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2박 3일간 서산에 있는 용현 자연휴양림 여행이다. 지난주 용대 자연휴양림에 갔다 온 지 닷새밖에 되지 않았는데, 또 여행을 가려니 피곤하긴 하다. 어제 집사람이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는데, 혹시 부작용이 나타나 여행이 어려운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다행히 아무런 문제가 없다.
최근 몇 번의 여행은 모두 편도가 300킬로 이상되는 먼 거리였다. 그에 비하면 서산은 이곳 세종시에서 100킬로도 안 되는 거리라 마치 이웃에 가는 것 같아 큰 부담은 없다. 시간 여유가 있는 만큼 오전 11시가 넘어 느지막이 출발하였다.
1. 홍주성
홍성에는 읍성인 홍주성(洪州城)이 있다. 처음에는 홍주성이 있는 지역이라 하여, 홍주성에서 가운데 “주”자를 빼고 이름을 군 이름을 “홍성”이라 정했는가 했더니, 그건 아니고 일제강점기 때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질 때 홍주군(洪州郡)과 결성군(結城郡)을 합쳐 “홍성군”이 되었다고 한다. 홍성군은 충청남도의 도청소재지이다. 그래서 이곳 홍성에는 관청과 공공기관이 많이 입주해있다.
우리나라에는 과거 많은 읍성이 있었지만 현재까지 제대로 남아있는 곳은 해미읍성과 낙안읍성 정도이다. 홍주성은 해미읍성과 낙안읍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는 편이다. 동문인 조양문(朝陽門)과 함께 남문인 홍화문(弘化門)이 복원되어 있으며, 성벽도 800미터 정도 남아있다. 홍주성이 있는 곳은 홍성 읍내에서도 가장 중심지에 속한다. 다행히 평일 낮이라 주차할 곳은 쉽게 찾았다. 차에서 내리니 초여름 햇빛이 여간 아니다. 주차장은 홍주성 안쪽에 위치해있다.
홍주성은 공원화되어 있어 잘 정비되어 있다. 새로 조성된 잘 관리된 깨끗한 잔디밭과 산책로, 그리고 가끔 보이는 정자 등이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큰 역할을 하는 듯하다. 남문인 홍화문 쪽으로 갔다. 홍화문을 중심으로 양쪽으로는 성벽이 많이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성곽을 허물려고 하였으나 읍민들이 강경하게 들고일어나 지금의 상태로나마 보전되었다고 한다. 성벽의 높이는 4미터 정도 되어 보인다. 성벽 위에는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다. 성벽 위로 올라가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홍성읍은 비록 지방의 작은 도시이긴 하지만 충남도청도 유치하고 해서 빠른 속도로 발전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풍경은 다른 읍단위의 도시들에 비해 비교적 현대식 빌딩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홍주성 한가운데는 홍주성 역사관이 들어서 있다. 작고 아담한 건물이었는데, 특이하게도 전시실이 지하에 위치해있다. 여기에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의 유물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원삼국시대란 BC 1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 무렵까지의 기간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와 함께 마한, 진한, 변한 등의 국가가 공존하던 시기였다. 이곳 홍성지역은 이곳은 원삼국시대 마한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사실 학교에 다닐 때나 또 성인이 되어 역사책을 볼 때도 원삼국시대에 대해서는 별로 들어보지 못하였다. 그저 막연히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에 앞선 시대에 마한, 진한, 변한이 있었다고 하니 백제가 마한을, 신라가 진한을, 가야가 변한을 멸망시키고 새 나라를 세웠거니 하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곳 역사관에서는 나의 생각과 같은 학설이 있는가 하면, 그와는 달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와 함께 마한, 진한, 변한이 상당기간 공존하였다고 하는 학설도 있다고 한다. 그 설명을 보고 나니 그럴듯하게 생각된다.
이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일찍 기독교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기독교 탄압으로 인한 순교자들도 다른 지역에 비해 많다고 한다. 이곳 홍주성 뇌옥에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투옥되었는데, 그들 중에 상당수는 추운 겨울에 감옥에서 동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신앙의 묏자리”라고 하기도 한다고 한다.
2. 간월도(看月島)
간월도는 태안반도로 들어가는 아래쪽에 있는 작은 섬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태안반도가 사람의 팔이라고 한다면, 간월도는 겨드랑이에 위치해 있는 섬이다. 그러니까 이곳 간월도는 천수만(淺水灣)의 제일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간월도는 섬이라고는 하나 서해바다의 간만의 차로 썰물 때는 육지와 연결되다가 밀물 때는 섬이 된다. 섬이라고 하지만 육지와의 거리는 50미터 남짓이다. 5-6년 전에 간월도를 한번 찾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간월도의 특별한 지형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간월도는 아주 작은 섬이다. 간월암이라는 작은 절이 있는데, 이 절이 간월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얼마 전에 친구가 중국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보여주는데, 간월도와 간월암을 쏙 빼닮은 곳이었다. 간월도로 들어가는 높은 언덕 위에 주차를 하고 간월도 쪽으로 내려간다. 지금은 썰물 때라 바닷물이 모두 빠져 걸어서 간월도로 들어갈 수 있다. 이곳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모세의 기적”이 발생하는 셈이다. 옆에는 바다 물 때와 관계없이 어느 때나 육지와 왕래가 가능하도록 작은 다리를 만들고 있다. 다리가 없는 편이 월씬 더 운치가 있어 보이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관광객의 운치를 위해 불편을 참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간월암은 아주 작은 암자이다. 작은 법당과 한두 개의 부속 건물이 전부다. 그렇지만 그 작은 건물만으로도 이 간월암은 가득 찬다. 간월도는 특별한 경치를 가진 곳이다. 그런 만큼 암자도 좀 더 경치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운치 있게 지어졌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나만의 일방적인 생각일까? 여하튼 이 좋은 곳에 들어선 암자의 건물이 너무 싼 티가 난다.
지난번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이른 봄이었던 것 같다. 추운 바닷바람에 제대로 보질 못하였는데, 오늘은 조금 덥긴 하지만 간월암과 간월도의 이곳저곳을 차근차근 볼 수 있었다. 간월암은 절의 모습이 그다지 운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지은 지 오래되지 않는 절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긴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한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하기도 하고, 조선초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수련을 하였다는 설도 있었다고 하니, 최소한 수백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곳인 것 같다. 그런 만큼 좀 더 많은 예산을 들여 좋은 절집을 지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