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7b) 호찌민 전쟁기념관과 동식물원
다음은 호찌민 전쟁기념관이다. 통일궁을 나와 10분 정도 걸으면 되는 위치에 있다. 기념관에 들어가면 마당에는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포와 같은 소형 무기도 있지만, 탱크, 전투기 등과 같은 대형 무기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다. 대형 무기들은 대개가 미군의 무기들이다.
나는 몇몇 나라의 전쟁기념관에 가 본 적이 있다. 그런 곳에서는 대개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사들이 어떻게 강한 적과 싸워 조국을 지켜내었는가를 보여주는 국뽕적인 테마를 깔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전쟁기념관은 다르다. 20세기 이후 미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한 나라는 베트남이 유일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전쟁기념관에는 "미국이라는 거대 제국에 대항해 싸워 이긴 베트남 인민의 영광"이란 식의 국뽕적 요소는 전혀 없다. 미국이라는 거대 제국이 힘없고 약한 베트남 인민들에게 얼마나 잔인한 짓을 저질렀는가, 비인도적인 전쟁에서 베트남 인민들이 얼마나 고초를 겪었는가가 전체적으로 흐르는 테마라 느껴진다.
전시관은 3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시물은 대부분 사진 혹은 신문자료들이다. 층별로 각각 다른 소 테마를 다루고 있다. 1층은 베트남 전쟁이 얼마나 불의(不義)의 전쟁이었는가를 다루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참전자와 기자들의 증언, 각국에서 벌어진 반전운동, 베트남 언론의 시각 등을 통해 미국이 이끈 베트남 전쟁의 추악한 실태와 그 비도덕성을 밝히기 있다.
2층은 전쟁에서 겪은 베트남 인민의 고초가 중심이 되고 있다. 미군의 만행에 의해 처참한 죽음을 당한 농민, 미군에 체포당한 아버지를 죽이지 말라고 미군에게 애원하는 어린 여자아이, 처참하게 죽은 엄마와 갓난아기의 시체 등 눈을 뜨고는 보지 못할 기막힌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된 사진을 찍다가 너무나 끔찍해서 차마 찍을 수 없는 사진도 많았다. 3층은 평화를 위한 길과 베트남의 새로운 희망을 테마로 한 것 같다.
전쟁기념관을 나왔다. 다음 행선지는 베트남 역사박물관이다. 가는 길을 검색하는데 갑자기 인터넷이 먹통이 된다. 와이파이 도시락을 체크하니, 배터리가 다 닳았다. 급히 보조배터리를 꺼냈는데, 아뿔싸 연결 케이블을 가져오지 않았다. 인터넷이 되지 않으면 완전 미아가 된다.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일단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운 좋게 기념관 정문 앞에서 택시를 잡았는데, 미터기가 무섭게 올라간다. 2킬로 정도 되는 거리에 요금이 11만 동, 그러니까 7천 원 정도가 나온다.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비싸다.
호텔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잠시 쉰 후, 이번엔 그랩 택시를 불러 베트남 역사박물관으로 갔다. 거리가 4킬로 정도로 좀 전의 두 배에 가까운데 요금은 48,000동으로 반도 안된다. 오전의 택시 요금이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미터기로 장난을 친건지 모르겠다. 이젠 철저히 그랩 택시만 이용해야겠다. 박물관에 가니 입장 시간이 지났다고 한다. 최종 입장 시간은 5시라는데, 시계를 보니 아직 2-3분 남았다. 그리고 우리 바로 앞에 온 사람은 들여보내 주고 우리부터 입장이 안된다고 한다. 시계를 보여주며 아직 5시가 안 되었다고 항의해보지만,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막무가내로 안된다고 한다.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안되니 항의도 제대로 될 수가 없다.
역사박물관 입장이 좌절되어 갑자기 황당한 느낌이 든다. 구글 지도를 켜서 주위에 갈만한 곳이 있는가 검색해보았다. 바로 옆에 호찌민 동식물원이 있다. 당초 방문 코스에 넣었다고 뺀 곳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이곳을 가기로 했다. 동식물원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동물은 별로 볼 것이 없다. 종류도 적고 특별한 동물도 없다. 다만 이곳에서 나는 호저(豪猪)를 처음 보았다. 온몽이 고슴도치처럼 가시털로 덮인 동물인데, 크기는 거의 진돗개 크기이다.
이곳 동식물에서 동물은 별로 볼 것이 없었지만, 식물원은 볼만했다. 둥치가 하얀색이며, 굵은 뿌리가 땅 밖으로 드러난 큰 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인 이 나무는 구글을 통해 검색해보니 카폭 나무라고 하는데, 이곳 호찌민 시에서는 가끔 발견할 수 있는 나무였다. 아주 잘 생긴 나무이다.
조금 둘러보자니 <오키드 하우스>라는 온실이 있었다. 상당히 넓은 온실인데, 수없이 많은 다양한 난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많은 수는 이미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난들이었다. 요즘은 우리나라 화원에서도 다양한 열대 화초들을 수입하여 판매하고 있으므로 예전 같으면 진귀하게 보았을 열대 화초들도 요즘은 대부분 이미 눈에 익숙해져 그다지 신기한 감이 될지가 않는다.
동식물원을 나오니 이제 해가 저물어간다. 거리가 좀 멀지만 거리 구경도 할 겸 호텔까지 걸어서 가지로 했다.
다른 동남아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이곳 호찌민 시도 거리를 걷는다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인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며, 인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자동차나 오토바이, 아니면 가게의 탁자와 의자가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 별 수 없이 위험한 차도로 걸을 수밖에 없는데, 몇 번을 그렇게 하면 저녁에는 신경이 극대로 피곤해진다.
호텔에 들어가기 전 식사를 하기로 했다. 호텔 바로 근처에 식당들이 몰려있는 거리가 있다. 알고 보니 이 거리가 <여행자 거리>로서 호찌민 시의 명소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길 양쪽에 대형 바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길가에까지 탁자와 의자를 늘어놓았다. 안에서는 강렬한 소리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어제 새벽까지 큰소리로 잠을 설치게 했던 원흉이 바로 이곳이다. 호텔과 지척 거리인 이곳에서 밤새도록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으니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노상 바에서 쌀국수와 사이공 맥주로 저녁을 때웠다.
식사 후 나는 호텔로 돌아오고 집사람은 호텔 바로 옆에 있는 마사지 샵에 들렀다. 이곳에는 한 집 건너 음식점이고 한 집 건너 맛사지 샵이다. 나중에 돌아온 집사람에게 들으니 가격도 싸고 맛사지도 아주 잘한다고 아주 만족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