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편백자연휴양림 여행(7)

(2021-06-25) 하동 화개장터와 쌍계사

by 이재형

오늘은 집에 돌아간다. 이곳 남해 휴양림으로 내려올 때는 거창, 산청, 삼천포를 거쳐 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하동, 구례, 지리산, 남원을 거쳐 갈 예정이다. 하트 모양으로 생긴 남해도를 올 때는 오른쪽에 있는 다리를 건너왔지만 갈 때는 왼쪽에 있는 다리를 건너간다.


하동으로 가기 위해서는 남해대교를 건너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도로안내판에는 노량대교 가는 길이라고 나온다. 남해대교의 이름을 노량대교라 변경했나? 한참을 달리니 노량대교가 나온다. 아주 크고 웅장한 모습의 다리이다. 바다 저쪽 1킬로가량 떨어진 곳에 붉은색의 작은 다리가 보이는데 바로 남해대교이다. 알고 보니 남해대교를 대신하여 더 크고 넓은 노량대교를 새로 건설한 것이다. 옛날 그렇게 크게 보였던 남해대교가 노량대교와 비교하니 아주 조그맣고 초라하게 보인다. “남해소교”로 이름을 바꾸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곳은 노량해협으로서 임진왜란 최후의 전투인 노량해전(露粱海戰)이 벌어진 장소이다. 이것을 기념하여 다리 이름을 <노량대교>라 지은 것 같다.


(18) 화개장터


노량대교를 건너면 바로 하동이다. 화개장터를 가려면 노량대교를 건너 왼쪽, 그러니까 구례 족으로 가야 한다. 차는 섬진강을 끼고 계속 달린다. 섬진강을 내려다보면서 굽이굽이 달리는 이 도로는 우리나라에서 아름답기로 이름난 도로이다. 가로수는 온통 벚나무인데, 이른 봄이 되면 이곳은 벚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도로 군데군데 보수공사와 도로개선 공사가 이루어져 내비가 길을 잘 찾지 못한다. 한참을 달리니 산에서 내려오는 작은 지천 옆에 화개장터가 있다.


화개장터에는 조용남의 <화개장터> 노래비가 서 있다. 사실 이런 시골에 있는 화개장이 전국적인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조영남이 부른 <화개장터> 노래가 제일 큰 몫을 차지했다고 생각한다. 조영남 씨는 내가 좋아했던 가수이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어 “그림 사기” 사건으로 곤욕을 치루었으니 안타깝다. 아무튼 형사적으로는 무죄를 받았으나, 그동안 마음고생은 꽤 심했을 것이다. 그 사건에 대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조영남 씨가 비록 자신의 아이디어가 바탕이 되었다고는 하나 다른 사람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형사법정까지 가야 하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화개장터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햇볕이 따갑다. 시장이 모두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어 햇볕이 바닥에 반사되어 더위가 더해진다. 전국의 명물이 되어 버린 이 시장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탓인지 좌판과 보따리장수로 곳곳에 흥청이던 옛날의 그런 낭만적인 장터와는 달라졌다. 몇 개의 시장 건물이 지어져 있고, 거기에 다수의 가게들이 입점해있다. 오늘이 만약 장날이었다면 좀 더 시끌벅적한 옛날의 장터 맛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조금 아쉽다.

전통시장이라 갖가지 물건을 팔고 있지만 이 화개장의 특징은 지리산이 가까우니만큼 산에서 채취한 것들이 많다. 한약재, 각종 산나물 말린 것, 버섯류 등과 이것들을 가공한 먹을 것들이 주를 이룬다. 시장 중간중간에는 먹을 것을 파는 곳도 많은데, 모두 깨끗하게 현대식으로 차려져 있다. 단정한 옷을 입은 주인이 위생복과 입 가리개, 모자 등 위생적인 옷을 입고, 깨끗한 설비를 이용해 먹을 것과 음료를 만들고 있다. 깨끗하고 위생적인 면에서는 좋으나, 옛날 장터의 정취가 사라졌다는 점에서는 좀 아쉽다.


