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31 금) 서유럽 렌터카 여행(59)
오늘은 이번 여행의 출발지인 프랑크푸르트로 간다. 오늘 그곳에서 해야 할 큰일이 있다. 여행을 시작한 지 며칠 안되어 주유소 직원의 고집으로 휘발유 차에 디젤유를 넣어버렸다. 결국 차는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다른 차로 갈아타고 여행을 하였다. 렌터카 회사로부터 아마 차 수리비 청구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몇 년 전에 아들이 내 차에 디젤유를 잘못 넣어 서비스센터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다행히 엔진을 가동하지 않아 60만 원으로 끝났는데, 만약 엔진을 가동했다면 3백만 원 정도 나왔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유럽은 자동차 수리비도 비쌀 테니까 300~500만 원 정도가 되지 않을까 예상했다. 나는 이번에 렌터카 회사 보험이 아니라 렌터카 중개회사의 풀커버 보험에 들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휴대폰에 크레디트카드 결제 메시지가 뜬다. 렌터카 회사가 1만 유로 결제신청했다가 한도초과로 캔슬, 다시 6천 유로 신청했다 또 캔슬. 이렇게 금액을 낮춰가며 결제신청을 하다가 결국은 2천 유로가 결제되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실제로 결제된 것이 아니고 디포짓을 한 것 같았다. 아니 무슨 수리비를 1만 유로나 청구하나, 경차인 피아트 500의 신차값이 얼마인데?
그런 후 내가 가입한 보험을 확인해 보니, 이런, 보상한도액이 6천 불이다. 풀커버 보험이란 것만 보고 세부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다. 바로 렌터카 회사에 전화하여 1만 유로 결제 신청에 대해 따지고 싶었지만, 영어도 서툰 상황에서 전화로 해봐야 내 주장을 충분히 펼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전화보다는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어 결제 신청건에 대해 그대로 두었다. 그 대신 더 이상 카드결제를 못하도록 카트의 사용한도를 대폭 낮추었다. 그 때문에 여행 내내 마음이 찜찜하였다.
이런 상황인지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출발하였다. 그러나 카드 문제는 카드 문제이고, 일단 놀 것은 놀아야 한다.
오늘의 첫 행선지는 코블렌츠( Koblenz)이다. 코블렌츠는 라인강과 모젤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 이미 로마시대부터 건설되었다고 한다. 아침부터 흐리더니 비가 세차게 쏟아진다. 요즘은 매일 이렇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관광을 하려고 하면 비가 멈추고 햇빛이 난다. 여행 중에 그렇게 비가 많이 왔지만, 비 때문에 관광을 못한 적은 없었다. 이 도시의 명소를 찾아보니 역시 성당이 많다. 성당은 이미 충분하므로 코블렌츠의 명소 가운데 하나인 스톨젠펠스 요새(Schloss Stolzenfels)로 갔다.
오래된 도시라 시내운전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여기뿐만 아니다. 지금껏 찾았던 대부분의 도시가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였기 때문에 시내 운전에 악전고투를 했다. 버스 전용도로로 잘못 진입한 적은 여러 번이었고, 트램 철로길로 들어선 적도 두 번이나 있었다. 그저 내비가 안내하는 대로만 언덕길을 따라 올라갔다. 어느새 비는 그쳤다.
스톨젠펠스 요새는 높은 산 위에 위치하고 있다. 산 위는 아주 넓은 평지를 이루고 있으며,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가족들과 함께 놀러 온 사람들이 공원 여기저기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깅을 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산책을 즐기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요새는 평지의 가장자리 절벽면에 건설되어 있다. 이 요새는 11세기에 처음 건설되었는데, 이후 파괴와 보수가 거듭되었다고 한다. 1차 대전 때도 이 요새가 실제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보기에도 아주 견고한 요새이다. 현대와 같이 화약 무기가 없던 시대에는 거의 난공불락의 요새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될 정도로 튼튼해 보였다. 요새 옆쪽으로 가면 코블렌츠 시내의 전경과 라인강이 내려다 보인다.
