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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혹시나 만약에.



짝짓기 후 쉬고 있는 사자 부부


말도 안 돼. 절대 아니야!

절대 아니라던 친구는 삐져나오는 짝사랑의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결국 들켜버렸다. 절대 잊지 않겠다던 어느 날의 약속은 안개처럼 흐려져 창연히 사라졌다.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한 날 이후 마신 술은 이미 한강을 메울 양이었다.


절대라는 강한 부정은 때때로 더 강한 긍정으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어떠한 의혹이나 의심을 받을 때마다 절대라는 말은 결백을 밝혀주고 변호해 주는 든든한 친구였다. 한치의 용납도 허용하지 않는 단어의 힘은 대단했다. 가끔 깨지는 신뢰 속에서도 언제나 믿음직스러운 단어였다. 사자 앞에 서기 전까지는.


코뿔소와 기린. 코뿔소는 표범과 더불어 가장 만나기 어려운 동물 중 하나이다. 기린은 무서울 정도로 크다.
생각보다 귀여운 하이에나와 먹을 것을 원하는 듯한 원숭이

‘게임 드라이브’는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사파리에서 오픈 트럭을 타고 야생동물을 구경하는 투어이다. 트럭은 활짝 열려 있으며 확 트인 자연을 뛰어다니는 야생동물을 보고 있노라면 꿈에서나 볼 수 있었던 신비로운 세상에 온 기분이다. 세렝게티의 가이드들은 눈이 굉장히 좋다. 100미터 이상 떨어진 곳의 나무에서 쉬고 있는 표범을 쉽게 발견할뿐더러 보호색을 띠어 바로 앞에서도 보기 힘든 토끼를 알려주기도 했다. 가이드가 저쪽에 동물이 있다고 말해줘도 한참을 봐야 탄성을 지르며 발견하고는 한다. 가이드가 저 멀리 사자를 발견한다. 언덕 위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녀석이었다.


우리 팀은 사자에게 서둘러 다가갔다. 게임 드라이브의 오픈 트럭은 어떠한 장치도 없이 100% 개방되어 있기에 다가갈수록 긴장감이 커졌다. 사자와 나의 거리는 3미터 이내. 아니 2미터 이내라도 말할 수 있으며 심지어 사자는 언덕에 있기에 나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 점프하면 너무나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거리였기에 가이드에게 위험하지 않냐고 물어봤고 가이드가 대답했다.


“사자는 절대 트럭 안으로 들어오지 않아. 네가 차에서 나가지만 않는다면 그 안은 안전해”


가이드는 Never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확신에 차 말했다. 살면서 never라는 말이 그렇게 의심스러운 날은 없었다. 정말일까? 사자가 조금 배고파 보인다. 게다가 사진에 나와 사자를 함께 담기 위해서는 뒷모습이 보일 텐데 고양잇과는 등을 보이면 덮치는 것이 본능이 아니었던가!


혹시? 설마?


포기할 수는 없다. 가이드의 믿음직한 호언과 절대라는 단어의 힘을 믿어보기로 한다. 용기 있게 셀카봉을 잡고 몸을 돌렸다. 사자의 시선을 내 쪽으로 향한다. 카메라로 비치는 사자의 시선이 나인지 카메라인지 모르겠지만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찰칵’ 사진을 어서 찍고 확인해 보니 나의 표정이 어지간히 졸아있다. 그래도 인생 사진을 찍었다는 것에 만족해 본다. 착한 사자야 고맙다.


사진을 실컷 찍고 여유롭게 사자를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 소식이 퍼졌는지 트럭 여러 대가 여기저기서 몰려왔다. 십여 대의 트럭이 좁은 길로 몰려드는 바람에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났다. 사자 3마리가 바로 옆에 있는데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더니 골목길에서 사고 난 듯 태연하게 서로의 부딪힌 부분을 확인한다. 사자에게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당당한 모습에 감탄하는데 더 놀라운 것은 드라이버와 가이드가 차를 확인하는 동안 사자가 슬금슬금 도망가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리면 사자가 공격하니 굉장히 위험하다고 했지만 현지인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떠나는 사자를 뒤로하고 사고 당사자들은 악수와 함께 신속하게 합의를 마친다. 인류가 그토록 듬직하고 멋져 보일 때가 없는 감동스러운 장면이었다. 당당함 앞에서는 사자도 줄행랑을 친다. 세렝게티의 가이드처럼 사자 앞에서도 어깨 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셀카 몇 번 찍어본 녀석인지 시선처리가 좋다
소리 주의. 거리가 상당히 가까웠다.
소리 주의
소리 주의




소리 주의. 이동하는 얼룩말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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