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과 꾸이년

(2026-01-09) 동남아 횡단여행 (5)

by 이재형

아침에 일어나 어제 사 온 빵과 콜라로 아침을 때우고 침대에서 빈둥거렸다. 이번 여행은 쉬는 데 방점을 찍었으니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느긋이 지내면 된다. 오전에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로마의 노예제와 AI>라는 꽤 긴 글을 하나 써서 페북에 올렸다. 데스크톱으로 쓴다면 한 시간이면 되겠지만, 핸드폰으로 쓰려니 꽤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빈둥거릴 수는 없다. 오후 2시쯤 호텔을 나왔다. 제미나이에게 이곳 호텔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명소 몇 곳을 추천받았다.


첫 번째 행선지는 <응우옌 신 삭 - 응우옌 떳 타인 동상>이다. 이곳은 어제 갔던 바닷가 바로 근처에 있는 광장에 세워진 큰 동상이다. '응우옌 신 삭(阮生色)'은 호치민의 아버지이며, '응우옌 떳 타인(阮必成)'은 호치민의 본명이다.

꾸이년 해변 공원으로 가는 길

호치민의 아버지는 이곳 현감으로 부임해 왔는데, 1910년 호치민은 프랑스 식민지에서 조국을 해방시키기 위한 큰 뜻을 품고 사이공으로 떠나려 아버지에게 하직 인사를 한다. 이 동상은 그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총 높이 15미터, 동상 높이만 11미터에 이르는 큰 동상이다.


이 만남은 부자의 마지막 만남으로서 이후 호치민은 30년 동안 해외를 떠돌며 독립운동에 매진한다. 베트남에 호치민 동상은 수없이 많지만 부자가 함께 있는 동상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이 헤어짐을 마지막으로 호치민은 수십 년간 망명 생활과 독립운동을 이어갔기에, 이별의 장소인 꾸이년은 베트남 현대사에서 매우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다고 한다. 동상은 최근에 건립한 듯 아주 깨끗하다. 동상 뒷편은 석벽이 둘러쳐 있고 거기엔 베트남의 역사적 장면들이 벽화로 부조되어 있다.

호치민 부자 동상과 주위의 거리 풍경

다음은 꾸이년 박물관이다. 해변을 오른쪽으로 두고 해변도로와 평행한 좁은 도로를 통해 걸어갈 수 있다. 로컬 냄새가 물씬 나는 길이다. 빵으로 아침을 때운 후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길 옆 작은 식당에서 분짜로 가볍게 점심을 먹었다. 베트남 쌀국수는 크게 퍼(Phở)와 분(Bún) 두 종류가 있다. 퍼는 납작하고 얇은 것이고, 분은 둥글고 좀 굵은 국수다.


음식이 약간 짰는지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다. 걷다 보니 과일 주스를 파는 노점이 보인다. 사탕수수즙을 달라고 했다. 짜낸 즙을 플라스틱 컵에 옮기는데, 작은 벌레가 빠진다. 행상 아주머니가 작은 스푼으로 그것을 건져내 버리고는 내 눈치를 살피며 어색하게 씩 웃는다. 그냥 달라고 했다. 난 그런 것 별로 신경 안 쓴다. 어제 레스토랑에서는 4,500원 정도였는데, 여기선 600원 정도다. 양도 훨씬 많다.


박물관은 조그만 2층 건물이었다. 마당에는 베트남 전쟁 때 사용된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입장료는 600원 정도. 관람객은 나 혼자뿐이다. 1층은 3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전시관은 옛 문화와 예술을 주제로 하고 있다.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우리와 유사점도 많은 것 같다.

꾸이년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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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이년 박물관의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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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호부대가 건설한 문화센터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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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전시품

두 번째 전시관은 옛날 이곳을 수도로 하였던 참파 왕국의 불교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세 번째 전시관은 베트남의 독립전쟁을 주제로 하고 있다. 프랑스와의 독립전쟁, 미군과의 해방전쟁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데, 전시물들은 감정적 몰입 없이 담담히 옛일을 기억하는 듯하다. 특이한 것은 맹호부대의 이름이 새겨진 현판이다. 맹호부대가 이 지역에 문화센터를 지어 주었나 보다. 한-베트남 양국의 우호의 표시로 맹호부대가 문화센터를 지었다는 글이 한글과 베트남어로 새겨져 있다. 부대장은 윤필용이다.


다음은 롱칸 사원으로서, 박물관에서 약 600m 거리에 있다. 이 사원은 18세기 초 중국 출신의 승려인 득 선(Duc Son) 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당시 꾸이년 지역에 거주하던 중국인 공동체를 위해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베트남 중부 지역 불교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사원의 건축 양식은 베트남 전통 양식과 중국 남부의 사찰 양식이 혼합된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한다. 사원 입구 마당에는 높이 17m에 달하는 거대한 흰색 아미타불 입상이 서 있다. 다음으로 꾸이년의 명소 가운데 하나인 쌍둥이 탑에 가려고 했으나 시간도 늦었고 다리도 아프다. 호텔로 돌아왔다.


시간은 오후 5시. 밤 12시까지의 긴 시간을 침대에서 뒹굴거릴 수는 없다. 태블릿 PC를 갖고 나와 근처 카페의 길가 좌석에 앉아 "빠른 무한 스타크래프트"를 보면서 이 글을 쓴다. 내일은 오토바이를 렌트해서 주위의 명소를 둘러보아야겠다.

롱칸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