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4 금) 서유럽 렌터카 여행(50)
일주일 전 이태리에서 프랑스로 들어온 이래, 니스, 마르세이유, 아비뇽, 그레노블, 리옹, 본느 등을 거쳐 파리로 향해 나아간다. 마치 엘바섬을 탈출하여 파리로 향해 진군하는 나폴레옹 같은 기분이 든다. 엘바섬이 이탈리아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자연히 나폴레옹의 진공 방향과 비슷한 길로 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내겐 아부해 줄 언론도, 따르는 부하도, 영접해 줄 토벌군도 없다. 오늘은 파리에 입성하기 전 마지막 숙박지인 오세르로 간다.
아침부터 세찬 비가 내리고 있다. 여기 날씨는 정말 예측불가이다. 하루 사이에 세찬 비가 내리다가는 햇빛이 나는 맑은 날씨가 되고, 그러다가 좀 지나면 다시 비가 쏟아지는 그런 날이 계속되고 있다. 이곳 날씨가 늘 이런 지, 아니면 최근 며칠이 특히 변덕스러운 날씨인지 모르겠다.
오세르까지 고속도로로 가면 1시간 30분, 유료도로를 피하면 1시간 50분이 걸린다. 세 시간 정도로 넉넉히 잡고, 오늘도 유료도로를 피해 갈 예정이다. 먼저 경로상에 있는 샤토네프성(Chateau de chateauneuf)에 들리기로 하였다. 샤토네프 성은 12세기에 건설된 고딕 양식의 중세성으로서, 이곳 부르고뉴 지방을 다스리던 영주의 성이었다고 한다.
호텔을 출발하여 40분 정도 달리니, 저 멀리 언덕 위에 성이 보인다. 독일에서 여러 곳의 성을 봤지만, 독일의 성과는 모습이 좀 다르다. 독일의 성은 좀 뾰족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에 비하면 이 성은 좀 둥글둥글한 느낌이다. 처음 이 성을 봤더라면 내 입에서 감탄의 소리가 나왔겠지만, 이미 독일에서 여러 개의 명성들을 봤기 때문에 큰 감동은 없다. 독일의 호헨졸렌 성이나 노이슈반스타인 성과 비교한다면 현저히 떨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샤토네프 성이 무시해도 좋은 그저 그런 성은 아니다. 아름다운 성이다. 언덕 위에는 샤토네프 성이 있고, 성 주위는 작은 마을이다. 주차할 곳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주택 옆 경사도로 옆 빈 공간에 적당히 주차를 하였다. 정식 주차장이 아니라 조금 마음에 걸린다. 주차를 하고 성과 마을을 구경하고 있자니 마을 위쪽에 주차장이 있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그쪽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 게 안전하겠다.
주차장으로 차를 이동하기 위해 시동을 걸렸는데, 이게 웬일! 잠겨진 핸들이 풀리지 않는다. 경사진 도로에 주차하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핸들을 최대한 꺾어두었다. 그 탓인지 키를 꽂고 아무리 핸들을 이쪽저쪽으로 돌려도 잠긴 핸들은 꿈쩍도 않는다. 혹시 다른 방법으로 핸들 잠김을 푸나 하고 계기판 근처에 있는 모든 보튼을 눌러도 보고 당겨도 보았지만 전혀 효과가 없다. 낭패다. 어디다 도움을 청하여야 하나. 사람들도 잘 보이지 않는다. 거의 30분을 씨름했지만 소용이 없다.
낭패다. 이걸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나? 혹시 프랑스 사람들은 알지 않을까 해서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다. 암담한 생각이 들었으나,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기 전에 먼저 혹시나 해서 Chat GPT에게 물어보았다.
나: 피아트 500 핸들 잠금을 푸는 방법을 알고있어?
ChatGPT: 물론이지요. 잘 알고 있습니다. 피아트 500도 다른 차들과 마찬가지로 핸들이 꺾여 있는 방향으로 핸들을 힘주어 꺾으면서 키를 조심스럽게 돌리면 잠긴 핸들이 풀어집니다.
Chat GPT가 가르쳐준 대로 핸들을 꺾여진 방향으로 있는 힘껏 더 꺾으며 키를 움직였다. 두어 번 그렇게 하자 지금까지 그렇게도 꿈적도 않던 핸들이 거짓말처럼 스르르 풀린다. 이번 여행 내내 늘상 거짓말만 늘어놓던 녀석이 처음으로 사람구실을 했다.
샤토네프 성을 찾은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성 주위는 전혀 붐비지 않는다. 성 입장료는 1인당 6유로. 그렇지만 성 안에 들어가 봤자 별 것 없다는 사살을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데, 돈을 내고 성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 성 주위의 아름다운 중세 마을을 감상한 후, 멀리서 성을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은 성이었다.
성과 성 아래의 마을도 좋지만 그보다 더욱 좋은 것은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마을과 벌판의 풍경이다. 성과 마을이 자리 잡은 이 언덕은 이 근처에서 가장 높기 때문에 여기서는 저 멀리까지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잘 볼 수 있다. 바로 아래쪽 풀밭에서는 여러 마리의 소가 풀을 뜯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모두 흰 소이다. 인도에서는 흰 소가 신성한 동물이라 하여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데, 여긴 어떤지 모르겠다. 저 멀리까지 푸른 벌판과 군데군데의 마을들이 환상적인 풍경을 이루고 있다.
프랑스는 국토면적이 약 55만 평방킬로로서 우리나라의 6배가 되나, 인구는 6천만 명이 조금 넘는다. 독일은 약 36만 평방킬로로 우리나라의 4배, 인구는 8,500만 명이다. 이들 국가는 이렇게 인구는 우리보다 많지만 대도시 숫자는 우리와 비교가 안된다.
프랑스의 경우 파리가 210만 명으로 가장 인구가 많고, 2위 도시인 마르세이유는 90만, 10위 도시인 릴의 경우 23만 명에 불과하다. 프랑스 10대 도시의 인구의 합은 580만 명에 불과하다. 물론 대도시권으로 확대하면 도시의 비중은 커진다. 예를 들면 파리 대도시권의 인구는 1,200만 명에 이른다. 10대 대도시권의 인구는 2,2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도 4천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국토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인구 4천만 명이라면 인구 10만의 도시가 400개인 셈이다.
독일은 베를린이 380만 명으로 인구가 가장 많고, 10위 도시인 라이프치히가 58만 명이다. 10대 도시 인구를 모두 합쳐봐야 1,500만 명이 안된다. 7천만 명이 넘는 인구가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 인구 100위 도시는 민덴으로 약 8만 명이다. 100대 도시의 인구 합계는 약 3천만 명이다. 5,500만 명이라는 다수의 국민이 인구 8만이 안 되는 소도시 혹은 마을에 살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서울이 950만 명인 데다, 인구 10위 성남시가 100만이 훌쩍 넘는다. 10대 도시의 인구 합은 2,600만 명으로서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다. 이를 대도시권으로 확대한다면 거의 4천만에 육박할 것이다. 그러니 수도권과 일부 대도시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지역은 텅 비어있는 셈이다. 넓은 지역에 인구가 고루 퍼져있는 프랑스, 독일과 좁은 땅에 인구가 한쪽에 몰려있는 우리는 대비가 된다.
좁은 지역에 수많은 인구가 몰려있으면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갈등은 높아지고, 생활의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지역불균형, 지방소멸 현상을 다시 돌이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