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형 Jan 06. 2023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애끓는 가족에의 그리움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치열하고도 처절하였던 전투를 들라면 단연 유황도(硫黃島, 이오지마) 전투가 꼽힐 것이다. 유황도에는 육해군을 합해 약 21,000명의 일본군이 지키고 있었고, 여기에 약 11만 명의 미군 상륙부대가 공격을 해온 것이다. 공격 측의 미군 병력은 지원부대까지 합하면 거의 25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전투에 미국은 16척의 항공모함, 1,100대의 비행기, 그리고 수많은 전함들이 동원되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17,000명 이상이 죽어 거의 전멸되다시피 하였고, 미군의 피해도 커서 전사자가 약 7,000명, 부상자가 2만 명 가까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이 전투는 미국으로서도 최악의 전투였다. 그 이전까지의 전투에서는 미군은 비교적 수월하게 승리할 수 있었다. 일본군은 궁지에 몰리면 소위 “옥쇄”를 하겠다고 하며 무모하게 스스로 돌격해오곤 하여 미국은 죽으러 달려드는 일본군들을 쉽게 사살하고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유황도의 전투는 달랐다. 사령관인 쿠리바야시 타다미치(栗林忠道) 중장은 뛰어난 전략가였다. 그는 다른 일본군 지휘관과는 달리 스스로 죽음을 향해 뛰어드는 무모한 전투는 벌이지 않았다. 미군과 일본군의 전력 격차를 파악한 위에 공격을 철저히 자제하는 대신 섬의 곳곳에 땅굴을 파고 완전히 수비 모드로 들어가 진격해오는 미군에게 효과적인 반격을 가하였던 것이다.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Letters from Iwo Jima, 硫黄島からの手紙)는 2006년 미국에서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소위 <유황도 2부작>의 제2탄에 해당한다. 전작인 <아버지들의 성조기>가 미군 병사의 시점에서 본 유황도 전투였던데 비해 이번 영화는 일본군 병사의 시점에서 유황도 전투를 그렸다. 이 영화는 제79회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을 포함한 4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었는데, 음향편집상을 받았다. 


때는 2006년 일본 동경도(東京都)에 속해있는 유황도에 조사대가 와서 발굴작업을 하고 있다. 발굴대는 지하 참호의 땅 속에 묻혀 있는 가방에서 수백 장이나 되는 편지를 발견한다. 그것은 61년 전 이 섬에서 싸웠던 병사들이 가족 앞으로 쓴 것이었다. 결국 전해지지 못했던 그 편지 속에서는 무엇이 쓰여 있었는가?


태평양 전쟁의 상황이 날로 악화되어 가던 1944년 6월, 유황도의 방위 사령관으로 쿠리바야시 육군 중장이 섬에 도착하였다. 유황도는 일본 본토 방위의 최후의 요새라 할 수 있는데, 그 유황도의 명운이 쿠리바야시가 이끄는 부대에 맡겨진 것이다. 부임하지 마자 쿠리바야시는 지그까지 일본군이 일반적으로 해왔던 상륙 저지 작전을 폐기하고, 섬 안에서의 지구전에 의한 철저 항쟁으로 전략을 바꾸었다. 그는 또 부하들에 대한 이유 없는 체벌도 금지시켰다. 지금까지의 다른 어떤 지휘관과도 다른 쿠리바야시라는 사나이와의 만남은 유황도에서 날마다 절망을 느끼고 있던 사이고(西郷) 일등병에게 새로운 희망을 던져주었다. 

쿠리바야시가 해안방어와 비행장 확보를 고집하는 해군 간부들의 반대를 물리쳤다. 유황냄새가 피어오르는 작렬의 섬, 음식도 물도 제대로 없는 이 혹독한 상황에서 쿠리바야시는 지하 진지를 파도록 독려하였다. 이 길고 긴 꼬리를 내리고 있는 턴널이야 말로 미군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비책이었다. 


1945년 2월 19일, 치열한 폭격이 개시된 후 드디어 미군이 상륙을 시작한다. 미군은 압도적인 병력 차이를 감안할 때 5일이면 전투가 끝날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일본군은 무너지지 않고 끈질기게 저항하였다. 오히려 미군 전사자가 더 많이 발생하는 지경이 되었다. 이 전투는 36일간이나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사이고는 빵가게를 하다가 군에 징집되어 이곳으로 끌려왔다. 편지를 통해 고향의 아내가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아직 보지도 못한 자신의 아들을 가슴에 안아보기 위하여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살아 돌아가려고 스스로 맹세하였다. 그리고 그들을 이끌고 있던 쿠리바야시도 또 군인이기 전에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61년 만에 도착한 그들로부터의 편지. 그 하나하나에서 유황도의 사연이 전해진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달마야 서울 가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