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놀러 간 친구의 집에는
늘 푸짐한 음식이 기다리고 있었지
이토록 먼 스페인에서도
어머니의 환대는 거룩하구나
모두가 행복한 만찬 앞에서
터질 듯한 위장만이 훌쩍인다
뽀끼또 뽀끼또
잊을 수 없는 말
조금만요 제발 조금만요
사랑과 간절함이 교차하는 그 말
뽀끼또... 뽀끼또...
새로운 나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는 최소한의 몇 가지 문장을 외운다. 가장 먼저 공부하는 말은 당연하게도 ‘안녕하세요’. 이방인의 인사는 누구에게나 호감과 호기심을 갖게 한다. 영어권 나라에서는 감흥이 적지만 비영어권이거나 외국인이 적은 곳일수록 현지인의 반응은 뜨거워진다. 우리에게 낯설고 먼 언어로 인사를 건넬수록 그들도 더 신기한 것이었다. 두 번째는 ‘감사합니다’. 호의와 보답을 표하기 위한 가장 좋은 말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도움받을 일이 많고 감사의 표현에는 지나침이 없기에 아끼지 않는다. 마지막은 ‘맛있어요’이다. 낯선 나라의 음식을 즐기는 것은 여행의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이므로 맛있다는 말은 빠지지 않아야 한다.
교환학생을 할 때 친해진 스페인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발렌시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어김없이 스페인어 몇 가지를 외워두었다. 몇 년 전 바르셀로나 여행 때 분명히 외웠을 것인데 어느새 아득하게 잊고 새로운 언어 같다. 올라(안녕하세요), 그라시아스(감사합니다), 무이비엔(정말 좋아요, 맛있어요). 다른 언어보다 금방 외워졌고 발음이 쉬워 마음이 가벼웠다.
교환학생 때 함께 지냈던 스페인 친구인 싼티의 집에 도착했다. 산티의 부모님도 크게 환영해 주시며 식사부터 차려주셨다. 스페인은 저녁식사를 늦게, 그리고 많이 먹는 문화가 있다. 첫날 저녁식사부터 어머니는 음식을 듬뿍 담아주셨다. 한국의 예의 바른 청년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그릇을 싹싹 비워야 했다. 요리 솜씨가 좋고 입맛에도 잘 맞아 먹을 때는 정말 맛있었지만 잠드는 순간까지도 배가 너무 불렀다. 어릴 때부터 저녁 식사는 과식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던 터라 늦은 저녁의 과식은 큰 후유증이 따라왔다.
다음날 저녁, 다시 돌아온 저녁 식사에 엄청난 양의 메인 요리를 발견했고 애피타이저로 이미 배가 꽤나 불렀던 나는 다급하게 친구에게 물었다.
“스페인어로 ‘조금’을 뭐라고 해?“
싼티가 손가락 제스처와 함께 말한다.
”뽀끼또.“
스페인어로 조금은 뽀끼또였다. 조금이라고 말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떡볶이가 연상되어 그랬는지 뽀끼또라는 말은 뇌로 직행하여 심어졌다. 접시에 음식이 나눠지기 전 다급하게 어머니에게 말했다.
”뽀끼또 뽀끼또.“
하지만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긴 접시의 양은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늘도 남길 수 없었다. 어젯밤 배부른 돼지의 고통이 생각나 먹으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어쨌든 내게 주어진 음식을 모두 해치웠고 더 먹지 않겠냐 권유하는 어머니의 말에 긍정이 없는 강한 부정과 이중 부정을 동시에 표현하며 행복한 걱정의 식사를 마무리했다.
다시 찾아온 다음 날에도 뽀끼또를 다섯 번씩이나 외쳤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외침보다 컸고 위장도 꽤 적응이 됐는지 저녁 식사의 과업을 조금씩 수행해 나갔다. 발렌시아에 도착하고 닷새가 지난날 친구와 작별의 셀카를 찍었는데 첫날과는 달리 얼굴이 굉장히 퉁퉁해졌다는 것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체중계가 없어서 잴 수는 없었지만 일주일 간 최소 3kg 정도는 찌지 않았을까.
스페인에서 오랜만에 어머니의 따스한 정을 느끼며 잠시 느꼈던 외로움도 한 짐 털어놓는다. 뽀끼또라는 단어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참 감사했습니다.
뽀끼또… 뽀끼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