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이 물음에 답하고자 할 때, 우리는 먼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나는 왜 소중한가?
삶의 사명이나 비전을 말하기에 앞서, 내 존재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그 어떤 다짐도 허공에 흩어지고 만다. 아무리 멋진 목표를 세워도, 그것을 향해 가는 내가 하찮게 느껴진다면 그 여정은 결국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퇴계가 말한 "하늘에 나를 맹세하는" 서명(誓命)의 길에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 본래부터 소중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기대와 기준 속에서 살아왔다. 부모의 바람, 학교의 평가, 사회가 제시하는 성공의 모형들. 이 모든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나의 가치 척도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이 어렵다. 나는 늘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며 살아왔다. 그렇게 나의 진짜 모습은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비교가 아니라, 조용한 귀기울임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에 집중하는 것이다. 퇴계는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이미 하늘의 이치가 깃들어 있다고 보았다. 즉, 우리 안에는 누구나 타고난 고유한 빛, 세상에 줄 수 있는 고유한 선물이 있다는 뜻이다.
그 빛은 성취나 역할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 속 작은 순간들에서 드러난다. 실패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려는 나의 태도, 누군가의 고통에 따뜻하게 반응하는 나의 감성, 조용히 혼자 시간을 보내며도 여전히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내면의 감각. 그것이 나의 고유한 존귀함의 증거다.
나는 소중하다. 왜냐하면 나는 느끼고, 생각하고, 실수하고, 다시 일어서며, 사랑하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깊이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사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다. 내 삶에 책임을 지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제안하고 싶다. 매일 단 10분이라도 조용한 공간에서 자신에게 질문해 보기를. 나는 어떤 순간에 가장 나다운가? 나는 무엇을 할 때 마음이 따뜻해지는가? 나는 어떤 점에서 타인과 다르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그리고 그 질문들 끝에, 이렇게 써보면 좋겠다. "나는 _________하기에 소중하다." 이 문장은 길지 않아도 된다. "나는 쉽게 울 수 있어서 소중하다." 혹은 "나는 아직 나를 잘 모르지만, 알아가려는 마음이 있어서 소중하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자기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만이, 비로소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삶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뿌리가 되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