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5) 문수사와 지리산 성삼재
쌍계사는 몇 번이고도 찾고 싶은 아름다운 절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쌍계사를 출발하였다. 쌍계사를 출발한 후 산 길을 내려가면서 길을 잘못들었다. 차를 돌리려고 넓은 공간을 찾았는데 바로 <하동 야생 차(茶) 박물관>의 주차장이다. 큰 박물관 건물이 있고 넓은 주차장이 있는데, 주차된 차는 한 대도 없다.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야생차 박물관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도대체 차(茶)에 관해 뭐 그리 전시할 것이 있을까 생각하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전시관은 몇 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자연과 차>, <차의 종류와 제조>, <다도>(茶道), <다기>(茶器) 등을 전시하고, 하동 지역의 차 명인들도 소개하고 있다. 차나 다기는 모두 크기가 작은 것들이다. 그래서 그것이 아무리 의미가 있고 가치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 박물관에는 영상자료를 많이 마련해두고 있다. 큰 스크린을 통해 차와 관련한 다양한 영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괜찮았다.
나는 우리나라에서는 옛날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차를 그다지 많이 마시지 않는 걸로 알았는데, 여기와서 보니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높은 벼슬아치나 부자들이 차를 꽤 즐겼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차 재배라면 대개의 사람들은 보성을 떠올린다.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옛날 우리나라의 차의 주산지는 이곳 지리산 남쪽의 하동 일대이며, 그래서 이 지방에서도 차 명인들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자연환경이 차 재배의 최적지였기 때문에 질좋은 차들이 많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나는 차를 그다지 즐기지도 않아 별로 관심이 없었으나, 우리나라에서도 예부터 다도(茶道)가 있었다고 한다.
다도(茶道)라면 일본을 떠올린다. 에도(江戸) 시대 이후 다도가 성행하여 여러 집안이 이에모토(家元) 제를 기반으로 다도에 전념하여 다도를 발전시켜 왔다. 이에모토 제란 무술, 예술 등 여러 분야에서 한 집안이 오직 하나의 기예를 닦으며 그것을 집안의 직업으로서 대를 이어 물려오는 제도를 말한다. 검도, 창술, 궁술, 유술 등 여러 무술, 무용, 음악, 꽃꽂이(華道), 다도, 바둑, 장기 등 다양한 기예들이 평생을 이것을 직업으로 하는 집안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 일본의 다도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다도 스승이기도 한 승려 센노 리큐(千利休)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다도는 와비(侘)라 하여 소박하고 고요하며 정신적인 사유를 음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차를 마시는 다옥(茶屋)도 반 평 남짓한 소박한 초가였다. 그런데 그를 다도 스승으로 모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황금으로 만든 다옥을 짓고 값비싼 다기로 차를 마셨다.
일본의 차 이야기가 나온 김에 곁가지 이야기. 일본에는 과거 도자기가 없었다. 그래서 음식이나 물을 마실 때는 대부분 나무로 만든 그릇을 사용하였다. 그러다보니 도자기로 만든 그릇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비쌌고, 특히 고급 취미로 인식되던 다도에 사용되는 다기(茶器)는 더더욱 비쌌다. 전국시대(戰國時代, 16세기) 말기 차를 즐기는 유행이 영주인 무장들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졌는데, 도자기로 된 다기는 대체로 남만(南蠻) 제품, 즉 유럽에서 흘러들어온 것과 중국에서 수입된 것, 그리고 조선에서 수입된 것 등이 있었다. 그런데 이 당시 다기의 값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좋은 다기로는 일국일성(一國一城)을 살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정말 좋은 다기로 일국일성을 살 수 있었을까? 책이나 드라마 등을 많이 읽고 감상했지만 다기 하나로 일국일성을 샀다는 사람이나 팔았다는 사람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현실에서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다기 하나에 자신이 통치하는 지역과 성을 팔까? 현실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비유적으로 당시 다기의 가치가 그만큼 높았다는 것인데, 이는 영주들이 부하들의 충성에 보답하는 가치재로서 다기가 이용되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다기는 거품이 잔뜩 낀 재화였을 것이다. 마치 요즘 한창인 “가상화폐”처럼. 그렇지만 다기는 그래도 그걸로 차라도 마실 수 있지만, 가상화폐로는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문수보살(文殊菩薩)의 이름을 딴 문수사는 전국 각 처에 여러 곳이 있다. 지난주 서산 여행에서도 문수사에 들린 적이 있다. 구례의 문수사는 지리산에 위치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하늘아래 첫 절”이라고 할 만큼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지, 또 오르면 어떤 곳인지 해서 찾아가기로 하였다.
섬진강을 끼고 달리던 도로에서 문수사 표지가 있는 산길로 들어선다. 도로는 깊은 계곡을 옆으로 하고 산 위쪽으로 나있다. 계곡 양쪽에는 전원주택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이런 곳에서 겨울이 되면 통행이 가능할까 하고 내가 할 필요도 없는 쓸 데 없는 걱정도 해본다. 산 길을 계속 올라간다. 상당히 높게 올라왔는데도 전원주택들이 띄엄띄엄 나타난다. 그렇게 몇 킬로나 올라왔을까, 지금까지 왔던 비교적 넓은 오르막 도로는 끝나고 좁은 산길 도로가 나온다. 지금까지 올라온 도로도 가팔랐는데, 앞으로 시작되는 도로는 한층 더 가파르다. 이런 가파른 도로를 몇 킬로 더 올라갔다.
