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 핵잠수함 속에서 핵 공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지휘부의 갈등
“크림슨 타이드”(Crimson Tide)는 잠수함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로서 1995년 미국에서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실제로 발생한 소련 잠수함의 부사령관 바실리 아르디포프의 에피소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잠수함은 아주 밀폐된 좁은 공간이다. 그래서 잠수함 영화는 한편으로는 답답해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좁은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각종 형태의 갈등, 외부세계와 격리된 상황에서 벌어지는 특수한 사건전개 등으로 긴박감을 극대화시키기도 한다. 소련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반란군이 일부 핵미사일 기지를 점령하였다. 그들은 미국을 향해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은 이를 막기 위해 핵잠수함을 출동시킨다. 그런데 러시아 잠수함의 공격을 받은 미국 핵잠수함은 통신 불능 상태에 빠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핵미사일 발사를 주장하는 함장과 발사명령의 확인이 필요하다는 부함장 사이의 대립이 긴박하게 전개된다.
러시아에서 체첸분쟁을 계기로 극렬 국가주의자 블라디미르 라드첸코가 이끄는 반란이 발생하였다. 반군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핵 기지를 포함하여 대규모 병력을 장악하였고,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일본과 미국을 핵무기로 공격하겠다고 위협해 왔다. 이에 미국 정부는 오하이오급 핵잡수함 '앨라배마'를 출격시키기로 결정했다.
앨라바마 호의 함장인 렘지 대령은 실전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지휘관이며, 새로이 부함장으로 부임한 헌터 소령은 흑인이지만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군인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출세의 길을 걸어온 램지 함장은 자신감이 넘치는 인물로서, 규칙을 무시하고 함 내에 자신의 애완견을 데리고 들어와 함 내에서 오줌을 누게 하는 등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 그렇지만 승무원들은 보고도 못 본 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함 내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는 램지와 중단하여야 한다는 헌터 사이에 심한 갈등이 벌어진다. 그리고 화재사고 때 사망한 흑인 병사에 대한 처우를 둘러싼 대립, 계속되는 위기로부터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병사들에 대한 대처 방법의 차이 등으로 램지와 헌터 사이의 갈등과 균열은 점점 커지고 있다.
출항한 지 6일째 되는 날, 북태평양을 초계중이던 앨라바마 호에 명령이 떨어진다. 반란군이 탄도 미사일에 연료주입을 시작하였으니 발사를 저지하기 위해 선제 핵공격을 가하라는 명령이었다. 미사일 발사준비에 바쁜 앨라바마호를 향해 반란군의 공격형 잠수함이 다가와 어뢰공격을 해온다. 앨라바마 호는 미끼 어뢰의 발사로 어뢰공격을 겨우 피했지만, 통신시설을 포함한 선체의 일부가 손상되어 본부로부터 명령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초래된다.
그때까지 도착한 군 지휘부의 명령문의 해석을 둘러싸고 램지는 핵미사일 공격준비를 계속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헌터는 명령을 재확인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의 대립은 결국 극에 달하였다. 램지는 부함장인 헌터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미사일을 발사하려 한다. 그렇지만 SLBM의 발사에는 증인이 되는 장교 앞에서 함장과 부함장 두 사람의 승인에 필요하므로, 램지의 독단적인 발사준비 명령은 군법 위반이 된다.
일이 이렇게 되자 램지는 헌터를 명령불복종을 이유로 해임하려 한다. 그러나 헌터는 거꾸로 함장인 램지가 군법을 위반하였다고 하여 체포하도록 부하들에게 명령한다. 두 사람의 상관으로부터 상반된 명령을 받은 월터스 상병은 결국 헌터의 주장이 법리적으로 적절하다고 판단하여 헌터의 명령에 따른다.
그러나 계속된 반란군 잠수함의 어뢰공격으로 앨라바마 호에서는 사상자가 나오고 선체도 크게 손상되어 침몰 위기에 빠진다.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침몰을 겨우 면했지만, 이러한 사태에 동요한 일부 간부들은 램지의 부추김을 받고 무기고를 개방하여 무장한 후 함장실에 구금되어 있는 램지를 구출한다. 램지는 지휘권을 되찾자 지금까지의 일련의 사태를 반란이라고 단정하고 헌터를 구금한다. 그리고 핵미사일 공격을 감행하려고 한다. 지금까지는 항상 리버럴 한 태도를 지켜왔던 램지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사람이 변해 헌터에 대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내뱉고, 이로 인해 두 사람 간의 관계는 더욱 험악해진다.
지금의 사태에 대한 램지와 헌터의 상반된 대응은 둘 다 해군 규정상 틀린 것이 아니었다. 군 사령부로부터의 SLBM 발사 명령은 적절한 절차를 밟은 것이어서, 이를 중지시키기 위해서는 같은 절차를 거쳐 명령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명령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앞의 명령을 그대로 수행하여야 한다는 램지의 지시는 적법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발사명령 후 어떤 지시를 포함한 암호전보가 도착하고, 이것을 불완전한 상태로 수신한 경우 확인을 위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는 헌터의 지시도 적법하다. 그렇지만 소련 반란군의 어뢰 공격을 받고 있는 앨라바마 호로서는 명령의 확인이 매우 곤란하였다.
만일 미사일 공격이 너무 늦으면, 수많은 미국 시민의 희생이 발생할 수 있다. 반면 공격 명령이 철회된 상태에서 핵미사일 공격을 한다면 이는 러시아의 보복 공격을 불러 핵전쟁을 불러올 수도 있다. 미사일 공격을 감행할 것인가, 공격 명령을 재확인할 것인가는 현 상황에서 판단하기 매우 어려웠다. 이렇게 앨라바마 호는 공격파와 공격명령 재확인파로 나뉘어 서로 대치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때 통신장비가 수리되어 명령을 수신한다. SLBM 발사를 중단하라는 명령이었다. 헌터의 판단이 옳았다.
이 사태와 관련하여 램지와 헌터는 군사령부의 조사를 받게 된다. 군법회의는 램지의 조치는 불법적인 것이었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해군 조사위원회가 군법회의 판사에게 램지에 대한 선처를 요청하였고, 결국 램지의 명예 제대로 사건을 수습하였다. 램지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군을 떠나면서 앨라바마 호의 선장으로서 헌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