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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Oct 03. 2021

영화:이조여인잔혹사

봉건시대 악습에 억눌린 여성의 삶

조선시대 유교사회에서 여성의 생활은 그야말로 처참하였다.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말에서 보듯이 여성은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평생을 남자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는 존재였다.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나이가 들어서는 남편을 따르고, 늙어서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바로 삼종지도였다. 또 그런 봉건적 사회에서는 시어머니와 같은 사람들은 희생당하는 여자이면서, 동시에 며느리를 괴롭히는 가해자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피해자, 가해자의 관계가 대를 이어 내려가는 것이 또 기막힌 당시 사회의 윤리였다.


영화 <이조여인 잔혹사>는 신상옥 감독이 1969년 제작한 영화이다. 봉건 질서 하에서 억압받은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서 당시에는 꽤 화제가 되었던 영화이다. 이 영화는 4개의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 영화인데, 그중에 한 이야기는 분실되었다고 하여 나는 3개의 에피소드만을 감상하였다.


첫 번째 이야기는 여필종부(女必從夫)이다. 양반집 규수 남정임은 부모들 간의 약속에 의해 명문 집안의 도령과 결혼을 하기로 한다. 그러나 결혼을 며칠 앞두고 그 도령은 돌연 사망하고 만다. 남편 될 사람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정임의 아버지는 그녀를 시집보내고 만다. 죽어버린 남편과 혼인을 한 남정임은 과부 아닌 과부로 살아간다. 어느 날 친정을 찾은 남정임은 새로운 삶을 찾을 뜻을 아버지에게 비친다. 아버지는 과부인 딸에게 나쁜 소문이 돌까 우려하여 딸을 죽여버리고 만다. 그리고는 남편을 기리다가 죽었다고 이야기를 꾸며내고, 이 꾸민 이야기는 양가 모두의 이해에 맞아 결국 그녀는 열녀로 숭앙되고, 그녀를 기리는 열녀문까지 세워진다.


두 번째 이야기는 칠거지악(七去之惡)이다. 칠거지악에서 가장 큰 죄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죄이다. 최은희는 양반집의 며느리인데, 남편의 결함으로 인해 아이를 낳지 못한다. 가족 모두가 아이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중에 최은희는 결국 종인 신영균과 사랑을 나누게 되고, 그 결과 임신을 하게 된다. 최은희는 아들을 낳게 되어 온 집안이 경사로 떠들썩해진다. 그러던 중 최은희가 종과 통정을 한 사실이 발각되어, 마침내 죄의식에 자살을 하고 만다.

세 번째 이야기는 궁중비색(宮中悲色)으로 궁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궁녀들은 대궐에서 오직 한 사람의 남자인 왕만을 모시고 있다. 그런데 왕의 성은을 입기는 어렵기 짝이 없다. 김지미는 상궁으로서 왕의 침소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던 중 궁궐을 경비하던 중간 관리와 정을 통하고, 그 결과 아이를 갖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궁녀들은 힘을 합해 김지미와 그 아이를 지키려고 한다. 궁녀들은 힘을 모아 아이의 아버지 궁궐 경비 관리를 죽이고, 김지미를 궁 밖으로 도피시키려 한다. 궁녀가 궁 밖으로 나가는 것은 죽어만 가능하다. 가짜로 김지미가 죽었다고 소문을 내고, 궁녀들은 김지미를 관속에 넣어 궁 밖으로 내보내려 한다. 이때 내시가 등장하여 이를 수상히 여겨 관을 조사하려 한다. 궁녀들은 필사적으로 관속에는 시체가 있다고 호소한다. 궁녀들의 눈빛을 본 내시는 어느 정도 사실을 짐작하면서도 눈을 감아주고, 관을 궁궐 밖으로 보내는 것을 허락한다.


세 이야기 중에 세 번째 이야기 궁중비색은 앞의 두 이야기와 사뭇 톤이 다르다. 앞의 두 개의 이야기는 부조리한 사회 관습에 순응하여 죽어가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반면 세 번째 궁중비색은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엄격한 궁중 법도를 피해 같은 운명에 처한 궁녀를 살리려 서로 도와가며, 길을 열어 나가는 궁녀들의 행동과 용기가 통쾌감과 함께 감동을 준다.


이 영화를 보면 정말 세상은 많이 변했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가 세계 기준에 비해 여성의 지위와 사회적 활동이 많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그 옛날과 비교하면 정말 격세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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