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9 수) 서유럽 렌터카 여행(57)
오늘은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숙박지인 메스(Metz)로 간다. 랭스의 호텔을 나오니 금방 하이웨이로 연결된다. 랭스에서 메스까지는 180킬로 정도 되는데, 오늘도 유료도로를 제외한 경로를 선택하였다. 잔뜩 찌푸린 날씨에 비가 오다 말다 한다.
며칠 동안 이동할 때마다 프랑스 시골 풍경을 보지만, 언제 봐도 좋다. 일부러 그림을 그린다 한들 그렇게 예쁜 모습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는 약간의 굴곡이 있는 벌판이었지만, 메스로 가는 길 양쪽은 끝없이 넓고 평평한 벌판이다. 지평선이 보일 정도다. 마침 틀어둔 음악에서는 이미자의 <지평선은 말이 없다>가 흘러나온다. 아름다운 프랑스 시골길을 달리며 이미자와 심수봉의 노래를 듣는 기분도 괜찮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내비가 좁은 도로로 안내한다. 우리나라의 농로보다 조금 넓은 정도의 도로로서, 승용차 두 대가 비켜가기 힘들 정도의 길이다. 도로 양쪽으로는 누르스름하게 물들어 가는 밀밭이다. 마치 밀밭 속을 헤쳐나가는 느낌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밀밭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도로 옆으로 잡초가 번져 나올만한데, 그런 경우는 한 번도 못 봤다. 알고 보니 도로로 삐져나오는 잡초를 쳐내는 차가 달리면서 잡초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메스가 가까워지니까 산들이 조금씩 나타난다. 산이라기보다는 조금 높은 구릉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지금까지 끝없이 평평했던 벌판과는 달리, 파도가 치는 듯한 지형이 시작된다. 푸른 벌판 위에 농가도 가끔 나타나는데, 어떻게 그렇게 경치와 잘 어울리게 집을 지었는지 감탄할 정도이다. 농가가 있는 곳에는 근처에 반드시 작은 숲이 있다.
거의 4시간 정도를 달려 메스의 숙소에 도착하였다. 숙소에 바로 들어가려다 보니, 숙소 건너편에 대형 슈퍼마켓이 보인다. 먼저 슈퍼마켓으로 갔다. 먹을 것과 물을 사고, 와인도 특별히 20유로짜리로 한 병 샀다. 지금까진 거의 10유로 이하짜리를 마셨다. 프랑스에서 20유로짜리 와인이라면 상당히 고급에 속한다. 계산을 마치고 나와 슈퍼에 딸린 빵 매장에 들어갔다. 슈퍼에서 산 물건을 담은 장바구니는 카트에 실어 빵 매장 입구에 두었다.
빵을 서너 개 사서 나왔는데, 집사람이 비명을 지른다. 카트에 담아 둔 장바구니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빵을 사는데 볼과 3~4분, 매장 입구와 매대 사이 거리가 몇 미터밖에 안되는데, 그 사이에 누가 장바구니를 들고 가버린 것이다. 황당하기 그지없다. 매장 매니저에게 이야기를 하니, CCTV를 확인해 보더니 우리가 빵매장으로 들어가자마자 누군가가 장바구니를 들고 가버렸다는 것이다.
매니저가 웃으며 어떡할 거냐고 묻길래 그만두라고 했다. 여기서 도둑을 잡겠다고 경찰에 신고를 하는 등 법석을 떨 시간도 없다. 그리고 이 정도 일은 흔한 듯 슈퍼마켓 직원들도 이를 조금도 심각하게 여기는 것 같지는 않다. 눈 뜨고 코 베인 느낌이다. 지방 소도시의 슈퍼마켓 손님이라면 평범한 시민일 텐데, 이런 짓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 값 모두 해서 40유로가 채 못 되지만, 무엇보다 와인을 도둑맞은 것이 너무 분하다. 이 정도는 프랑스에서는 범죄 축에도 못 끼는 것 같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장발장에게 그렇게까지 독하게 굴었던 프랑스 공권력인데... 다시 장 볼 기분도 아니어서 그냥 나왔다.
