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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Jul 18. 2022

연필을 벗삼아 오르는 산

<권수정 산문집>을 읽고




권수정 작가의 일상을 보아온지 꽤 오래됐다. 처음엔 작가의 책 리뷰에 끌려 구독하듯 읽게 되었는데 그렇게 한참 읽다 보니 사는 곳과 직업, 졸업한 대학과 독립출판작가라는 것까지 얼결에 알게 됐다. 그 조각들을 이어 붙이니 작가의 말처럼 '평범하게 사는 데에 성공한 특별한 사람'이 그려졌다. 자연스레 그분의 책이 궁금해져서 독립서점에 방문할 때마다 찾아보았지만 참 이상하게 연이 닿지 않았다. 잊지 않으면 언젠가 읽게 될 거라 느긋하게 마음먹은 사이,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다.


그러다 지난 6월 서울 국제도서전에서 '다시, 저자란 무엇인가?'라는 특별 전시에 이 책이  포함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책을 아직도 못 읽었구나, 아차 싶었다. 그러다 무슨 우연이 작용했는지 중복 구입한 책을 나눔 한다는 작가의 피드를 보게 됐다. 읽는 속도가 느려지면서 나눔이나 협찬 책은 패스해왔는데 그날은 뭐에 홀린 듯 서둘러 댓글을 달았다. 나눔 하는 책은 읽을까 말까 고민 중이었지만 혹시라도 연결된다면 작가님께 이 책을 구입하려는 꼼수이자 우연을 가장한 운명(씩이나)에 대한 기대였다. 결과는 성공. 오랜 시간이 흘러도 만나게 될 책과는 반드시 만난다.


작가님의 엽서와 함께 도착한 책의 첫인상은 ‘다부짐’이었다. 생각보다 작은 판형이 독립출판물의 느낌을 물씬 풍겼지만 표지 디자인만큼은 기성 출판 못지않게 세련돼 보였다. 작가 소개나 목차의 나열에선 힘을 쭉 뺀 여유가 느껴졌지만 첫 꼭지 ‘무항산 무항심’부터 촘촘하게 이어지는 문장에선 공들여 매만진 품이 보였다.


나의 오랜 뜸 들임 때문에 제법 오래전에 쓰인 책을 읽게 되었지만 좋은 책이 언제나 그렇듯 낡은 느낌도 들지 않았다. 당시 순천의 아파트 가격이랄지 공무원의 월급 사정이나 청년들의 생활비나 독립을 위한 비용에선 큰 격차를 보이지만 일상을 살뜰히 일구는 이의 피곤함이나 가족에 대한 사소한 실망과 그것을 덮고도 남을 애정은 매일 새롭고 언제나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이모에 비해 뭔가 평가절하되는 것 같은 ‘고모 사랑’에 공감하고 오래전부터 대단했던 ‘노래 부심’을 다시 확인하면서 나이다운 발랄함과 나이답지 않은 진중함을 동시에 발견하는 즐거움도 누렸다.


나 역시 독립출판물을 출간한 경험이 있어서 이 한 권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선택이 담겨있는지 안다. 그래서 리뷰에 담고 싶은 것이 많았다.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받자마자 한달음에 읽었지만 몰려드는 수많은 상념을 물리치고 걸러내느라 시간이 필요했다. 기다려주는 이 없지만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외치는 마음을 계속 응원하고 싶다. 연필을 벗 삼아 산을 오르듯 써낸 글에는 삶을 더 살만한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음(p6)을, 함께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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