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25 토a) 서유럽 렌터카 여행(52)
오늘은 당초 베르사이유 궁전에 가려고 생각했다. 인터넷을 통해 티켓을 구입하여야 하는데, 뭐가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아니 어렵다기보다는 이용하는 사람이 사용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한 단계 절차가 끝나면 다음 단계로 알기 쉽게 착착 넘어가야 하는데, 그걸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시간을 가지고 차분히 티켓을 구입해야겠다.
오늘은 에펠탑과 개선문만 가기로 하였다. 복잡한 도심 교통을 고려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파리의 대중교통수단은 유럽의 다른 도시들과 비슷하게 4개로 구분된다. 먼저 지하철(Métro)과 버스가 있고, 그리고 트램, 마지막으로 RER(Réseau Express Régional)이 있다. RER은 지하철보다 더 넓은 지역을 커버하는 고속 철도 네트워크로서, 시내 지역을 벗어나서 근교나 더 먼 곳으로 가는 데 많이 이용된다. 우리나라의 GTX 같은 것이라 할까?
호텔에서 나와 10분간 걸으면 RER 역이 나온다. RER 티켓을 구입하면서 또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발권기에 왕복표 2매를 구매하겠다고 입력한 후, 티켓 값 12유로를 지불하려고 카드를 넣었는데. 표가 달랑 한 장만 나온다. 이게 두 사람용 티켓인가 생각하고 개찰기에 티켓을 넣었지만 문이 열리지 않는다. 몇 번이나 시도해 보아도 마찬가지다. 돈을 그냥 날렸나... 직원과 연결하는 벨을 눌렀지만 직원의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응답도 않는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다시 발권을 해보라지만, 그랬다간 또 12유로만 날릴 수도 있다. 직원과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느라 허둥대고 있는데, 이때 히잡을 쓴 젊은 아가씨가 나타나 도와주겠다고 한다. 그 아가씨 말로는 우리의 표는 이미 쓸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표를 다시 끊기 위해 그 아가씨가 가르쳐주는 대로 절차를 다시 진행하였다. 조금 전에 내가 했던 방법과 똑같다. 기계에서 돈을 지불하라기에 카드를 터치판에 갖다 대었다. 그런 후 내가 카드를 떼려 하자 그 아가씨가 카드를 계속 누르고 있으라고 한다.
좀 기다리니 발권기에서 티켓 한 장이 툭 떨어진다. 티켓이 제대로 나왔다 생각하고 티켓을 집어드니까, 이건 티켓이 아니라 한다. 그런 뒤 조금 더 기다리니 진짜 티켓이 나온다. 앞의 것은 티켓이 아니라 영수증이라 한다. 이번에 끊은 티켓으로 무사히 입장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티켓을 끊을 때는 카드를 가계의 터치판에서 일찍 뗐던 것이었다. 그래서 기계에서는 결제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영수증을 발권하였고, 나는 그것을 티켓으로 오인했던 것이었다. 티켓과 영수증은 모양이 똑같고 안에 적힌 글자만 다르다. 티켓 발매가 제대로 안될 경우 다른 도시에서라면 무임승차를 했을 것인데, 파리의 RER과 지하철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개찰구가 닫혀 있어 그냥 들어갈 수가 없다. 가끔 개찰구를 타 넘고 가는 젊은이들을 볼 수 있는데, 나나 집사람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에펠탑에 도착하였다. 나는 20여 년 전에 파리에 출장을 와 하루 반의 짧은 관광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에펠탑은 무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탑 아래쪽으로 가는 데는 입장료를 받고 있다. 그 때문에 에펠탑은 지금은 투명 플라스틱 담장에 갇혀있는 신세가 되었다. 에펠탑(Eiffel Tower)은 아이언 프레임 구조의 탑으로서,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1889년에 완공되었다. 이 탑은 프랑스의 기술자이자 건축가인 에펠에 의해 설계되었다.
문득 에펠탑과 관련한 옛 우스개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철제탑인 에펠탑이 만들어지자 흉물이라 하여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름은 잊었는데 어느 유명한 프랑스의 예술가는 늘 에펠탑을 파리의 흉물이자 수치라고 욕을 하면서도 항상 에펠탑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레스토랑 지배인이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에펠탑을 그렇게 욕하시면서 왜 항상 저녁을 이곳에 드시나요?”
“파리에서 이 빌어먹을 놈의 탑이 안 보이는 곳은 이곳밖에 없어서요.”
에펠탑은 역시 웅장하다. 많은 관광객들이 에펠탑 주위에 몰려있으며, 입장권을 사려고 긴 줄을 서있는 사람도 보인다. 에펠탑 뒤쪽의 잔디밭으로 갔다. 이곳에서 에펠탑이 더 잘 보인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있는 에펠탑은 정말 장관이다. 이전에는 뒤쪽에 사각형의 큰 연못이 있었다고 기억하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20년 전 이곳에서 비둘기 똥 폭격을 받았다. 머리에 떨어진 비둘기 똥을 처리할 방법이 없어, 결국 연못에 머리를 집어넣고 씻었다.
에펠탑을 본 후 개선문으로 향했다. 도보로 2킬로가 넘는 거리이지만, 파리 시내 구경이라 생각하고 이곳저곳 구경하며 쉬엄쉬엄 걸었다. 센 강을 건너 큰길과 골목길을 몇 번씩 바꾸어가며 걷자 저 앞에 개선문이 보인다. 개선문은 12개의 도로가 모이는 큰 로터리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나폴레옹의 개선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이 개선문은 우선 그 크기부터 웅장하기 짝이 없다. 이 개선문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재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선문을 정면에서 볼 수 있는 샹젤리제 거리와 그 건너 쪽에 있는 거리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모여 개선문을 감상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개선문 아래와 주위에 몰려있다. 개선문으로 가는 횡단보도는 없다. 그 많은 사람들이 거의 7차선 정도 되는 로터리를 무단횡단하여 그리로 건너간 것이었다. 로터리어서 차가 쉴 새 없이 다니는데도 위험을 무릅쓰고 건너간 것이었다.
나와 집사람은 샹젤리제 거리 쪽에서 개선문을 구경하면서 사진도 찍고 하였다. 우리도 개선문 바로 아래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시도한다. 나와 집사람도 그 사람들 틈에 끼여 무단횡단을 했다. 그 넓은 도로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빨리 걸었다. 가까스로 도로를 거의 다 건넜다고 생각하였을 때 예쁘게 생긴 여경이 나타난다.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을 질책하려는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차량을 정리한다. 과연 "파리의 경찰"이다. 개선문 바로 가까이 가서 만져도 보고, 벽면의 조각들을 상세히 감상할 수도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 웅장한 문이다.
벌써 오후 8시가 가까워진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 파리에 왔으니 우리는 이제 파리장과 파리잔느가 되어 거침없이 무단횡단을 하며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