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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떠나 독일 쾰른으로

(2024-05-30 목) 서유럽 렌터카 여행(58)

by 이재형

15일간의 프랑스 여행을 마치고 오늘은 독일로 간다. 독일 쾰른에서 하룻밤을 잔 후, 이번 여행의 출발지였던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귀국할 예정이다. 쾰른까지는 약 300킬로미터이다.


최근 며칠간 오전은 항상 흐리거나 비가 온다. 오늘도 잔뜩 찌푸린 날씨에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진다. 출발을 하니 빗줄기는 한층 더 굵어진다. 쾰른에 가기 위해서는 룩셈부르크를 거쳐야 한다. 유료도로를 제외했은데도 계속 고속도로 같은 도로로 달린다.


출발한 지 60킬로쯤 지나자 룩셈부르크로 들어왔다. 그러나 물리적인 국경이 보이지 않으므로 언제 룩셈부르크에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다. 간간이 보이는 글자가 불어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룩셈부르크로 들어왔다고 짐작할 뿐이다. 유럽은 이제 눈에 보이는 국경은 완전히 사라진 것 같다. 룩셈부르크는 국토 면적이 아주 좁은 국가라 대부분이 도시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프랑스에 진배없이 푸른 벌판이 계속된다.

쾰른 대성당

도로는 하이웨이의 연속이라 주위의 풍경이 잘 보이지 않으며, 또 그럴 여유도 없다. 한참을 달리니 어느 사이엔가 독일로 들어왔다. 푸르른 독일의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그러나 독일은 고속도로 통행료가 없기 때문에 내비에 유료도로 제외 조건을 넣었지만 여전히 고속도로로 안내한다. 그래서 프랑스에서와 같이 여유 있게 시골풍경을 감상할 수 없다.


어쩌다가 내비가 일반 도로로 안내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독일의 도로는 프랑스와 달리 도중에 차를 세우고 경치를 구경하기 어렵게 되어있다. 우선 중간에 간이 쉼터와 같은 주차공간이 적을 뿐만 아니하, 도로 가에 레일을 설치해 두었기 때문에 풍경을 보기 위해 도로변에 잠시 정차하기도 어렵게 되어있다. 그래서 오직 운전에만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구글맵에서는 운행시간을 3시간 20분 정도로 예측했으니, 평소 같으면 대여섯 시간은 걸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운전에만 집중하였기에 3시간 4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엄청난 높이의 쾰른 대성당

오후 3시 정도에 쾰른에 도착해 숙소에서 한숨 돌리고 있자니 4시가 가까워진다. 여전히 날은 흐리고 가끔 빗방울이 떨어진다. 쾰른 시내관광을 하기로 했다. 쾰른(Köln)은 인구 110만 명으로 독일에서 4번째 큰 도시로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에는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도시가 파리 한 곳인데 비하여 독일에는 그래도 제법 되는 것 같다. 로마 공화정 때 이미 로마인들이 이곳 쾰른에 진출하여 군사기지를 세웠다고 한다. 로마제국에 들어서는 무역항으로서 상업이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쾰른의 명소라면 단연 쾰른 대성당이 꼽힌다. 13세기에 착공하여 무려 630여 년 간의 공사 끝에 19세기말에 완성된 이 건물은 아마 건축기간이 세계에서 가장 긴 건축물로 꼽힐 것이다. "오늘도 또 성당인가"라는 시큰둥한 생각이 들었지만 워낙 유명한 성당이라 가 보기로 했다. 이 성당은 기차역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역 주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역을 통과해 나오니 눈앞에 갑자기 거대한 성당이 나타난다.


정말 규모가 무지무지하게 큰 성당이다. 이번 여행에서 본 성당들의 크기를 비교해 보지는 못하였지만 아마 가장 큰 성당이 아닐까 생각된다. 두 개의 첨탑을 가지고 있는데, 그 높이가 무려 157미터나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한 층 높이가 2.8미터란 점을 생각하면 56층 아파트의 높이에 해당한다. 철근도 없던 그 시절에 이런 건축물을 짓다니 놀랍다.

