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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메콩강에 떠있는 4,000개의 섬, 시판돈으로

(2024-11-30) 배낭 하나 메고 또다시 동남아로

by 이재형


씨엠립에서 만 5일간을 보내고 오늘 시판돈으로 이동한다. 2년 전 이맘 때도 이곳 씨엠립에서 시판돈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3일을 보냈다. 하지만 그때는 집사람이 아파서 편하게 지내지 못하고, 병원에 가기 위하여 팍세로 급히 이동하였다. 이번에는 혼자라 느긋이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시판돈은 라오스의 최남단 지역으로 캄보디아와의 국경에 인접해 있다. 북쪽에서 조용히 남으로 흘러 내려오던 메콩강은 이곳에서 급격히 넖어지면서 수많은 섬과 모래톱을 만들어 내었다. 시판돈이란 "4,000개의 섬"이라는 뜻이라 한다. 이곳은 수많은 섬과 폭포로 절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나라 TV에서 소개되는 메콩강의 풍경은 대개 시판돈 지역을 보여준다.


이번 여행에서는 비단 씨엠립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도 밤문화를 거의 즐기지 못했다. 어두워지면 바로 숙소로 들어가 글을 쓴다든지 동영상을 보던지 하였다. 씨엠립의 밤에는 다양한 축제가 열리는데 경험하지 못해 한편으론 아쉬운 생각도 든다.

시판돈가는 국제버스와 휴게소

오전 8시가 조금 못돼 픽업 차량이 왔다. 곧 작은 버스 터미널로 데려다주는데, 이곳은 국제버스 전용 터미널인 것 같다. 라오스 팍세행 버스와 태국 방콕행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팍세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현대자동차에서 생산한 버스이다. 동남아의 버스들은 대개 우리나라에서 수입한 중고 버스들이다. 아시아에서 중고 버스를 수출할 만한 나라는 우리와 일본밖에 없는데, 일본은 운전대가 오른쪽이라 우리나라 버스에 대한 수요가 높다고 한다. 버스는 추울 정도로 냉방이 잘 된다.


승객은 나를 제외하고 7명, 서양 청년 셋과 젊은 서양여자 넷이다. 버스가 출발하자 곧 물과 물티슈를 나누어준다. 조금 있다가는 빵을 하나씩 나누어준다, 그리고는 승무원이 뭔가 주문을 받으며 돌아다닌다. 점심 메뉴이다. 쇠고기 볶은밥을 주문해 두었다. 승무원이 또 승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와 뭔가 알려준다. 이번엔 버스에 장착되어 있는 와이파이의 패스워드이다. 아주 서비스 만점이다.


12시가 되자 승무원이 점심 도시락을 나누어준다. 소스를 첨가한 비빔국수인데 맛이 괜찮다. 오후 2시 정도가 되어 국경에 도착했다. 2년 전에도 통과한 적이 있는 국경이다. 이전에는 국경통과를 하는 사람이 많아 많이 복잡했는데, 이번엔 사람이 거의 없다. 캄보디아 입국수속을 간단히 마쳤다.

다음은 라오스 입국수속이다. 한국여권은 라오스 비자면제이므로 너무나 간단히 입국절차를 마쳤다. 함께 버스로 온 서양 젊은이들은 비자를 받아야 하는지 버스 안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이럴 땐 좀 우쭐하는 마음도 생긴다. 그런데 라오스에 입국할 때 관리들이 보통 5불씩 삥 뜯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부패를 추방한 건지, 아니면 여기만 이런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여기도 2년 전엔 1인담 5불씩 삥 뜯었다.


국경을 통과해 30분 정도 달려 나까상 터미널에 도착했다. 나를 비롯해 시판돈에 가는 사람은 여기서 내린다. 시판돈은 4.000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주민이 제일 많은 섬이 돈뎃이고, 이어 돈콩, 돈콘, 돈솜 등에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숙소가 제일 많은 곳이 돈뎃이므로, 나도 돈뎃으로 방향을 정했다.


