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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Aug 02. 2022

22-5. 좋은 것을 아껴두려는 성질

Hugo Books _ 우고의 서재

좋은 것을 아껴두려는 성질


 붕어빵의 꼬리, 핫도그의 소시지, 모둠초밥 속 활어 초밥, 순댓국 속 토종순대, 기욤 뮈소 소설의 마지막 장.


 나는 분명 '좋은 것을 아껴두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 성질은 음식을 먹을 때, 소설을 읽을 때,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잘 드러난다. 한 가지 예외는 인간관계에만 존재한다. 사람은 좋으면 좋을수록 아끼지 않고 마음을 주고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이다.


 2022년 국제도서전에 방문했을 때, 그 수많은 책의 요람 혹은 무덤  속에서 이 책을 발견한 것은 단순한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평소에도 눈여겨보고 있던 그리고 꼭 방문해보고 싶었던 고스트 북스의 독립서점 부스 앞에 섰을 때, 이 책만 보였다. 내용은 하나도 보지 않고 제목만으로도 구매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책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담담한 문체로 써 내려간 에세이와 개성 있는 일러스트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역시 생활의 언어로 되어 있어, 화자의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친근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것을 아껴두려는 성질>에도 소소하지만 하나의 인격체에게는 삶의 전부인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Ⅰ. 그 바다 불꽃놀이


 '그 바다 불꽃놀이'는 살면서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해본, 바닷가에서의 불꽃놀이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서 불꽃놀이는 심지를 타고 이동한 불꽃이 화학물질을 만나 화려한 모습으로 타오르다 이내 생명을 다하게 되는 '사랑'을 묘사하고 있다.



 '우리의 파티도 이제 막을 내린다. 발하던 빛들도 수명이 다해 이젠 짙은 연기만 점점 대기 속에 흩어 놓을 뿐이다. 너와 내가 이랬던 건 아닐까? 사랑이란 게 늘 불타오를 수만은 없듯 서로 다투고 차가워지고 어둠이 그사이를 덮어놓던 순간들 속에서 어떻게나마 처음의 빛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던 시간들. 같은 부분을 보고 만났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서로의 다른, 너무나 다른 부분들만 찾을 수밖에 없었던 그 시간들. 그리고 그 순간들이 만들어낸 지금에야 우린 사랑을 했었던 게 아니라 그저 불꽃놀이를 했을 뿐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 둘뿐만이 아니라 주변까지도 환하게 밝혀주었던 그 빛과 환호성이 이젠 짙은 무거움이 가중된 대기 속에서 붉게 그리고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듯 모습을 감추고 있다. 서로의 마음속에 남은 옛 추억들도 이제 곧 화약의 냄새처럼 천천히 그 모습을 지워가겠지? 어둠 속 자극이 되었던 빛의 잔향처럼 은은히 눈앞을 아른거리다 천천히 사라져 가겠지? 내가 지폈던 처음의 그 불길이 너라는 심지와 만나 천천히 함께 타들어 갔던 무렵부터 이미 우린 곧 사라질 순간을 맞이할 운명이었음을 깨달은 지금에서야 애초에 우린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음을 느낀다. 그랬다면 우리의 빛, 소리, 냄새 모든 것들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었겠지.


 사랑을 불꽃놀이를 인용해 참 잘 표현한 문장이라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불 혹은 불꽃에 비유하곤 한다. 어쩌면 식상할 수도 있는 표현이지만, 그 표현을 누가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흔하디 흔한 소재도 깊은 울림을 주곤 한다. 


 우리의 가슴 한편에 영원히 남아 있을 어린 날 혹은 지난날의 바다, 불꽃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기억이 이 글에 생명을 선사하는 건 아닐까.


 Ⅱ. 좋은 것을 아껴두려는 성질


 이 책의 제목과 같은 글이다. 많은 사람이 나처럼 그리고 화자처럼 '좋은 것을(좋아하는 것을) 아껴두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묘한 동질감과 함께 내가 유별난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안도감이 든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의 끝을 최대한 늦게 마주하고 싶어 한다.


 붕어빵을 먹을 때도 꼬리 부분의 바삭함이 좋아, 머리 부분부터 천천히 맛을 본다. 꼬리 인근에 남아 있는 소량의 팥과 함께 바삭한 반죽 부분을 씹을 때면, "이 맛에 붕어빵을 먹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핫도그도 마찬가지다. 밀가루 반죽 부분과 소시지를 함께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도 100% 존중한다. 하지만 나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두 이질적인 식감을 따로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핫도그를 처음 접했던 어린 날의 그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랬다.


