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8 화) 서유럽 렌터카 여행(56)
티켓만 제때 예약했어도 오늘 오전 베르사이유 궁전을 둘러보았을 텐데, 어쩔 수 없이 그냥 파리를 떠난다. 이제 여행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오늘 랭스에서, 그리고 모레 메스(Metz)에서 자고 나면 프랑스를 떠나 독일로 가게 된다.
그저께와 어제 이틀을 연속해서 많이 걸었더니 피곤해서 잠이 쏟아진다. 어제 9시에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아침 8시이다. 거의 11시간을 잤는데, 최근 몇 년간 이렇게 오래 잔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오래 자고도 계속 졸린다. 아침에 3일 동안 어질러 놓았던 짐을 싸서 호텔을 출발하였다.
파리 시내를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다. 호텔이 위치한 곳이 변두리이긴 하지만, 교통 신호와 도로에 익숙지 않아 긴장이 된다. 그렇지만 하이웨이로 일단 올라오니 다음부터는 하이웨이로만 쉽게 연결된다. 하이웨이를 몇 번을 옮겨 타니 파리를 빠져나온다. 랭스까지는 약 150킬로이다. 중간에 다른 명소라도 들릴까 했지만 오늘은 빨리 숙소에 도착해 쉬고 싶다.
파리 시내를 빠져나오니 다시 아름다운 농촌풍경이 시작된다. 프랑스는 남부의 알프스권과 서부의 피레네권을 제외하면 거의 산이 없는 것 같다. 랭스로 가는 길도 아주 완만한 구릉이 이어지는데, 숲과 밭이 어우러진 녹색의 풍경이 더없이 아름답다.
랭스에 도착하니 12시 정도가 되었다. 호텔 체크인이 3시부터라 한다. 호텔에 차를 주차해 두고 랭스 시내를 구경하러 나갔다. 랭스는 파리에서 2시 방향으로 약 15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도시로서, 인구는 20만 명에 조금 못 미친다. 그렇지만 이 정도라면 프랑스에서는 큰 도시 축에 끼인다. 검색해 보니 인구 기준 12번째 도시라 한다.
랭스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는 랭스 대성당, 즉 랭스 노트르담 성당이다. 호텔에서 1킬로 남짓 거리라 슬슬 걸어갔다. 랭스는 예로부터 프랑스 왕을 신성화시키기 위하여 여러 의식들을 치렀던 곳이라 한다. 아침부터 하늘이 찌푸려있더니 가끔씩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한다. 랭스의 건축물도 프랑스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고풍스러운 양식이다. 시내 중심지의 도로가 넓은 편이며, 특히 보행자 길이 상당히 넓고 편하게 되어있다. 보행자 도로에는 인근 레스토랑에서 테이블과 좌석을 내놓고 있는데, 날씨 탓인지 손님은 없다.
랭스 대성당에 도착하였다. 아주 웅장한 데다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랭스 대성당은 13세기에 건축되었는데, 프랑스 왕들이 이곳에서 대관식을 가졌다고 한다. 성당 전면에는 정교한 조각상들이 새겨져 있다. 고딕 양식의 이 성당은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라 평가받고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외관이 웅장하므로 당연히 내부의 예배당도 크다. 성당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 엄청 크다. 어른 5명 정도가 손을 잡고 둘러야 할 정도이다. 성당의 앞쪽과 뒤쪽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다. 성당의 규모와 아름다움에 압도될 것 같다. 옛날 프랑스왕이 이곳에서 대관식을 가지면, 없던 위엄도 저절로 생겼을 것 같은 분위기이다.
성당 바로 옆에는 랭스의 두 번째 명소라 할 토 궁전(Palais de Tau)이 있다. 토 궁전은 평상시에는 랭스 성당 대주교의 거처로 사용되었으며, 왕의 대관식이 있을 때는 대관식 준비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프랑스왕의 대관식과 관련한 많은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성당을 나와 토 궁전으로 가니 문은 폐쇄되었고, 문 안쪽에는 큰 가림막이 설치되어 궁전의 모습을 가리고 있다. 안내판을 보니 지금 대대적인 보수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 정부가 약 800억 원의 비용을 지원하여 앞으로 수년에 걸쳐 점진적인 보수가 이루어질 것이라 한다.
랭스는 세계의 샴페인의 중심지라 한다. 그래서 샴페인에 관한 다양한 행사가 열리며, 여러 가지 샴페인 관광상품도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날씨 때문에 더 이상 관광할 마음이 나지 않는다. 빨리 숙소로 돌아가 쉬어야겠다.
메이지 유신 후 일본에는 서양문물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당대의 일본학자나 문필가들은 서구 문명과 함께 들어온 새로운 개념의 말에 적합한 단어를 만들어내려고 고심하였다. 그때 그들이 만들어 낸 한자 단어들을 현재 우리는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한자 단어들은 그때 만들어진 말이라 하려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시 일본학자나 문필가들이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일본사회 혹은 동양사회에서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의 말을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그런 경우는 할 수 없이 번역어를 만들기보다는 원어를 그대로 가져와 발음하되, 비슷한 음을 갖는 한자를 가져다 붙이는 것이었다. 로망(浪漫)이라든가, 코레라(虎列剌) 등이 그 대표적이다.
서구인들이 일본에 들어오면서 그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하던 대로 클럽(club)이라는 사교모임을 활발히 하였다. 클럽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일본인들은 이 클럽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결국 "쿠라부"라는 원어를 그대로 쓰기로 하고, 그 발음에 맞추어 "俱樂部"라고 한자로 표기하였다. 만들어 놓고 보니 쿠라부가 "함께 즐기는 모임"의 뜻이 되니 그럴듯하게 된 셈이다.
프랑스의 소도시를 보니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롭다. 마을마다 잘 가꾼 공원이 들어서있어 가족들이 함께 소풍을 즐기기도 하고, 혼자서 개를 데리고 나와 평화롭게 산책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연 속에 묻혀 자연과 함께 더없이 평화로운 삶을 사는 것 같다. 혼자서 숲길을 거닐며 갖은 사색에 잠기기도 하면서 뛰어난 철학자도 탄생하는 것 같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저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일 년 365일을 매일같이 아이들과 소풍을 즐길 수도 없는 노릇이며, 개와 산보를 즐기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어떻게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그럴 수 있나. 사색을 통해 위대한 철학자로 탄생한다는 것은 수백만 분의 일의 가능성에 지나지 않아 도저히 범인으로서는 도달할 수 있은 경지가 아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사람들이 생활의 무료함을 덜고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통해 즐거움을 얻으려는데서 클럽이라는 사회적 관계의 장이 생겨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친구끼리 어울려 술 마셔야 하지. 당구도 쳐야지, 노래방도 가야지, 조금 쉴만하면 무슨 동창회니 무슨 모임이니 하며 불러내니까 도무지 클럽이라는 것이 들어 설 틈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