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사자의 서 / 라마 아나카리카 고빈다 해설
죽어 보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기에 누구도 죽음의 세계로부터 돌아온 적이 없으니, 죽음이 무엇인지 또는 사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누가 어떻게 알까.
티벳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리라
“한 사람도, 사실은 살아 있는 어떤 존재도, 죽음의 세계로부터 돌아오지 않은 자는 없다. 사실 우리는 이번 생에 태어나기 전에 무수히 많은 죽음을 겪었다.”
오히려 모두가 지난 생의 죽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이 기억상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수많은 죽음을 체험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신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기억은 대게 아주 작은 부분만 활동할 뿐이며, 우리의 의식(자아의식)이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모든 경험과 인상들은 무의식 속에 기록되고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과학으로 입증되고 있다.
명상이나 요가 수행을 통해 무의식을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그렇게 해서 무의식 속에 숨겨진 무한한 기억의 보물창고를 열 수 있다.
<티벳 사자의 서>에 담긴 심오한 가르침은 살아 있을 때 그것을 수행하고 깨달은 사람에게만 가치가 있다.
진리의 길에 입문한 자는 영적으로 거듭나기 전에 먼저 죽음의 경험을 하는 것이 가장 오래되고 일반적인 수행법 가운데 하나이다. 입문자는 새로운 영적 삶에 들어서기 전에, 상징적으로(정신적으로) 자신의 과거와 낡은 자아에 대해 죽어야만 한다.
<티벳 사자의 서>는 생의 마지막이 다가옴을 아는 사람들이나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뿐 아니라, 아직도 남은 생이 많은 사람과 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으려는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하나의 지고한 특권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노력을 통해 마음의 근본자리로 돌아감으로써 영원한 자유의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듣고, 사색하고, 명상하는 것은 제자 수업의 세 가지 단계다. 제자란 가르침을 받아 가슴속에 지니고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는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여기서 듣기란 마음을 다해 듣는 것, 신실한 믿음을 갖고 듣는 것이고, 사색한다는 것은 이런 직관적인 태도가 이성을 통해 이해로 변화하는 과정이며, 명상하는 것은 제자의 직관적 감성과 지적 이해가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서 살아 있는 실체로 탈바꿈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할 때 지적인 확신은 영적인 확실성으로 성장하며, 아는 자와 앎의 대상이 하나가 된다.
이 가르침을 통해 입문자는 죽음의 세계를 지배하게 되고, 죽음이 하나의 환영임을 이해하며,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죽음의 착각은 자신의 일시적이고 무상한 형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데서 생겨난다. 자신의 신체, 감정, 정신을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는 데서 그것이 찾아온다. 이런 동일시로부터 ‘나’라고 하는 분리된 개체(自我)가 존재한다는 그릇된 관념과 그것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만일 입문자가 내면에 있는 영원자, 진리, 불멸하는 불성(佛性)의 빛과 자기가 하나임을 깨닫는다면, 죽음의 공포는 솟아오르는 태양 앞에 구름이 걷히듯 사라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