호텔 체크인을 하고 난 뒤 조금 쉬었다가 관광을 하기로 했다. 메스는 인구 약 12만 명의 제법 큰 도시로서 모젤(Moselle) 강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오랜 역사와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이 도시는 고대 로마 시대인 기원전 3세기경 갈리아 부족들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이어서 로마 제국의 지배 하에 메스는 주요 상업 중심지로 발전하였으며, 많은 로마식 건축물과 시설이 세워졌다고 한다. 그리고 중세에 들어서는 신성 로마 제국의 자유 도시로 번영하였다고 한다.
근대에 들어서 메스는 독일에 병합되었다가 프랑스가 되찾는 등 여러 수난을 겪었다. 많은 분들이 프랑스의 작가인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가 쓴 “마지막 수업”이라는 단편소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19세기말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후 승전국인 프로이센은 프랑스의 알자스-로렌 지방을 병합하게 되는데, 이 소설은 프랑스어 수업의 마지막 날을 통해 조국에 대한 사랑과 언어와 문화의 중요성을 감동적으로 그려내었다. 특히 일제 강점기를 경험한 우리는 일제에 의한 우리말 말살 기도를 경험한 바 있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이 소설에서 아멜 선생님은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을 진행하며, 프랑스어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수업이 끝날 무렵 눈물을 지으면서 "Vive la France!"(프랑스 만세)란 말을 칠판에 적는다.
메스는 바로 로렌 지역에 속한 도시로서 그때 프로이센, 즉 독일에 병합되는 수난을 거쳤다. 그 후 제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가 승리하면서 알자스-로렌 지방이 다시 프랑스로 귀속되면서 메스도 프랑스로 반환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다시 독일에게 점령된 후, 독일의 패전 이후 다시 해방되었다. 정말 기구한 운명을 가진 지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메스의 첫 번째 명소도 역시 성당이다. 성 스테판 대성당은 13세기에 건축이 시작되어 무려 300년간 공사가 진행되어 16세기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숙소에서 직선거리는 4킬로 정도이나, 차로는 8킬로나 된다. 운전하기가 쉽지 않은 도시이다. 몇 번을 엉뚱한 데로 간 데다, 잘못하여 버스 전용도로에도 두 번이나 들어갔다. 프랑스는 도시마다 운전환경이 다른 느낌이다.
올드타운으로 들어가 성 스테판 성당 인근에 주차를 하였다. 고딕 양식으로 높이가 엄청나게 높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성당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이 성당 역시 전면에는 정교한 조각이 새겨져 있는 등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물이지만, 이젠 좋다는 성당을 하도 많이 봐와 그냥 덤덤한 느낌이다. 성당 뒤의 올드타운은 잘 보전되어 있다.
다음으로 저먼 게이트(German Gate)로 갔다. 메스는 고대 이후 여러 차례 전란을 겪었기 때문에 요새가 많이 건설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요새의 도시라 불리기도 한다. 저먼 게이트는 메스의 요새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된 중세시대의 성벽과 성문이다. 성문 양쪽에는 두 개의 높은 탑이 서 있다. 성벽은 별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성문만 보더라도 얼마나 견고한 요새였는지 잘 알 수 있다. 이 문으로 독일인들이 많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저먼 게이트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성 뒤로는 깊은 계류가 흐르고 있다. 저먼 게이트란 요새가 이 계류로 인해 더욱 멋진 건조물이 된 것 같다. 만약 이 계류가 없었더라면 저먼 게이트는 그저 살벌한 군사시설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호텔로 돌아왔다. 그동안 빨래가 거의 한계상황에 이를 정도로 밀려 있었는데, 마침 호텔 근처에 코인 빨래방이 있다. 빨래를 가져갔는데 아무리 해도 작동 방법을 잘 모르겠다. 빨래방에는 뚱뚱한 중년의 백인과 키가 껑충하고 새까만 흑인 청년이 있었다. 백인 중년남에게 기계 사용법을 물어보려 하였으나 그는 손부터 내젓는다. 그때 흑인 청년이 친절하게 가르쳐 줘서 무사히 빨래하는 데 성공하였다. 큰 일을 하나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