버스 터미널에서 조금 걸어 들어가면 선착장이 나온다. 몇백 미터도 안 되는 거리이치만 햇빛이 무서울 정도로 내리쬔다. 선착장이라 해봤자 조그만 배가 몇 척 떠있을 뿐이다. 여긴 섬이 많으니까 배가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조그만 배를 타고 20분 정도 달리니 돈뎃에 도착한다.

숙소를 따로 예약하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라오스 돈도 우리 돈 환산 만원 미만이다. 집에서 굴러다니는 라오스 돈을 들고 온 것뿐이다. 재작년에 왔을 땐 마을 도로가 많이 파손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깨끗이 정비되어 있다. 길가의 가게에 들어가 과일 주스를 마시며 어떤 숙소를 구할지 생각했다.


우선 위치 상으로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바로 메콩강을 접한 숙소를 택할지 아니면 강에서 조금 떨어진 곳을 택할지이다. 강 옆에 있으면 경치는 좋지만 습기가 많다. 또 어떤 건물을 택할지도 문제다. 판자로 만든 방갈로는 시원해 보이기는 하지만 너무 엉성하고, 에어컨도 없다. 시멘트 건물은 습기를 흡수하지 못해 방에 습기가 엄청 찬다.


짐을 식당에 맡겨놓고 숙소를 찾았다. 메콩강 위로 방갈로 4개가 나란히 붙은 집이 보인다. 방 한 칸이 비어있고, 나머지 방 세 개는 서양 할배들이 하나씩 차지하고 있다. 하루만 있어보자. 일단 이곳으로 정했다. 강 바로 옆이며, 방 앞에 있는 넓은 데크에는 해먹이 두 개 걸려있다. 하루 6천 원짜리 방이다.


돈을 찾아야겠는데 ATM 기계가 안 보인다. 일단 트래블 월랫에 라오스 돈을 충전해야겠는데, 인터넷이 제대로 안된다. 일단 라오스에 들어왔으니 핸드폰을 한번 껐다 켜야 통신이 제대로 되는데, 도저히 끌 수가 없다. 갤럭시 핸드폰은 전원 끄기를 왜 이렇게 어렵게 해 두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메인 보튼을 오래 누르면 빅스비인가 나발인가가 나와 명령을 내리라 하는데, 통신이 안되니 명령을 내릴 수가 없다. 작년 이맘때에도 일본어 능력시험 시험장에서 전원을 못 꺼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ATM이라고 써 붙여진 곳을 찾아 들어가니, 카드 단말기로 달러를 인출하여 환전해 주는 것 같다. 게다가 수수료도 6%라 한다. 그냥 가지고 있는 100달러짜리 지폐 한 장 환전하여 2백만 낍을 받았다. 보통 100달러 210만 낍인데, 여긴 섬지역이라 환율이 나쁜 것 같다. 트레블 월렛에 2백만낍 충전해 두었으니 합계 4백만 낍이다. 이 정도면 돈은 충분할 것 같다.


판자로 된 방갈로가 너무 엉성하여 서글픈 느낌도 든다. 일단 하룻밤만 지내보자. 에어컨 없이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샤워를 하고 나니 시원해진다. 방앞 데크에 있는 해먹에 누웠다. 선선한 강바람이 불어온다. 편하기 그지없다. 아주 행복한 시간이다. 해가 지니 덥진 않다. 그런데 어둠이 지니 벌레가 물기 시작한다. 도저히 견딜 수 없다.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올라 모기장을 펼쳤다. 벌레가 완전 차단된다. 선풍기를 켜니 조금 추운 정도이다. 에어컨이 없어도 충분하다. 수십 년 만에 모기장 속에서 잠을 자는 것 같다.


이곳 시판돈을 찾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메콩강 한가운데 문명세상과 떨어진 세상에서 아무 생각 없이 푹 쉬며 시간을 보내겠다는 사람, 그리고 메콩강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기려는 사람이 그들이다. 나는 쉬는 쪽을 택했다. 내일 낮 해먹에서 빈둥거려 보고 덥지만 않다면 그냥 이곳 방갈로에서 보내야겠다. 옆방의 서양 할배들은 아예 팬티만 걸치고 해먹에 누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석양에 물드는 메콩강은 절경이다. 지금 계획으로는 한 닷새 정도 아무 생각없이 이곳에서 빈둥거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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