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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Mar 16. 2021

영화12:영광의 깃발(Glory)

흑인 인권신장의 계기가 된 흑인 부대의 활약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렇지만 인류 역사를 보면 크게 불리한 전쟁 상황에도 불구하고 마이노러티(minority)의 참전(參戰)을 거부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예를 들면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당한 조선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전쟁에 참전하려는 노비들과 천민들의 참전을 될 수 있는 한 거부하였다. 이러한 예는 중국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미국 남북전쟁에서도 당시 노예 상태에 있거나, 겨우 자유민이 된 흑인들이 병사로서 전쟁에 참여하고자 하였으나, 정치 지도자들은 이를 거부하였다.


옛날의 전쟁에서는 군대의 병력수가 절대적으로 중요하였다. 병력의 크기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소였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병사 한 명이라도 아쉬운 판에 왜 노예 등 마이노러티의 참전을 거부하였을까? 그것은 참전을 한다는 것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일원으로서 인정받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전쟁 후 당연히 그들은 참전에 따른 대가를 요구할 것이고, 그 대가란 것이 바로 노예나 노비 신분으로부터의 탈출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노예, 노비들을 자유민으로 만드는 것은 기존의 사회 질서를 붕괴시키는 것이라 생각하고, 정치가들은 그토록 절박한 상황에서도 마이노러티의 참전을 거부한 것이다.


멀리 로마에서는 로마 시민들뿐만 아니라 로마의 속주에 있는 사람들도 로마군에 지원할 수 있었다. 로마군은 이들을 받아들여 다민족 군을 편성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 속주 출신의 지원병들은 긴 군대생활이 끝나 제대하게 되면 그 보상으로 모두 로마 시민증을 받았던 것이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리스의 군사대국이었던 <스파르타>는 일반 시민에서 왕까지 모든 시민들이 오직 단 하나의 동일한 직업을 가졌다. 이렇게 국민 전체가 실업자도 한 명도 없이 똑같은 단 하나의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유래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스파르타 시민이 가졌던 단 하나의 직업,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스파르타 시민의 유일한 직업은 <군인>이었다. 모든 스파르타 시민은 군인이라는 단 하나의 직업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 어린 아이나 노인, 여자들도 군인이었는가? 아니다. 군인이 아닌 어린이, 노인, 여자는 스파르타 시민으로서 인정받지 못하였다. 심지어는 왕비까지도. 이렇게 군인이라는 직업은 사회에서 남다른 특별함을 부여받는 직업이었다.


영화 <영광의 깃발>(Glory)은 1989년 제작된 영화로서, 미국 남북전쟁에서 흑인 부대의 활약을 다루고 있다. 열렬한 노예 폐지론자인 연방군(북군)의 로버트 굴드 쇼는 대령으로 진급하면서 새로 창설된 흑인들로만 구성된 연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된다. 흑인 부대는 백인들의 멸시와 천대, 그리고 보급물자의 부족 속에서도 흑인 부대원들은 오합지졸에서 점차 전우애에 충만한 강군(强軍)으로 성장해나간다.


흑인 부대의 실전 참전을 꺼리던 지휘부도 끈질긴 쇼의 요청으로 참전을 허락하며, 흑인 부대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전투에서 처음으로 승리를 하게 된다. 이어 쇼는 난공불락의 와그너 요새의 돌격을 자청하고 나선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와그너 요새로의 돌격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이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계속 돌격하는 흑인 병사들은 요새로부터의 대포와 기관총 공격에 장렬하게 전사한다. 결국 흑인 부대의 요새 공략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 전투는 남북전쟁의 흐름을 일거에 바꿔놓았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흑인 부대의 용감한 전투는 흑인은 정신상태가 형편없으며, 무식하여 제대로 군기를 잡을 수 없다는 그동안의 백인들의 생각을 바꾸어놓았다. 적의 집중포화를 받으면서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돌격하는 흑인 병사들의 모습에서 비장감을 느낀다. 이들의 활약에 의해 흑인에 대한 북군 지휘부의 생각도 크게 바뀌었고, 또 흑인들의 지원도 늘어 남북전쟁이 종료될 무렵에는 흑인 병사의 수가 20만 명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남북전쟁을 전후한 무렵의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 사상가, 군인들의 모습도 이 영화에서의 볼거리라 할 것이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말로 유명한 미국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의 손자가 철저한 노예제도 옹호론자로 나오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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