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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Dec 10. 2022

화물연대 파업 사태를 보고

문제의 소재는 어디에 있으며, 장기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십여 년 전쯤인가,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온 동창들의 모임에 얼굴을 처음 보는 후배가 참석하였다. 그 후배는 운동 특기자로 대학에 입학했는데, 감독과의 불화로 운동선수로의 길이 막혀 한국에서는 도저히 살아갈 방도가 없어 도피하듯이 미국으로 갔다고 한다. 별다른 기술도 없었던 그 친구는 겨우 화물자동차 기사로 취직을 했다고 한다.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트레일러 기사를 했는데, 한번 운전을 나가면 거의 한 달 동안 집에 못 들어갈 정도로 일이 고되었다 한다. 그렇지만 수입은 엄청 좋아 미국에서도 고소득군에 속한다고 했다. 부인도 함께 그 일을 하여, 부부가 교대로 운전을 했다고 한다. 부부가 함께 높은 연봉을 받은 결과 몇 년 가지 않아 경제적으로는 아주 여유를 갖게 되었다 한다. 고생의 대가로 한국에서 평생 여유 있게 살만큼 돈을 모았기 때문에 귀국하였고, 이제부터 인생을 즐기기만 하겠다고 희망찬 포부를 밝히는 것을 들었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은 업무에 비해 수입이 너무 적은 화물차 기사들이 수입을 높이고자 하는데서 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운임의 최저선인 안전 운임을 인상하고, 또 그 대상을 확대해 달라는 것이 그들의 요구였던 것 같다. 그들은 정부의 강압적 대응과 위협에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런데 만약 정부가 화물연대의 요구를 모두 수용했다고 한다면, 화물차 기사들의 처우가 크게 개선되었을까? 물론 단기적으로는 조금 나아지겠지만 나는 장기적으로는 변화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화물운송사업의 구도로는 시장 가격이 낮게 형성되는 것은 필연적이며, 안전운임제같은 규제가 확대, 강화되더라도 결국은 시장 가격에 가까운 수준으로 운임이 회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화물차 운전사가 고소득자인 미국과 저소득자인 한국 간의 화물운송업 사업의 차이는 무엇일까? 미국의 화물운송사업의 사업자는 대부분 큰 기업이고, 한국은 영세 자영업자이다. 그래서 미국의 화물자동차 기사들은 화주를 상대로 운송료를 올려달라고 요구를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처우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자신들을 고용하고 있는 회사에 대해 임금 인상 투쟁을 하면 된다. 특히 미국의 화물차 기사 노조는 노조 가운 데서도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 기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기사들의 처우를 높이기 위해서는 운송료를 인상시켜야 하는데, 이것은 운수회사가 해야 할 일이다. 대형 운수회사는 화주들과 운임협상을 할 때 강력한 교섭력을 갖는다. 바로 이 사업구도상의 차이가 운임 수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화주가 대형 운송회사를 상대로 운임을 결정하는 경우와 수많은 영세 자영 차주를 상대로 운임을 결정하는 경우를 비교할 때, 운임이 어떠한 각각 어떤 수준으로 결정될지는 뻔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화물차 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미국식의 대형 운송회사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느냐 하는 의견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쉽지 않다. 강력한 사회적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누가 여기에 반대할까? 다름 아닌 바로 화물차 기사들이 반발한다. 화물차 기사들의 입장에서는 대형 운송회사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될 경우, 자신들의 직업이 보장될 수 있을지, 그리고 직업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현재 자신의 차를 운전해서 얻는 만큼의 소득을 기대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화물운송의 사업구도가 이런 식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정부는 또 영세 개인차주를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화물자동차의 면허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대형 화물운송기업이 나오기도 어려우며, 화물운송기업들은 지입제라는 편법으로 이 규제를 우회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형 화물운송업체는 물론 대형마트 등 자체적으로 큰 물류 수요를 가진 기업들도 회사 직영 화물차 대신 지입제 차량을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입제가 장기적으로 영세 화물기사에 대한 착취구조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으로는 화물운송회사 및 영세 화물기사들 양쪽에서 이 제도를 선호하는 유인이 있다. 운송회사로서는 직접고용에 따른 제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또 노무관리, 안전관리 등의 여러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다. 그리고 지입제 기사 측에서도 아무래도 자신의 차량을 가지고 사업에 참여하므로 조금 더 높은 수입을 기대할 수 있고, 노동시간에 비례하여 수입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피고용보다는 현재의 지입제를 선호할 유인이 있다. 또 운수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리스크를 자신이 떠안음으로써 그에 대한 보상으로 약간의 수입을 더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화물자동차 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한지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그렇지만 화물운송업의 현재의 주요 플레이어들이 현재의 사업구도를 변화시키는데 따를 수 있는 위험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고, 또 "과노동 고수입"이라는 단기적인 단물을 포기하려 하지 않으며, 또 대형 화물사업 기업은 비용절감과 사업 리스크 축소라는 유인이 있기 때문에 현 체제의 급속한 변화에 소극적이다.


이렇게 볼 때, 화물운송사업은 현재의 문제가 무엇이며, 앞으로의 바람직한 방향이 무엇인지 뻔히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체제의 지속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유인이 매우 강하므로 이것이 개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이번 화물연대의 파업과 같은 사태는 몇년 주기로 반복될 수밖에 없으며, 설사 문제가 다소 개선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임시 땜질적 처방에 불과하므로 이 문제의 본질적 해결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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