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7a) 호찌민 시내 관광(1) - 통일궁
어제, 아니 오늘 새벽에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호텔에 도착했다. 주위가 시끄럽다. 새벽 3시가 되어도 어디선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니 오전 8시이다. 한국 시간으로 오전 10시이니까 평소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난 거다.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꽤 괜찮은 편이다. 몇 가지 뷔페식 음식과 함께 쌀국수를 먹었다. 역시 쌀국수는 베트남이다. 우리나라의 아무리 좋은 쌀국수 식당이라 하더라도 베트남 길가 노상에서 파는 할머니의 쌀국수만도 못하다.
첫 번째 행선지는 통일궁이다. 구글 지도로 확인을 해보니 호텔에서 1.5킬로 정도 떨어져 있어 걸어가기로 했다. 가는 도중에 몇 개인가의 공원이 보인다. 아직은 시간이 일러 그다지 덥지 않다. 수목이 우거진 공원의 상큼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운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데 메시지가 뜬다. 카메라 소리를 현지의 기준에 맞추겠느냐는 메시지이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서는 스마트의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 제법 큰 소리로 “찰칵” 소리가 난다. 도촬(盜撮)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도촬 방지를 위해 사진을 찍을 때 큰소리가 나도록 하여야 한다는 규칙은 우리나라와 일본 등 소수의 국가에서 적용하는 규칙이다. 이곳 동남아에서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아도 무방하다. 이후 이번 여행에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떨 때는 사진이 제대로 찍였는지 의문이 들 때도 몇 번 있었다.
조금 큰길로 나가니 오토바이 행열이 장관이다. 길을 가득 매운 채 달려가는 오토바이 무리는 몽골 기병대를 연상시킨다. 베트남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도로를 건너는 일이다. 횡단보도가 없는 곳이 많으며, 았더라도 신호등이 있는 곳이 거의 없으므로 달려오는 차와 오토바이를 피해 길을 건넌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보행자에 대한 운전자들의 배려라고는 전혀 없다.
4년 전에 베트남의 하노이에 여행을 한 적이 있다. 하노이의 중심지인 호안끼엠 호수 부근에 신한은행 지점이 있었는데, 이곳을 가려면 왕복 2차선 도로를 건너야 하였다. 길을 건너려는데 오토바이 행렬이 줄지어 지나가며 도무지 세워주질 않는다. 그런데도 현지인들은 길을 잘도 건넌다. 나는 길을 건너려고 한참을 기다렸으나 위험해서 건널 마음이 안 생겼다. 그래서 한참을 기다린 끈에 결국 은행에 가는 것을 포기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라면 신호등이 없더라도 앞쪽에 신호등이 있기 때문에 한 번씩은 차의 흐름이 끊겨 그 틈을 이용하여 길을 건널 수 있다. 그렇지만 이곳에는 앞쪽에도 신호등이 없기 때문에 도무지 차의 흐름이 끊기지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폭주하는 오토바이와 차량의 물결 속을 헤쳐나가듯 길을 건널 수밖에 없다.
반탄시장을 좀 지나니 경찰들이 나와 도로를 통제한다. 알고 보니 화재가 발생하였다. 작은 호텔과 카페를 겸하고 있는 4-5층짜리 빌딩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불길이 보이며, 소방차가 몇 대 와서 불을 끄고 있다. 우리가 투숙하고 있는 호텔 정도의 건물인데, 다친 사람이 없는지 모르겠다. 이곳 베트남의 건물에는 화재 시 비상탈출구 같은 안전장치가 제대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우리가 투숙하고 있는 호텔에서도 만약 화재라도 난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통일궁은 이전의 베트남 공화국, 그러니까 남베트남의 대통령궁이었다. 남베트남의 마지막 대통령인 응우옌 반 티이우예(구엔 반 티우) 대통령은 1975년 4월 30일 이곳에서 항복 선언을 하고 미국으로 도피했다. 입장을 하면서 트랜시버 형태를 한 설명기를 빌렸다. 주요 시설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 기구로서, 두 개의 이어폰이 달려 있어 한꺼번에 두 사람이 사용할 수 있다.
이곳은 사이공(호찌민 시의 옛 이름)이 함락당하는 날 그때의 모습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정원은 청와대에 비해 훨씬 좁지만 건물은 크고 화려하다. 나는 청와대 본관에는 가본 적이 없어 청와대와 비교해서는 건물 규모가 어떤지 모르겠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우리로 치면 비서실, 그러니까 스태프들이 일하는 공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첫 번째 보이는 큰 방이 내각 회의실이다. 1975년 4월 30일 오전 이곳에서 대통령 주제로 각료회의가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회의 개최 몇십 분을 앞두고 사이공 외곽을 에워싸고 있던 월맹 및 베트콩 연합군으로부터 통보가 왔다고 한다. 베트남 정부(월맹)와 베트남 공화국 혁명정부(베트콩)는 조국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 남베트남의 병사들과 정부 관계자들은 저항을 멈추고 함께 조국의 발전을 위해 힘써 나가자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 방송을 들은 티우는 그 자라에서 항복을 선언하고 마국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요즘 중국의 시진핑은 공공연히 대만에 대한 무력 행사를 언급하고 있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이전에는 중국군이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대만을 점령할 가능성이 2/3 정도는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고는 그 가능성을 50% 정도로 낮췄다. 대만이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게다가 미국도 지원하고 있는데 그리 쉽게 중국에 당하려고....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압도적일 것이다. 나도 만약 대만이 이빨을 악물고 싸운다면 중국과 거의 대등하게 싸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특수하다.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국제사회의 많은 나라가 인정하고 있다. 우리도 그런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대만 스스로도 묵시적으로 그걸 인정하고 있다. 중국과 대만이 싸운다면, 그것은 내전이다. 중국군은 관군이 되고 대만군은 반군인 역적이 된다. 중국으로서는 전쟁을 그러한 프레임으로 몰고 갈 것이다. 중국은 대만의 정치 지도자를 비롯한 군 지휘부, 사병에 이르기까지 조국에 맞서는 역적이 되지 말고 함께 조국을 건설해 나가자는 선무공작을 집요하게 펼칠 것이다. 이들에 대해서 뿐만 아니다. 경제인이나 기업인들에게도 통일 후의 안정적인 사업활동과 재산을 보장한다며 설득할 것이다. 기업인이나 부호들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중국에 맞서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과연 여기에 대만이 어디만큼 버틸 수 있을지 그것이 관건일 것이다.
건물의 3층은 대통령의 부인이 사용하였던 공간이다. 이곳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개인 방과 요리실, 응접실, 환담실 등이 자리하고 있다. 전쟁의 와중에서 일반 국민들이 참혹한 생활을 이어가는 속에서도 대통령 일가는 안락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