 취미 생활에서도 비슷하다. 책을 읽을 때, 특히 소설을 읽을 때는 결말이 다가오는 순간을 가장 싫어한다. 혹자는 결말을 빨리 읽고 싶어서 몇 시간 만에 책을 완독 해버리기도 한다는데,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소설이 기승전결을 가지고 있다면, 나도 '전'의 단계까지는 다른 사람들처럼 빠른 호흡으로 읽는다. 하지만 모든 것이 결정되고 해결되는 '결'의 내용은 최대한 천천히 음미한다. 마지막 10장가량을 열흘에 걸쳐 아주 천천히 읽은 적도 있다.


 이러한 성향은 '사랑'을 하는 순간에도 드러나는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그렇다고 아무나 와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니다.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 그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는 꽤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별에는 너무나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이별은 '좋은 것을 아껴두려는 성질'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후폭풍'을 격하게 오랜 기간 겪게 된다. 이별 후에도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아껴두다' 스스로 충분히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나의 일상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 책과 이 글에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고 위로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내게 이런 만족감을 주는 치즈로 나로 하여금 좋은 것을 아껴두려 하는 성질을 끄집어내었다. 가령 새싹 비빔밥을 시켜 먹는다고 하자. 맛있는 나물과 새싹이 어우러진 밥그릇을 필두로 내 테이블을 점령하다시피 한 일련의 반찬 접시들 중 나는 메인 반찬은 늦게 늦게 아껴먹으려 하는 성향을 보이곤 한다. 새싹 비빔밥 한 숟갈, 그 후에 게장 한 일... 아니야 아니야 일단 어묵부터 처리하자. 그리고 새싹 비빔밥 한 숟갈, 그 후에 내가 좋아하는 파김치 한 줄기... 아니야 아니야 일단 양파 조림부터 처리하자. 뭐... 이런 식이다. 결국 어묵이나 양파 조림으로 채워진 위는 바라고 원했던 양념게장이나 파김치를 위한 공간은 마련하지 못한 채 그렇게 위액과 함께 소화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딱 그 순산이다. 1,600mL의 맥주는 어느새 마지막 잔만이 남았고 그와 함께 내 눈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건 치즈 두 장, 맛살 한 줄 그리고 쥐포 두 조각이 전부다. 예정대로라면 맛살만을 남겨두고 함께 할 마지막 잔이겠지만 좋은 것을 아껴두려는 내 성질이 안타깝게도 치즈와 쥐포를 더 많이 남겨놓았다. 마지막 맥주 한 잔이 얼마나 버텨줄지 모르겠지만 이 잔이 비워지는 시간 동안에 남아있는 맛살 한 줄에는 절대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며, '좋은 것을 아껴두려는 성질'의 단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가끔 생각하곤 했던, 폐해를 타인의 글에서 마주하게 되니 조금은 찔리는 느낌도 떨쳐내지 못했다. 반찬 중에서도 좋아하는 것, 예를 들면 계란말이 같은 음식을 아껴두다가 다른 사람이 날름 다 먹어버린다던지, 막상 나중에 먹으려고 하다가 배가 불러서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한다던지 하는 폐해 말이다. 


 그래서 요즘, 치킨에 한해서는 닭다리를 가장 먼저 먹기로 결심했다. 가장 배고플 때,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때, 가장 좋아하는 부위를 먹겠다는 다부진 포부로 접근한 것이다. 구전되어 오는 우리나라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아끼다 똥 된다". 요즘 생각해보면 참 좋은 말처럼 느껴진다. 모든 일에는 적시와 적소가 있다. 그때를 놓치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초래되기도 한다. 좋은 것을 아껴두려는 그 고운 마음만 잘 남겨두고 조금은 더 효율적인 일상을 살아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무척이나 마음이 심란하고 몸은 디스크 손상으로 인해 고통스러울 때 읽게 되었다. 이런 류의 에세이의 가장 큰 힘은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존재한다는 위로에서부터 시작된다. 우주 속 지구, 그 안에서 외롭게 존재하는 하나의 인격체가 동질감과 감정의 공유를 일면식 없는 사람과 할 수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책을 쓴다는 것 그리고 그 책을 누군가가 읽는다는 것을 그래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올해는 유난히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머릿속에 너무 복잡해서 도저히 텍스트를 읽을 용기가 나지 않는 날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읽고 나면 마음이 좋아지고 머리도 정리가 되는데 늘 그렇듯 시작이 어렵다. 이제는 정말 그 어려운 시작을 시작해야만 할 때인 거 같다. 읽는 삶, 쓰는 삶이 내 삶을 평온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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