쾰른 기차역, 성당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호헨졸렌 다리
호헨졸렌 다리에서 내려다보는 라인강

역에서 나오면 성당의 옆면이 나타난다. 성당은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므로 성당 쪽으로 오르는 계단이 마련되어 있는데, 관광객들의 쉼터로도 이용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계단에 앉아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성당 옆면만 보더라도 이 건물이 얼마나 웅장한지 알 수 있다. 길이가 150미터, 폭이 90미터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성당의 정면으로 갔다. 양쪽으로 우뚝 선 첨탑의 위용이 굉장하다.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기도회 중이라 문 안쪽까지만 입장이 허용된다. 성당의 정면에는 많은 부조가 조각되어 있지만,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성당만큼 화려한 맛은 없는 것 같다. 내가 예술품을 평가할 입장은 못되지만, 내 눈에는 조각의 작품성도 프랑스만은 못한 것 같다.


성당을 나와 바로 근처에 있는 호헨졸렌 다리로 갔다. 쾰른을 소개하는 글들을 보면 쾰른의 명소로서 쾰른 대성당에 이어 호헨졸렌 다리를 두 번째 명소로 꼽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이 다리가 매우 중요한 역사성과 아름다움을 갖고 있을 것이라 상상하였다. 그런데 막상 보니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평범한 철교이다. 20세기 초에 건설되었다가 2차 대전 중 파괴되었고, 그 후 다시 건설되었다고 한다. 그다지 역사성이 있다고 할 수도 없다.

호헨졸렌 다리의 사랑의 자물쇠

이런 다리가 무엇 때문에 쾰른의 두 번째 명소가 되었을까? 바로 "사랑의 자물쇠" 때문이라 한다. 다리 벽에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강에 던지면 그 사랑이 영원해진다는 것이다. 사실 사랑의 자물쇠는 진기한 것이 아니다. 세계 여러 곳에 가도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남산을 비롯하여 여러 곳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몇 번 본 적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사랑의 자물쇠를 본 적이 없다. 약 500미터에 가까운 다리의 한 면을 완전히 뒤덮고 있다. 얼마나 오래전부터 자물쇠를 걸기 시작했는지 세월에 따라 자물쇠의 색이 변하여 마치 단층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자물쇠를 걸 장소가 없어 이미 걸려있는 자물쇠에 다시 새 자물쇠를 거는 식이었다.


문득 이 자물쇠 숫자가 과연 몇 개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종종 쓸데없는 짓을 한다. 대충 주먹구구로 세어보니 100만 개가 넘을 것 같았다. 100만이 얼마나 큰 숫자인가? 성냥개비 100만 개를 세려면, 하루 8시간 동안 성냥개비를 센다고 할 때 1달은 걸린다. 여하튼 엄청난 수의 자물쇠였다.

또 호헨졸렌 다리 위에서 보면 쾰른 대성당과 아름다운 라인강의 경치를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호헨졸렌 다리는 그 자체로선 별 것 없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인공의 풍경, 그리고 연인들의 사랑의 약속이라는 환상에 편승해 일약 쾰른시의 명소로 자라 잡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호헨졸렌 다리에는 자동차는 다니지 않고 철로와 넓은 보행자 도로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호헨졸렌 다리를 건너며 쾰른 대성당과 라인강의 경치를 즐기고 있다. 나도 천천히 걸어 다리를 건너갔다 왔다. 어느새 하늘은 개였다. 저 멀리 쾰른 대성당이 역광을 받으며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쾰른시도 역사가 오랜 도시이므로 중심지인 성당 일대의 도로는 그야말로 미로 수준이다. 같은 곳을 맴돌기도 하고 엉뚱한 길로 빠지기도 하면서 등에 식은땀을 흘리며 겨우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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