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3) 칭다오에서 둔황까지- 중국 횡단여행 (21)
어제저녁 어느 역에서 기차를 탈지를 두고 한참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란저우 서역에서 타기로 하였다. 란저우 서역은 가깝기 때문에 아침에 비교적 여유 있게 호텔을 나와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본 건물 중 단일 건물로서 가장 컸던 것은 항저우 고속철 역사였다.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이 글을 쓰면서 확인해 보니 대합실 크기만 축구장 15개의 면적이라고 한다. 그런 큰 건물이 하나의 거대한 공간을 이루고 있었다. 중국에 와서 지금까지 거쳐온 몇 개의 고속철 역사도 항저우 역사만큼은 아니지만 무지무지하게 크다. 란저우 서역 역시 아주 넓다. 서울역은 아예 비교도 안된다.
대합실에는 많은 수의 안마의자가 놓여있었다. 안마의자에 편하게 앉아 개찰시간을 기다렸다. 개찰시간을 기다릴 때는 항상 여유 있지만, 막상 개찰이 시작되면 바쁘게 서둘러야 한다. 이번에도 역시 촉박한 개찰시간으로 인해 허겁지겁 열차에 올라타야 했다.
란저우는 해발 1500미터가 넘는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둔황으로 가는 길도 거의가 해발 1600 미터가 넘는 고원지대 평원이다. 기차가 달릴수록 점점 더 사막화된 풍경이 나타난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누런 황토색의 산이 계속된다. 평원은 초원이지만 황무지에 가까워 풀은 듬성듬성 나있는 편이다. 초원에는 검은 야크 떼가 풀을 뜯고 있다. 나로서는 모두 처음 보는 풍경들이다. 기차는 시속 200 킬로미터 이하의 느린 속도로 달린다. 들판은 푸른색을 유지하고 있다. 아마 관개시설이 잘 되어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넓은 평원에 관개시설을 정비하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란저우와 둔황의 중간 지점에 있는 도시 장예를 통과한다. 장예를 지나고도 산은 보이지 않는다. 끝없는 평지다. 땅은 점점 모래가 많아지며, 녹색은 차츰 자취를 감춘다. 본격적인 사막의 시작이다. 드문드문 잿빛 흙땅의 황무지가 나타난다. 고속철이 두 시간을 달렸지만 산 하나 보이지 않는다. 끝없는 건조한 평원의 연속이다.
가끔 작은 도시들이 지나간다. 도시가 크고 작건 간에 모두 고층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섰다는 점은 같다. 일반 주택은 거의 보이지 않고 고층아파트만 들어서있다. 우리나라에서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지방도시 외곽에 아무것도 없이 고층아파트만 들어서 있는 지역을 본다. 여긴 그런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근처 몇 킬로 내에는 주택은 물론 아무런 건축물도 없는 곳에 수십 동의 고층아파트만 늘어서 있는 곳도 있다. 아파트의 외벽은 거의가 황토색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사막의 황토바람 때문에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나라도 황사현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채로운 색을 한 아파트들이 많다.
지평선이 보이는 끝없는 평야가 펼쳐진다. 철로 근처에는 관개시설이 되어 있는 듯 경작을 하여 푸른색을 보이지만, 저 멀리는 그냥 황토색의 황무지이다. 드문드문 풀이 보일 뿐이다. 가도 가도 작은 산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태양열 발전소가 나타난다. 무지무지하게 큰 발전소다. 집열판이 수십만 개는 될 것 같다. 기차가 한참을 달리는데도 집열판의 밭은 끝나지 않는다.
한참을 더 달리니 풍력발전소가 나타난다. 이 역시 무지무지하게 넓다. 풍력탑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폭은 평원 저 끝까지 계속되고 있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거의 지평선까지 뻗어있고, 길이는 족히 수십 킬로미터는 되는 것 같다. 기차가 근 30분을 달릴 때까지 계속된다. 정말 어마어마한 넓이의 풍력발전소이다. 사막화된 황무지는 또 이렇게 재생에너지 자원으로 활용되는 것 같다. 땅은 사막과 황무지가 반복된다. 처음 경험하는 웅장한 자연 풍경이다.
둔황이 가까워지자 창밖은 완전히 사막으로 변한다.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한다. 기차 안에서 보는 사막의 일몰 풍경은 장관이다. 해가 지평선에서 지는 모습을 처음 본다. 해는 땅끝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평선 조금 위에서 사라진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당연하다. 지평선 가까이 옅은 구름이 중첩되어 그런 것 같다.
요즘은 국제교류가 활발하다 보니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해외관광객을 만나는 일이 어렵지 않다. 라오스나 캄보디아의 시골 마을에 가도 배낭을 둘러맨 서양 관광객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외국인을 보기가 정말 어렵다.
북경이나 상해에서는 외국인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지난 10일간 제남, 낙양, 란저우를 거치면서 외국인이라고는 서양인 2팀, 한국인 1팀을 만난 것이 전부다. 식당에라도 가면 우리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현지인의 눈길을 느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즉,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외국인과 거의 접촉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개방된 사회에서 왜 이럴까? 내가 지난 며칠간 여행을 해보니 외국인들이 중국사회에 진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단체여행을 하거나 단일 도시를 방문하는 경우가 아니리면 중국 자유여행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국제화된 도시나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면 외국인이 방문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지불수단인 알리페이에 가입하는 절차는 매우 까다롭다. 위챗은 외국에서는 가입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국 철도예약앱인 12306은 가입 시 본인 인증에만 2일 이상이 걸린다. 이래서야 외국인들이 개별적으로 중국여행을 한다는 것은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그뿐만 아니다. 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해도 여행 중 의사소통이 어렵다. 영어를 통한 소통은 거의 불가능하다. 버스, 택시, 아이스크림 등과 같은 단어조차 알아듣는 사람이 극소수이다. 영어 안내판도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린 그래도 한자를 알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되지만, 서양인들은 정말 황당할 것이다. 통역기를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통역기도 사용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중국은 어떤 부분에서는 시대를 너무 앞서가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시대에 너무 뒤처져있다. 결국 시대에 비슷하게 따라가는 사랑들은 중국사회로의 진입이 그만큼 어려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