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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Dec 21. 2022

지금 내게 해줄 말은 "장혀"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읽고

   

꿀짱아를 돌보는 것이 힘에 부칠 때 나는 때때로 쭈그러져 혼자 울기도 했는데, 꿀짱아에게 할머니처럼 하염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지 못하는 내 부족함에 자괴감을 느껴서라기보다는, 이제는 나에게 예쁜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서러워서였다. 어릴 때는 패악을 부려도 할머니가 예쁜 사람이라고 했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 내 마음과 팔다리와 등뼈 허리뼈가 온통 지치고 너덜너덜해져도 뭐 하나 공짜로 얻어지는 게 없었다. 할머니가 이런 나를 보신다면 뭐라고 했을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할머니는 극도로 말수가 적었던 대신 모든 것이 분명했던 분이라서 나에게 뭐라고 하실지도 금방 떠올랐다. “장한 사람이여.” P77-78   





작가가 받은 아름다운 유산을 보며 여러 번 코끝이 찡했다. 주었으나 준 줄 모르고 받았으나 받은 줄 모르게 스며든 사랑은 어딘가에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는 걸 새삼 확인하기도 했다. 그 사랑은 행복에 겨운 순간이나 바라고 원하던 것이 이루어지는 감격의 순간엔 잠잠하다가 인생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내 맘 같지 않은 사람과 상황에 지칠 때면 짜잔 하고 나타나 뭉근한 온기로 일어날 힘을 준다.     


어제 이 책을 읽으며 오늘 발표될 브런치북 결과를 떠올렸다. 전날까지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안 됐다는 예감이 강했던 터라 이 책에 나온 “근데! 거 뭐 될 필요는 없다!”는 한마디 던지고  툭 털어버리자 생각했다. 이상하리만치 기대가 없어서 그런지 딱히 실망스러울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응모한 이상 가능성이 0%는 아니니까 혹시라도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면 “장혀”라는 아름다운 말로 스스로를 칭찬해야겠다는 설레발스런 생각도 했다.      


조금 전 결과를 확인했다. 출품된 작품이 무려 8150여 편, 수상작은 50편. 예상한 대로 내 작품은 없었다. 이때를 위해 준비한 “거 뭐 될 필요는 없다!”는 위로의 카드를 꺼내려는데 불쑥 다른 말이 나왔다 “장해.” 똑 떨어져 놓고 뭐가 장하다는 말인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곤 여느 때처럼 노트북과 원고를 챙겨서 카페로 향했다. 간밤에 내린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다가 곧 알게 됐다. 지금 내게 마땅한 말은 “안 돼도 괜찮아. 꼭 뭐가 될 필요는 없어.” 가 아니라 “너는 장한 사람이여”라는 걸.      


실낱같은 가능성을 붙들고 어두운 벽을 더듬으며 걷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버틴다’는 말도 하루이틀이지 매일 이 짓을 하는 내가 때론 제정신인가 싶을 때도 있다. 세상에 즐비한 재미와 즐거움을 마다하고 매일 구석 골방에 나를 가두다니. 하지만 나는 이런 일상을 선택했고 그것에 책임을 지고 있다. 매일 그 일상을 반갑게 만나고 소소하지만 몇 줄의 작은 성취를 쌓아 간다.     

브런치북 심사 출판사들의 소감을 읽다가 “작가지망생과 작가를 나누는 기준은 수상이나 출간 여부가 아닐 것이다. 계속 쓰는 시도가 작가를 만든다”(시공사)라는 문장을 발견했다. 쓰는 사람이 작가라고 쉽게 말하면서도, 소박하지만 내 책을 한 권 만들고도, 나는 끊임없이 뭐가 되고 싶었나 보다. 그것이 무엇인지 여전히 희미하지만, 계속 쓰는 시도만큼은 멈추지 못할 테니 일단 써보자. ‘거 뭐가 될 필요’는 없지만 ‘무언가 만드는 애씀’은 계속되어도 좋지 아니한가.    



#나의아름다운할머니#심윤경#사계절출판사#브런치북출판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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