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를 대표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반드시 그 나라의 국민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한민국 국민이어야 하고, 미국 대통령은 당연히 미국인만이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다. 이것은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예외인 나라가 있으니, 바로 이웃 일본이다. 일본에는 일본에 거주하면서도 일본국민도 아니고, 그렇다고 외국인도 아닌 묘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천황을 비롯한 천황가에 속한 사람들이다. 천황은 법적으로 일본 국민이 아니다. 일본 헌법에는 천황을 "일본국과 일본 국민을 통합하는 상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일본 국민에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호적제도가 있다. 호적은 개인의 출생, 결혼, 사망, 친족관계 등을 기록하는 행정제도인데, 이는 일본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이다. 천황은 일본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호적도 없고, 성도 없으며, 신분을 증명하는 주민증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가지고 있는 납세의 의무도 없으며, 투표권과 피선거권이라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갖는 기본 권리도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천황은 대외관계에서 의전 상 일본을 대표하는 경우가 많다. 또 외교 상대방 측에서도 국가수반인 수상의 말 천 마디보다 천황의 말 한마디를 더 무겁게 받아들인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제국헌법”을 제정하여 사실상 입헌군주제로 전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황의 지위는 여전히 신격(神格)이었다. 2차 대전 패전 이후 민주헌법이 제정되면서 천황의 지위는 인간인 "상징천황"으로 강등하였으나, 여전히 그 권위는 굉장하다.
매스컴을 포함한 일본의 공식문서에서 사람들에게 붙이는 존칭은 4가지이다. 바로 "씨“(氏), ”상 “, ”군“(君), 짱"이 그것이다. 씨와 상은 성인에 대한 일반적 존칭으로서 크게 구별되지는 않으며, 어느 것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야마모토 상이라 할 수도 있고 다나카 씨라 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군”은 아랫사람 혹은 고등학생 정도 이하의 청소년에 사용하는 호칭이다. 정치 원로가 후배뻘인 수상에게 ”아베 군“, ”이시바 군“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청소년에 대한 호칭으로서 이름에 ”군“의 호칭을 붙이는 것이 보통이다. ”짱“은 어린이에게 사용하는 호칭이지만 친근감을 표시하는 경우에는 폭넓게 사용된다. 어린아이가 아버지나 할아버지에게 ”오토 짱“, ”오지 짱“ 등으로 부르는 것은 일반적이며, 연예인이나 심지어는 정치인에게까지 친근함을 표시하는 존칭으로 ”짱“을 폭넓게 사용한다.
이렇게 일본에서는 공식적으로 호칭을 “씨, 상, 군, 짱”의 4가지로 한정하고 있으나, 여기에 하나의 예외가 있느니 바로 “사마”(樣)이다. 사마란 말은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극존칭으로 사용하지만 매스컴이나 공식 문서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예외가 있으니 바로 “천황가”(天皇家)의 사람이다. 매스컴에서도 천황이나 왕비, 왕자나 공주를 언급할 때는 이름 뒤에 “사마”란 존칭을 붙인다.
그러면 한 가지 의문이 문득 떠오른다. 우리나라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대히트를 쳤을 때 주인공 배용준에 열광한 일본 아줌마들이 그를 “욘 사마”라 불렀다. 그러면 배용준을 천황가와 동등한 서열로 존경하였는가? 그건 아니다. 그냥 애칭으로 그렇게 부른 거다. 우리나라 드라마를 보면 가끔 아들이 장난스럽게 어머니에게 “우리 박 여사”. “김 여사”하는 식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다. 그 정도로 생각하면 충분하다.
현대에 와서 사라진 존칭으로는 “도노”(殿)란 말이 있다. 주로 귀족이나 사무라이 계급에서 상대를 높이는 의미로 사용되는 존칭이었다. 이들 계급에서는 상대방의 지위가 높고 낮고에 구분 없이 이름 뒤에 도노라는 존칭을 붙였다. 우리나라 사극에서 양반사회에서 대화를 할 때 “신숙주 공”, “성삼문 공” 등으로 부르는 경우를 보는데 그 정도의 존칭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그런데 주종관계에서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부를 때는 이름 없이 그냥 “도노”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