아도 엄청나게 많은 식료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과일과 우유, 주스, 과일잼, 음료수, 빵 등을 충분히 샀다. 여기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식료품은 엄청 쌌다. 유럽은 과연 먹을 것에 관한 한 천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1/3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다.  


장을 본 후 숙소로 가기 위해 나왔다. 이번에는 슈퍼에 올 때와 다른 방향으로 가서 유턴을 해야 하는데, 이번 로터리는 좀 전의 로터리보다 훨씬 더 크고 교통량도 압도적으로 많다. 로터리의 차선이 5차선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어쩌다 보니 중간정도의 차선으로 들어갔는데, 안쪽 차선의 차들이 나오고, 바깥 차선의 차들이 쌩쌩 달리는 바람에 로터리를 빠져나올 수 없다. 두 바퀴 정도를 돌고 나니까 어느 도로로 나가야 할지 판단이 잘 안 된다. 겨우 로터리를 빠져나왔더니 내가 가야 할 도로가 아니다. 도로를 따라가니 바로 고속도로 톨게이트이다. 그러니까 지금 통과했던 로터리는 인터체인지 바로 앞에 위치한 것이었다. 


차를 돌릴 방법이 없으니까 일단 톨게이트로 들어갔다. 그런데 여긴 전무 무인으로 운영된다. 앞에 차단기가 내려져 있는데, 올라가지 않는다. 통행권을 뽑아야 하나 하고 살펴보았지만, 통행권을 뽑는 기계가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로 치면 하이패스 통로로 들어와 버린 것이었다. 우리는 잘못 들어와도 통과하고 나중에 정산하면 되지만, 여긴 아예 차단기가 내려와 있어 지나갈 수가 없다. 내 뒤에는 벌써 차가 예닐곱 대 줄을 서있다. 후진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차단기 옆에 있는 기계를 잘 살피니 직원과의 긴급통화 버튼이 있다. 버튼을 누르니 직원인 듯한 사람이 이태리어로 뭐라 뭐라 한다. 나는 기계에다 대고 차단기가 열리지 않고, 통행권 발매기도 보이지 않는다고 영어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기계에서는 영어인듯한 말이 흘러나오는데, 주위가 시끄럽고 하여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나대로 소리치고, 기계 속의 직원은 저대로 무슨 소리를 지르는 그런 상황이 이어졌다. 이미 내 뒤에 있는 차에서는 운전자들이 차에서 내려 무슨 일인가 하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 갑자기 차단기가 올라갔다. 커뮤니케이션이 통하지 않는 데다 이쪽 통행로에 정체가 생기니 직원이 그냥 차단기를 올려준 모양이다. 일단 고속도로로 들어갔다. 6킬로 정도 달리니 옆으로 진출로가 보인다. 진출로를 탔지만, 이제 톨게이트를 빠져나가야 할 일이 생겼다. 직원이 있는 통행로가 있는가 살펴보았지만, 전부 무인 통행로이다. 그중 한 통행로로 나가니 당연히 차단기가 내려져 있다. 통행권이 없으니 통행료를 정산할 방법이 없다. 다시 긴급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직원이 나와서 무슨 일이냐고 묻는 듯하다. 급한 상황이라 제대로 설명을 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급한 대로 바로 지난번 톨게이트를 통해 들어왔는데, 들어올 때 통행권을 받지 못해 이곳에서 정산을 못하여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소리쳤다. 직원이 뭐라고 묻는 것 같은데 뭐라는지 알 수가 없다. 차량 소음으로 시끄러운 데다 전화통 목소리가 작아 제대로 대화가 될 수 없다. 결국 직원은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하고 싱강이를 벌여봤자 자신만 손해라고 판단한 듯 차단기를 열어준다. 이렇게 해서 결국 공짜로 고속도로를 통행한 셈이 되었다. 


이제는 고속도로를 타고 다시 돌아가야 한다. 이번에는 통행권을 발권하는 통행로를 찾아 무사히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그런데 숙소가 있는 베네치아 톨게이트를 나가면서 또 이태리 하이패스 통행로로 들어가 버렸다. 이번에도 할 수 없이 또 긴급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는 다행히 뒤차의 여자 운전자가 대신 직원에게 이야기를 해준 덕택에 쉽게 톨게이트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결국 고속도로를 두 번 공짜 통행하게 되었다. 


이렇게 한바탕 생쇼를 한 끝에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시간을 많이 허비한 탓에 날이 어둑어둑해진다. 오늘은 베란다에서 구워 먹으려고 스테이크까지 사 왔는데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사 온 것, 어두운 속에서도 대충 구워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이제 좀 진정이 된다. 독일에서도 인터넷 통신이 시원찮았는데, 이태리는 더하다. 와이파이가 되다 안되다 한다. 저녁에 오늘자 기행문을 썼는데, 통신이 불통되는 바람에 글이 통째로 날아가버렸다. 할 수 없이 한 번 썼던 글을 다시 썼다. 아마 글을 써본 분이라면 한 번 썼던 글이 없어져 다시 쓴다는 것이 얼마나 김새는 일인지 잘 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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