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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알 수 없는 가수의 레코드

낡은 체스판

닳아버린 신문 쪼가리


그리고 소녀


반갑다. 고운 소녀.

건강하신가요. 할머니.



김순덕 할머니가 일제 종군위안부로 유괴당하는 장면을 표현한 그림


여행을 할 때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잘 가지 않는다. 예술적 지식과 흥미가 낮은 야만인에게는 어느 순간 대부분의 박물관이 비슷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고대 유적, 전쟁 무기, 전통 의상 등 비슷한 틀의 다른 양식을 가진 각각의 문화를 모두 알기엔 얕은 지식과 낮은 관심이었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은 그대가 알고 있는 모든 문화를 비교하라는 듯 전 세계의 문화를 넣어뒀었다. 이러한 배려에도 벼락치기를 한 학생처럼 퇴관 후에는 머리에 남는 것이 많지 않았다.


평소와 같이 심심한 대화를 홀로 나누며 항구를 걷고 있던 중 갑자기 마음이 들떴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지고는 한다. 명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그저 들뜬 마음을 즐기기로 한다. 한껏 오른 기분에 어디든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겨 지도를 찾아보니 도시 근처에 2차 세계대전 박물관이 있어 찾아갔다.


박물관은 깨끗하고 최신식으로 보인다. 들어가자마자 웅장한 전쟁무기와 탱크 등이 호기롭게 반긴다. 한편에는 사망자 사진 및 군인들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며 조금 숙연해진다.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만족하는 중에 한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림 속에서 누군가에게 끌려가고 있는 소녀였다. 설명을 읽어보니 놀랍게도 일제의 종군위안부 운영 사실을 알려주는 그림이다. 전시된 규모가 꽤 크고 다양하여 한국인이 아니어도 방문한 모든 사람이 충분히 관심 있게 보고 곱씹을 수 있는 정도였다.


그림 옆에는 위안부의 할머니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이 있다. 타지에서 뵈니 반가우면서도 앞서 숙연했던 마음이 다소 암연해진다. 한국에서는 뉴스에서만 보던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박물관에서 우연히 만난 소녀는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혀주었다. 자신과의 대화를 다시 이어나갈 수 있도록 내면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여행을 할 수 있는 것도, 자신과의 대화라는 사치를 부릴 수 있는 것도 우리나라가 평화롭고 그중에서도 운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들이 내전과 테러 등으로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현재도 전쟁의 소용돌이에 살고 있는 그들을 위로해 본다. 또한 뒤를 돌아볼 수 없던 전쟁의 시대에서 싸우고 이겨낸 이들에게 감사하며 그로 인해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전쟁에 쓰였던 수통 등의 용품. 수통의 디자인이 매우 친근하다. 기분 탓이겠지.
할머니의 실제 인터뷰 영상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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