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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Aug 07. 2022

임진왜란(3) 원균의 패배

전쟁 초기 원균은 왜 병력과 병선을 모두 잃었나?

요즘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이 큰 인기를 몰고 있으므로 먼저 해전에 대해 알아보자. 


전쟁의 실상을 알기 위해서는 교전 양쪽의 기록을 모두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래도 교전 당사자가 각자의 입장에서 기록을 남기므로 자신의 전과는 크게, 그리고 손실은 작게 기록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피해의 기록에 있어서는 우리 측 사상자는 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적의 피해는 이 쪽에서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적의 피해를 적당히 과장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할 것이다. 게다가 이것이 역사로 내려오면서 “국뽕”에 의해 더욱 과장되는 경향이 있기 마련이다.  


임진왜란의 해상 전투라면 우리는 먼저 극히 대조되는 두 사람을 떠올린다. 바로 이순신과 원균이다. 이순신은 그야말로 백전백승하는 명장인 데다가 인품도 온후하며, 백성들을 아끼고, 효자인 데다 나라에 대한 충성심도 누구도 따를 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순신을 영웅을 넘어 “성웅”(聖雄)이라고까지 칭송하고 있다. 이에 비해 원균은 더 말할 수 없는 졸장부에다 사악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싸움만 하면 패하여 도망가고, 영웅인 이순신을 모함하고, 이순신의 전공을 가로채 전공(戰功)을 허위, 과대 보고하며, 인간적으로 비열하며, 결국에는 막강 조선 수군 전병력을 전멸로 몰아간 형편없는 인물로 비치고 있다. 


여기서는 다른 요소는 제외하고 수군 제독으로서 두 사람을 비교해보자. 잘 아시다시피 이순신은 전투마다 하는 족족 승리하였지만, 원균은 이미 전쟁 초판에 대패하여 자신이 가진 병력과 함대 거의 전부를 잃어버렸고, 이후 몇 번의 전투에는 이순신에게 빌붙어 참전하였다. 그럼 이순신의 승리와 원균의 패배의 차이는 무엇인가? 원균은 무엇 때문에 전투 초반에 대패하였는가? 우리나라의 많은 기록이나 드라마, 영화를 보더라도 원균이 패했다는 사실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 “왜 패했는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고 있다. 


잘 아시다시피 임진왜란 초기 원균은 경상 우수사였고, 이순신은 전라좌수사였다. 만약 이때 두 사람의 위치가 반대였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이순신이 경상 우수사였고 원균이 전라좌수사였다면 어땠을까? 그럼 이순신이 무적함대를 끌고 나가 일본 수군을 모두 수장시켜버렸을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순신이 만약 경상 우수사였다면 원균의 같은 신세가 되었을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말을 듣는 분들은 “아니 천하 맹장 이순신을 모욕해도 유분수지 그 무슨 망발이냐?”라고 생각하실지 모른다. 


사실 임진왜란 초기에는 일본 수군은 전투능력이 없었다. 일본은 애초 조선을 침공할 때부터 해전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래서 수군이라 해봤자 전부 수송선이고, 수송부대였다. “아니, 그럼 막강 전투함 판옥선을 보유한 조선 수군이 왜군의 수송선들에게 깨졌다고?” 당장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가 원균

그게 아니다. 원균은 해전에서 진 것이 아니라 육전(陸戰), 즉 육군에게 패한 것이다. 아시다시피 왜군은 부산진을 통해 침략해 들어왔다. 그래서 부산, 동래를 비롯한 남해 동부 쪽은 순식간에 왜병들에 의해 장악되었다. 원균이 지휘하는 경상우수영은 거제에 위치하고 있었다. 경상우수영이 왜군 공격을 받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왜군 육군은 바로 거제도를 향하였다. 그리고 왜 선단은 경상우수영 앞바다를 봉쇄하였다. 


요즘 같으면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해상에서 몇 개월간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지만 그 당시 전투는 그렇지 않았다. 수시로 보급을 받고 선박을 정비하여야 하였다. 육상 기지 없이는 전투의 수행이 불가능하다. 그런 상황에서 본진이 점령당하면 그 수군 부대는 끝이다. <스타 크래프트>에 비교하자면 본진이 털린 것이다. <스타 크래프트>에서야 본진이 털리면 커맨드 센터, 배럭, 팩토리 모두 띄워서 다른 곳으로 이사할 수 있다지만 현실 전투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런 상황에서는 최선의 선택은 움직일 수 있는 함대와 병력만이라도 피신하거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무기와 식량이 적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파괴하는 것이 최선이다. 


원균은 두 번째 방법을 택하였다. 경상우수영에 정박된 함선들과 창고의 식량을 모두 불 지르고 사람들만 빠져나간 것이었다. 이에 대해 일본 측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조선 수군 측에서는 경상좌수사 박홍이 경상좌수영을 버리고 도망갔다. 경상우수영에서 급히 달려온 원균은 지역 일대가 온통 일본군으로 덮여 있는 것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몰라, 적에게 빼앗길 것을 우려하여 주력함을 포함한 대부분의 수군 선박을 싸우지도 않고 침몰시켰다. 그리고 4척의 작은 배에 측근들을 분승시켜 우수영을 탈출하였다. 원균이 탈출한 후 경상 우수영은 패닉 상태에 빠져 창고를 불사르고 도망치는 자들이 속출하였다. 일본군은 손도 쓰지 않았는데, 조선 수군은 자기 맘대로 자멸해버렸다.” 


만약 이때 이순신이 경상 우수사였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아무리 이순신이지만 육로로 공격해 들어오는 적의 육군은 막기 힘들었을 것이었고 기지는 결국 내어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신 좀 더 체계적으로 후퇴 작전을 짜서 병선과 보급품을 반출하였을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이 전투에서 패전은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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