산나물, 약재 등 산물들도 옛날과 같이 쌓아놓고 무게들 달거나 묶음으로 가 아니라 모두 비닐봉지에 깨끗이 포장하여 판매한다. 위생적이고 거래가 투명해진 점에서는 좋지만 이 역시 옛정취가 사라져 가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젊은 사람들은 점점 더 이러한 스타일의 시장을 선호할지도 모른다.


(19) 쌍계사


화개장터에서 곧장 산 위쪽으로 올라가는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쌍계사가 나온다. 쌍계사는 벚꽃으로 유명한 곳이다. 몇 년 전 벚꽃 구경을 위해 쌍계사를 찾았다가 차가 몇 킬로나 밀려있는 바람에 중간에 돌아간 적이 있다. 그리고 작년 가을에도 낙안읍성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들리려 하였다가 그냥 지나쳤다.


쌍계사는 화엄사와 함께 지리산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쌍계사는 통일신라 시대인 9세기 중반에 창건되었으며, 절 앞에서 두 계곡물이 만난다고 하여 쌍계사(雙磎寺)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동안 두 차례 불탔으나, 지금의 절은 조선 인조 때 복구, 중수되었다고 한다. 절 안에는 국보 제47호인 진감선사 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를 비롯하여 몇 점의 보물이 있다. 일주문 앞에 이르니 일주문에는 <삼신산 쌍계사>(三神山 雙磎寺)라 쓰여있다. 이곳은 지리산일 텐데, 지리산을 삼신산으로 부르기도 하는지, 아니면 지리산 구역에 있는 삼신산이란 봉우리를 말하는지, 아니면 중국에 있는 삼신산과 같은 신령한 산이라 하여 그런지 하여튼 그 이유는 모르겠다.


지난번 화엄사에 갔을 때는 첫 느낌이 웅장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쌍계사는 큰 절이긴 하지만 웅장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고 아주 섬세하고 짜임새 있는 아름다운 절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굳이 표현하라면 화엄사가 석가탑의 느낌이 드는 절이라면 쌍계사는 다보탑의 느낌이 든다. 일주문을 지나니 왼쪽으로 울창한 대나무 숲이 있다. 대나무는 비교적 더운 지방에서 잘 자라서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찾아보기 어려운데, 여기는 일주문에서 절 안으로 들어가는 길 왼쪽으로 온통 대나무 숲이다.

금강문과 천왕문을 지나니 대웅전이 나온다. 대웅전 앞에는 10층 석탑이 서있다. 우리나라에서 석탑은 보통 홀수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석탑은 아무리 봐도 10층이다. 위의 작은 돌까지 합해서 11층 석탑이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쌍계사는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많은 절집들은 숲과 조화를 이루면서 아주 짜임새 있게 세워져 있다. 가파른 산에 터를 닦아세운 절이기 때문에 절 안에도 건물에 따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가파른 언덕에 세워진 절집에 가기 위해서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작은 돌다리와 석재나 나무로 만든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주위의 울창한 숲과 좋은 조화를 이룬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국보 47호인 진감선사탑비(眞鑑禪師塔碑)가 있다. 이 비는 9세기 말 통일신라 진성여왕 때 건립된 것으로서 최치원의 글씨라 한다. 그 옛날 대학자가 쓴 글을 1,200년이라는 긴 시공을 넘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글의 내용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쌍계사는 구석구석 어디를 가나 아름다운 절이다. 이 쌍계사의 아름다움은 절 집이라는 인공의 구조물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리산이라는 이 대자연이 주는 아름답고 울창한 숲이 있기 때문에 더욱 더할 것이다. 쌍계사는 이전에도 몇 번 찾았던 것 같은데,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곳을 다 둘러보고도 여전히 처음 찾은 것 같은 느낌이다. 기억력이 점점 줄어들어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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