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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기차를 타야 하나?

(2025-10-02a) 칭다오에서 둔황까지- 중국 횡단여행 (20)

by 이재형

(어느 역에서 기차를 타야 하나?)

내일은 4박 5일의 란저우 여행을 끝내고 둔황으로 이동한다. 장장 1,100킬로, 고속철로 9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장거리 여행이다. 정차역이 많고 지리적 특성도 있어 고속철도 그렇게 빠르게 달리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내일 일정을 생각하면서 큰 고민이 생겼다. 어느 역에서 기차를 탈까 하는 문제이다. 예매한 열차의 출발역은 진왕천(秦王川)이다. 란저우에는 역이 세 곳 있는데, 바로 란저우역, 란저우서역, 진왕천역이다. 이 가운데 고속철은 주로 란저우서역과 진왕천역에 정차한다. 며칠 전에 란저우에서 둔황 가는 열차를 예약하려고 보니 우리가 타야 할 기차가 진왕천역에서 출발하여 란저우서역을 거쳐 둔황으로 간다. 그럼 진왕천역과 란저우서역 둘 중 어느 역에서 승차하는 것이 좋을까?


(예약한 진왕천역은 너무 멀고, 란저우 서역은 가깝다)

나는 란저우의 사정을 알 길이 없으므로 딥시크에게 진왕천의 위치가 란저우 시내에서 가깝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딥시크는 진왕천역은 시내 중심가에 있어 시내에서 접근성이 아주 좋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진왕천역이 시내 중심에 있고 란저우서역은 서쪽으로 훨씬 치우쳐 있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을 뒷받침해 주듯이 진왕천역 출발이 요금도 더 비쌌다. 이런 이유로 나는 진왕천 출발 표를 예약하였다.


그런데 어제저녁 진왕천역까지의 거리를 검색해 보니 호텔에서 70킬로 정도 떨어져 있으며, 택시 요금도 200위안 정도라 한다. 란저우 서역은 불과 10킬로 정도의 거리이다. 택시요금보다 더 큰 문제는 진왕천역과 란저우서역은 기차 출발시간이 정확히 1시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동 거리 등을 생각한다면 두 시간 이상 일찍, 그야말로 새벽같이 호텔을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장 큰 부담이다.


(중국에서 중간정차역 기차 탑승은 가능한가?)

그럼 그 표를 가지고 란저우서역에서 타면 될 것 아닌가? 그런데 그것이 중국에서 허용되는지 알 수가 없다.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다. 부산에 가기 위해 서울역 출발 부산행 기차표를 예매하였다. 그런데 나는 지금 수원에 있는데, 이 열차가 수원역에도 정차한다고 한다. 서울~부산 예약표로 수원에서 승차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물론 기차는 같은 차이다.


우리나라라면 당연히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러나 여긴 중국, 아주 타이트한 사회다. 우리 상식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괜찮을 것 같았지만 혹시 모른다. 만약 안된다면 그야말로 낭패다. 지금은 연휴기간이기 때문에 얼마를 더 기다려야 둔황행 기차표를 구할 수 있을지 예측할 수도 없다. 확인을 위해 호텔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의사소통이 힘들다. 괜찮다고 한다. 그런데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모르겠다.


(딥시크는 반드시 예약한 기차역에서만 타야 한다는데...)

다시 방으로 돌아와 이번엔 딥시크에게 물어보았다. 절대 안 된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반드시 정해진 기차역에서만 승차해야 한다고 한다. 그 이유로 역별로 승차권 판매수량이 미리 정해지기 때문이란다. 혼란스럽다. 딥시크의 대답을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역별로 승차권 판매수량이 할당된다면, 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다른 역 탑승표를 구입하는 승객이 생길 수 있다. 그러면 승차권 할당제도는 무의미해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중간역 승차를 금지할 수 있다.


결국 예약한 역에서 승차하는 것이 안전하다 생각되어 집사람과 협의하여 진왕천역으로 가기로 했다. 그러려면 내일 아침 새벽같이 출발해야 한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이번에는 제미나이(Gemini)에게 물어보았다. 어라? 제미나이는 중간역에서 타도 무방하다고 한다. 갑자기 또 혼란스러워진다.


딥시크뿐만 아니라 쳇 GPT나 제미나이도 모두 거짓말을 잘한다.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 제미나이에게 그렇게 대답하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중국열차승객서비스규정에 그렇게 명시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규정의 근거가 되는 조항을 명확히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제미나이는 관련조항의 원문과 번역문을 보여준다.

란저우 서역 대기실


(딥시크 이놈! 또 거짓말했어!)

이번엔 다시 딥시크에게 질책하듯 물었다. “제미나이에게 물었더니 중간 승차가 가능하고, 그 근거가 중국열차승객서비스 규정에 명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거냐?” 이번에도 딥시크는 금방 꼬리를 내려버린다. 확인해 보니 그 대답이 맞다고 하면서 또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다시 딥시크에게 근거 규정을 대라고 요구하니, 제미나이가 보여준 것과 같은 관련 규정의 조항을 찾아 보여준다. 정말 이놈은 한심한 놈이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으니까 옆에 두고 다닌다.


이로서 문제가 대충 해결된 것 같다. 내일 아침 란저우서역으로 가기로 했다. 만약 그때 승차가 안된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면 란저우에서 며칠이라도 눌러앉아 있으면 된다.


(내 글이 <월간 바둑>지에 실린다고?)

문제를 해결한 후 늘 하듯이 이메일을 체크했다. 바둑잡지인 “월간바둑”의 편집자로부터 온 메일이 있었다. 두어 달 전에 투고한 원고가 10월호에 실린다는 내용이었다. 평생 연구자로서 살아왔기에 내 글이 활자화되는 데는 익숙하다. 내 글이 출판되는 것은 일상화된 일이었기에 특별한 감정도 없다. 그저 그러려니 한 느낌뿐이었다. 그런데 이번만은 다르다. 글이 곧 출판된다는 통지를 받고 정말 기뻤다.


지난 8월 심심풀이로 페이스북에 인공지능과 바둑에 관한 글을 쓰려다가, 재미있는 글이 되겠다 싶어 바둑잡지인 <월간 바둑>지에 투고를 했고, 그것이 이번에 실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200자 원고지 기준 70매 정도의 꽤 긴 글이다.


중국 여행 중이라 직접 잡지를 확인하진 못했지만, 연구보고서나 논문 몇 편 출판한 것보다 훨씬 더 기쁘다.


▪ 중국단상(13): 수양버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나무가 버드나무와 포플러이다. 그 당시에는 강이나 못 등 물가에는 어김없이 버드나무와 포플러가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두 나무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포플러야 위로만 자라 아무 쓸모도 없는 나무이지만 버드나무는 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버드나무는 보기도 좋고 운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시원한 그늘도 제공해 준다. 심심할 때는 버들피리도 만들고 버들잎 배도 만들어본다. 요즘도 물가에 가면 버드나무가 그리워진다.


중국에 오니 버드나무가 많이 보인다. 강가나 호수가 등에 가면 어김없이 버드나무가 보인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더욱 운치 있게 느껴진다. 축축 늘어진 능수버들은 마음을 푸근하게 해 준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시 버드나무를 쉽게 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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