다음은 도이치 엑크(Deutsches Eck), 즉 '독일의 모서리'라는 곳이다. 이곳은 라인강과 모젤강이 만나는 위치인데, 독일통일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서있다. 이곳에 도착하니 저쪽 산 위에 스톨젠펠스 요새가 올려다 보인다. 넓은 평지에는 잔디밭이 잘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시민들이 캠핑을 많이 즐기는 것 같다. 한쪽에는 캠핑카들이 줄지어 았으며, 텐트를 아용하는 사람들도 가끔 보인다.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이 산책과 자전거를 즐기고 있다.
강 건너편은 강 옆에 조성된 광장으로 되어있는데, 말을 탄 장군의 큰 동상이 보인다. 내가 있는 이쪽은 주로 나무와 잔디로 조성된 공원의 분위기가 나는데, 강 저쪽은 역사광장의 느낌을 갖게 한다.
코블렌츠 관광이 끝난 후 다음으로 로렐라이에 들르려고 했는데, 시간이 좀 애매하다. 렌터카는 내일까지 예약되어 있는데, 내일은 토요일이라 직원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시간을 갖고 렌터카 회사 직원과 사고비용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일찍 찾아가는 것이 좋다. 그래서 바로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렌터카 회사로 향해 갔다.
세종시에는 이면도로의 교차로는 상당 부분 회전교차로, 즉 로터리 형식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나는 로터리의 통행방법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해있다.
이번에 유럽 여행을 하니 유럽에서는 로터리가 상당히 일반화된 것 같다. 독일에서는 대부분 하이웨이만을 달려 로터리를 그다지 경험하지 못하였다. 시내 운전에서도 특별히 로터리를 만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와 같이 교차도로에서는 신호에 따라 직진 혹은 좌우회전을 한 것 같았다.
이탈리아에서는 로터리 때문에 엄청 당황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원거리 교통은 거의 고속고로를 이용하였다. 고속도로는 대개 인터체인지 형식으로 되어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시내 도로에서 로터리가 제법 많았다. 그것도 이면도로가 아닌 광폭도로에서. 왕복 8차선, 10차선 등 넓은 도로가 만나는 교차점이 신호등이 없고 로터리로 되어있는 것이었다.
로터리의 빙글빙글 회전하는 차 속에 휩쓸려 들어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고가 날 뻔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이태리에서는 정말 로터리를 만날까 봐 공포에 떨었다. 피렌체에서는 호텔 앞 도로가 왕복 10차선의 넓은 도로였고, 도로 건너편에 슈퍼마켓이 있었다. 차로 그 슈퍼마켓에 가려면 갈 때 한번, 올 때 한번 큰 로터리를 거쳐야 해서, 그것이 싫어 거의 1킬로나 우회해서 걸어서 갔다 오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중반 이후 유료도로를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내 도로뿐만 아니라 일반 시외도로도 많이 경험하였다. 시외도로의 경우 거의 전부라 할 만큼 로터리 방식이 압도적이었다.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는 어쩌다 한번 만날 뿐이었다. 지방 소도시는 시내도로도 거의가 로터리 방식이었다. 달리다 보면 몇백 미터 간격으로 로터리를 연이어 만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처음에는 신호등으로 하지 왜 이렇게 성가시게 로터리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차츰 로터리 통행방식에 익숙해지다 보니 의외로 이것이 상당히 효율적인 방식이라 생각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시외로 나가면 차가 없는데도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로터리에서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흐름에 막힘이 없이 차를 운전할 수 있다.
그런데 로터리체계가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절대적인 조건이 있다. 운전자들이 룰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운전자들이 룰을 잘 지키지 않으면 로터리 방식은 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이태리나 프랑스 사람들은 상당히 난폭운전을 한다. 그런 그들이었지만 로터리에서만은 룰을 철저히 지킨다.
알고 보면 로터리의 운전 룰은 간단하다. 딱 한 가지이다. 그것은 "안쪽에 있는 차가 우선권을 갖는다."란 것이다. 이것만 지키면 사고 날 일도 없고, 교통의 흐름도 아주 원활해진다. 우리나라도 도시의 이면도로와 지방도로에서 로터리의 활용을 적극 검토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문제는 운전자들이 룰을 얼마나 잘 지킬까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