한참을 더가니 상상을 초월하는 경사를 가진 도로가 나왔다. 숲은 울창하여 그늘이 완전히 도로를 가리고 있다. 일단 차를 세우고 여기서부터 걸어 올라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차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경사이다. 그런데 포장까지 되어 있는 것을 보니 차가 다니는 길인 듯 했다. 그래, 다른 차도 올라가는데, 내 차라고 해서 못올라 갈 것 있나라는 기분으로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도저히 못오를 것 같은 경사길인데도 차는 올라간다. 차가 정말 고생한다.
가파른 경사도로를 몇백미터 정도 올라가니 절로 들어가는 문이 보이고 그 앞에 주차장이 있다. 절의 문 아래에는 SUV 차가 한 대 서있고 그 옆에는 진돗개처럼 생긴 개가 한 마리 풀려져 있다. 절에 들어가려면 이 개를 통과하여야 한다. 나부터 먼저 들어갔다. 개가 아주 순해 짖지도 않는다. 집사람도 따라 들어왔다. 절에는 사람의 인기척도 없다.
문수사는 6세기 백제 성왕 때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뒤 원효, 의상을 비롯한 고승들이 수행을 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서산대사도 이곳에서 스행을 하였다고 한다. 절 집은 임진왜란 때 일부가 불타고, 6.25때 전소되어, 1980년대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높은 곳에 있는 절 치고는 비교적 넓은 터를 차지하고 있다. 절 터 전체가 평평하여 절 안에서는 건물 간에 높낮이가 없다. 대웅전이 아주 특색있게 생겼다. 보통 절의 대웅전과는 달리 여기는 대웅전이 3층 목탑으로 되어있다. 목탑의 가장 아래층이 대웅전이다. 2층, 3층은 실제 사용하는 공간인지, 아니면 단순한 층수에 불과한지는 모르겠다.
차가 주차되어 있으니 사람이 있을터인데, 인기척이 전혀 없다. 절 터 깊숙이 대웅전 옆쪽으로 가니 아주 크고 튼튼한 쇠창살로 만들어진 2층으로 된 우리가 있다. 가까이 가보니 반달곰이다. 절에서 왜 반달감을 사육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보통 동물원에 가보면 우리에 갇힌 맹수들은 대부분 축 쳐져 누워서 졸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우리에 갇혀있는 반달곰들은 식식거리며 우리 안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동물원에 가만히 있는 곰을 보고는 몰랐는데, 이렇게 활발하게 움직이는 곰을 보니까 정말 맹수가 무섭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절에서 쇠우리를 만들어 곰을 가두어 기르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하다.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 그런지, 아니면 갈 곳 없는 어린 곰을 보호하다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곰 농장에서 버리려는 곰을 자비심에서 거두었는지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
이제 집으로 간다. 빨리 가자면 고속도로를 타는 것이 좋지만 지리산을 넘어 가기로 하였다. 성삼재로(性三峙)로 올라가 뱀사골 방면으로 내려가 남원 쯤에서 고속도로를 타면 된다. 성삼재까지는 가파른 도로가 계속된다. 높이 올라갈수록 공기가 시원해진다. 창문을 여니 시원한 공기가 차안으로 밀려 들어온다. 성삼재 휵게소에 도착하니 차들은 적지 않게 주차해있다. 여기서 노고단까지는 5-6킬로, 왕복 3-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4시다. 그렇게 멀리까지는 갈 수 없다.
이곳 성삼재에는 몇 년전 와서 노고단 가는 길로 가다가 중간에서 돌아온 적이 있다. 오늘도 그래야겠다. 성삼재에서 노고단 가는 길은 넓고 평평한 길이다. 경사도 아주 적어 걷기에 그만이다. 걷기가 편한 길이라 가벼운 차림을 한 사람들이 많이 산책을 즐기고 있다. 경사가 완만하다고는 하나 그래도 경사가 있는 것은 틀림없으므로 좀 빠른 걸음으로 걸으니 땀이 난다. 다섯시가 가까워온다. 더 늦으면 밤에 운전을 해야 한다. 그만 돌아가자.
뱀사골 방향으로 차를 내려간다. 한참을 내려가니 갈림길이 나오고 바로 내려가면 뱀사골의 계속이고 왼쪽으로 가면 정령치(鄭嶺峙)이다. 정령치는 한번도 다녀본 적이 없고, 마침 내비도 그 쪽으로 길 안내를 하니 정령치로 가기로 했다. 조금 가다보니 길은 다시 오르막 길로 변한다. 오르막 길이 끝도 없이 계속된다. 지금껏 이만큼 긴 고갯길은 처음인 것 같다. 한계령이나 진부령, 대관령, 조령 등 많은 고갯길을 자동차로 달려보았지만, 이렇게 높고 긴 언덕길은 처음이다.
정령치 꼭대기에는 작은 휴게소가 하나 있다. 이 쪽으로는 통행하는 사람이 적은지 휴게소는 한산하다. 정령치에서 길을 따라 내려가니 구룡계곡과 육모정이 나온다. 작년 이맘때 와본적이 있는 곳이다. 그 때는 남원 방면에서 올라왔는데, 이번에는 정령치에서 내려가는 길로 온 것이다.
이제 이번 여행은 끝이다. 이제 집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2박3일의 남해편백자연휴양림 여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