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25 토) 서유럽 렌터카 여행(51)
오늘은 파리로 가는 날이다. 중간에 국립공원이 있어 들릴까 하다가, 빨리 파리에 도착해 관광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파리로 직행하기로 하였다. 오늘도 유료도로를 제외한 도로를 택했다.
오세르를 출발했다. 연 3일째 프랑스의 시골풍경을 감상하면서 달린다. 비슷한 풍경이 반복된다. 한 달 전 독일에서 이번 여행을 시작했을 때는 들판이 선명한 초록색과 노란색이었다. 초록색은 보리와 밀 그리고 목초였고, 노란색은 유채꽃이었다. 프랑스로 넘어오면서 유채꽃은 잘 보이지 않았다. 유채를 그다지 재배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 유채꽃이 다 져버린 것인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다.
대신 들판이 조금씩 누런색을 띠기 시작한다. 보리와 밀의 수확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이다. 들판 전체가 진한 초록색에서 연두색으로 바뀌어가며 부분적으로는 완전히 누렇게 변한 곳도 보인다.
유료도로를 제외하고 시골도로만 달리다 보니, 다 좋은데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 바로 마을을 통과하는 일이다. 조금 달리다 보면 마을이 수시로 나타나곤 하는데, 속도제한이 제멋대로이다. 제한 속도가 어떤 곳은 70킬로인 곳이 있는가 하면, 60킬로, 50킬로, 30킬로 등 다양하게 많다. 한 마을을 통과하는데도 몇 번이나 제한속도가 바뀌는 곳도 있다. 게다가 제한속도 표시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곳도 있다. 이러다 보니 마을을 통과할 땐 신경이 보통 쓰이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단속 카메라가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마을로 들어서면 제한속도를 철저히 지킨다. 그러나 단속 카메라의 위치를 알고 있는 이곳 사람들은 마을 길에서 제한속도를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마을을 지날 때마다 내 뒤에는 항상 차들이 꼬리를 물고 따라오며, 어떤 넘들은 빨리 가라고 빵빵거리기까지 한다.
점점 파리가 가까워진다. 오늘까지 3일간 약 500킬로를 달렸건만 처음 출발하였던 알프스권을 벗어나서는 산을 한 번도 보지 못하였다. 아주 완만한 굴곡으로 이루어진 평야가 끝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정말 풍요로운 농촌이다.
드디어 파리에 들어왔다. 튀르키에와 러시아를 제외한다면 유럽에서 가장 크고, 가장 화려한 도시이다. 파리의 인구는 220만 명이지만, 파리 대도시권은 1,200만 명에 이르러, 프랑스의 두 번째 및 세 번째 도시인 마르세이유와 리옹에 비해 10배 이상 크다. 파리는 프랑스 그 자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파리에 들어오니 하이웨이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시내 도로를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하이웨이에서 하이웨이로 바꿔 탄다. 저 앞쪽에 두 갈래로 나뉘는 길이 보인다. 양쪽 도로 모두 5차선은 되어 보이는 넓은 길이고 많은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다. 그런데 구글맵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앞쪽 진입로로 따라가세요”라는 멘트가 나온다. 왼쪽 도로로 가야 할지 오른쪽 도로로 가야 할지 얼른 판단을 못하겠다. 결국 어느 쪽 길을 선택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갈림길 “V” 자의 꼭짓점에 차를 세웠다.
다시 맵을 살피고 도로 안내판을 보니 왼쪽길로 가야 한다. 차를 다시 출발하기 위해서는 일단 어느 정도 후진을 해야 한다. 어느 정도 안전지대가 있기 때문에 후진을 하는 것까진 문제가 없었다. 진짜 문제는 옆차선으로 들어가 출발을 하는 일이다. 차들은 지금 시속 100킬로 이상 속도로 쌩쌩 달리고 있다. 이 차는 매뉴얼이기 때문에 스타트가 늦다. 잘못하면 추돌당하기 십상이다. 왼쪽 차선 뒤를 연신 살피면서 그래도 차가 좀 저 뒤쪽에서 오는 순간을 틈타 비상등을 켜고 옆차선으로 진입을 하였다. 누가 뒤에서 들이받지 않을까 온몸을 긴장시켰으나, 다행히 클랙슨 소리만 몇 번 들었을 뿐 사고는 없었다. 등에 식은땀이 난다. 이후 다시 하이웨이를 몇 번이나 갈아 탄 끝에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파리 중심지에서 5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3박에 28만 원 정도로 예약한 호텔이었기에 거의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깨끗하고도 널찍한 데다 시설도 좋아 아주 만족이다. 시골 호텔들보다 싸면서 룸은 훨씬 좋다. 그런데 도시세가 만만치 않다. 3일간 도시세가 무려 48유로나 된다. 지금까지 가장 비쌌던 피렌체보다도 더 비싸다.
유럽 사람들은 소형차를 많이 탄다는 말을 들었는데, 여행을 와서 보니 소형차들이 정말 많았다. 내가 여기서 언급하는 소형차란 우리나라의 경차 레벨의 초소형차를 말하는 것이다.
소형차의 비중은 나라마다 차이는 좀 있는 것 같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세 나라를 비교해 보자면, 소형차의 비중이 내 느낌 상으로는 이탈리아가 압도적으로 높으며, 그다음이 프랑스, 독일 순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지만 소형차의 비중이 가장 낮은 독일조차도 우리나라와 비교한다면 소형차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다.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은 허세부리 기를 좋아해 큰 차를 선호하고, 유럽사람은 검소하여 소형차를 선호하는가?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우선 유럽은 기름값이 비싸다. 요즘 우리나라 휘발유 값은 리터당 1,700원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독일, 프랑스, 이태리는 2유로, 그러니까 3,000원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2배 가까이 된다. 이렇다 보니 큰 차를 탈 경우 기름값이 감당이 안된다. 집에 있는 내 차는 휘발유 1리터에 보통 10킬로 정도를 달리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렌트해서 타고 있는 FIAT500은 20킬로 이상을 달리는 것 같다.
그러면 독일, 프랑스, 이태리 세 나라는 기름값이 비슷한데도 불구하고 왜 소형차의 비중이 차이가 날까? 내 생각에는 도로사정에 큰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이태리는 어떤 도시를 가더라도 중세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도시 그 자체가 통틀어서 전부 문화유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마다 중심부는 수백 년 전의 세상인 것 같다. 이러다 보니 길은 좁은 골목 같은 데다 거의 미로 수준이다. 큰 차는 당장 통행에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이태리는 정말 소형차의 천국이었다.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작은 2인승 승용차도 눈에 많이 뜨였다.
프랑스도 이태리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옛 중세도시의 자취가 많이 남아있다. 프랑스 역시 대부분의 도시의 중심부는 좁은 골목과 같은 길로 이루어져 있다. 역시 소형차가 편리하고 실용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하면 독일의 도시는 앞의 두 나라에 비하면 상당히 현대적이다. 넓은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그런 만큼 큰 차를 타더라도 큰 불편은 없을 것 같았다.
독일에서는 나 외에는 피아트 500을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이태리로 넘어오니 온천지가 동지들이었다. 정말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