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26 일) 서유럽 렌터카 여행(54)
이제 슬슬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야 한다. 도중에 옛 거리엔 르 마레(Le Marais) 지구가 있다. 식당과 카페들이 많이 몰려 있는데, 벌써 점심때가 지났음에도 사람들이 어마어마하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을 예정이었으나 식당마다 길게 늘어선 줄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근처에서 이름도 알 수 없는 길거리 음식으로 점심을 때웠다.
파리 시내는 일부러 명소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거리와 건축물이 있어 발길 닿는 대로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것도 괜찮은 선택인 것 같다. 루브르까지 거의 2킬로 가까이 남았지만, 구경을 하면서 느긋이 걸어가면 괜찮을 것 같다.
휴대폰을 구입한 지 이제 4년이 되어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 아침부터 계속 내비를 켜두었고, 사진도 찍고, 검색도 하고 했더니 벌써 배터리가 30% 아래로 내려갔다. 보조배터리를 가져왔으나 충전 라인을 잊고 왔다. 루브르 박물관 전자 티켓도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으므로, 배터리가 다 되면 박물관에 입장도 못한다.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루브르 박물관(Le Musée du Louvre)은 소장품도 좋지만 건물자체가 멋있다. 박물관 건물은 중세시대인 12세기말 파리의 방어를 위한 요새로서 시작되었다. 당시의 건물에는 성벽과 방어용 탑이 있었다고 한다. 14세기 후반부터 이 이곳은 왕실의 거주지로 바뀌었고, 16세기 프랑수아 1세가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으로 재건축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루브르는 왕실의 주요 거주지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루이 14세가 베르사이유 궁전을 지어 왕궁을 그쪽으로 옮기면서 루브르는 예술품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장소로 바뀌었다고 한다. 루브르 박물관의 전시 공간은 약 73,000평방 미터라고 하니, 약 25,000평에 가까운 면적이다. 정말 어마어마하다.
박물관으로 가니 입장 줄이 길게 서있다. 빨리빨리 체크하여 들여보내주면 좋겠는데, 너무 꾸물거린다는 생각이 든다. 겨우 입장을 하였더니 그게 다가 아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3개 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데 또 티켓 검사를 한다. 티켓 검사를 위해 휴대폰을 계속 켜두고 있었더니 이제 배터리는 10% 조금 넘게 남았다. 줄이 제일 짧은 루브르 박물관 소개관에 입장한 후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휴대폰을 껐다.
여기에는 주로 루브르 박물관의 역사, 현재의 모습 등이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다. 집사람이 너무 피곤하다며 전시관 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 쉬겠다고 하며 혼자 구경하고 오란다. 안으로 들어가 구경을 하는데, 이곳은 단조로운 성벽과 같은 구조물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 별로 볼 것이 없다. 자꾸 휴대폰에 신경이 쓰여 차분히 전시물을 둘러볼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5분 좀 넘게 둘러보고 집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왔는데, 기다리고 있어야 할 집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잠깐 전시물을 보러 갔나 하고 앉아서 기다리는데 10여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다시 전시관 안으로 들어갔지만 찾을 수 없다. 이 넓은 곳에서 서로 잃어버렸다간 도저히 못 찾는다. 할 수 없이 다시 휴대폰을 켰다. 배터리는 겨우 10% 정도 남았다. 집사람에게 전화를 하는데 통신이 안된다. 할 수 없이 찾으러 다녔다.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렀다가 지금까지 온 길을 역방향으로 다시 찾아갔다. 안 보인다. 그렇게 박물관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찾아다니는 한편, 계속 통화를 시도하였다. 여전히 전화는 먹통이다.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갈 만한 곳을 찾으면서, 통화를 계속 시도하였다.
얼마를 그렇게 찾으러 다녔을까, 휴대전화가 곧 꺼지려는 순간 드디어 통화가 연결되었다.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나 어디냐고 고함질렀다. 모나리자가 전시된 곳이라 한다. 찾아가 겨우 만났다. 앉아서 기다리던 중 잠시 전시물을 본다고 하다가 옆으로 옆으로 이곳까지 와버렸다는 것이다. 거의 1시간 반 가량을 집사람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벌써 오후 5시 40분, 오후 6시 폐관 시간이 가까워져 이제 관람객들도 하나둘 퇴장하고 있다. 전시실도 하나씩 하나씩 문을 닫는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20년 전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일행들 때문에 제대로 감상도 못해, 이번에는 시간을 갖고 차분히 감상하려고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두 시간 가까이 집사람을 찾는다고 돌아다니다 시간을 다 허비해 버렸다. 그냥 퇴관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화를 삭이기 힘들다. 나오는 길에 모나리자만을 잠시 보고 나왔다.
지하철과 RER을 갈아타고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 지하철을 타고 RER 역으로 갔다. 그런데 여자 역무원 두 사람이 역 입구에서 승객들을 막고 있다. 열차가 운행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 다시 운행하느냐고 물어보니 오후 9시란다. 근처 벤치에 앉아 다른 교통수단을 검색해 보았다. 만만치 않다. 택시를 타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RER 역 문이 열린다.
플랫폼에 내려가 차를 기다리는데, 오지 않는다. 어떻게 할 것이라는 특별한 안내방송도 없다. 다른 승객도 기다리고 있으니 함께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린 끝에 겨우 열차를 탈 수 있었다.
하루종일 일이 꼬인 날이었다. 그 때문에 거의 3만 보 가까이 걸었다. 숙소에 들어오니 완전 탈진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