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goBooks_우고의 서재
어릴 적, 아빠 차를 타고 보문단지로 가족 나들이를 떠날 때면 꼭 지나치는 아파트가 있었다. 엘레베이터 없이 낮은 층 수, 적은 세대, 뜯겨 나간 페인트칠, 세로로 길게 균열이 간 벽을 가진 이 건축물은 측면에 적힌 'OO 아파트' 라는 이름만 없었다면 아파트인줄 모를 수도 있었다.
한 번은 그 아파트를 지나갈 때, "엄마, 저런 아파트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살아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엄마는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라고 즉각 나를 혼내셨다. 어린 마음에 그냥 던진 질문이었지만 그 질문은 명백한 '혐오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조남주 작가님의 <사하맨션>은 이러한 주겨환경으로 대변되는 계급사회의 어두운 면을 인물의 심리를 통해 조명해냈다. '타운'으로 불리는 한 도시국가가 있다. 이 국가는 7명의 공동총리제도를 채택해서 나라를 운영하며, 타 국가와 교류하지 않는 폐쇄적인 국가다.
그리고 그 안에 이야기의 중심지인 사하맨션이 있는데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밖에 있는 누구고 쉽게 들어올 수 없고 안에 있는 누구도 나가러 하지 않는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국사에서 사하맨션은 유일한 통로 혹은 비상구 같은 곳"이라 말한다. <본문 33p>
소설의 이야기는 '의문의 죽음'이라는 소재에서부터 시작되어 사하맨션에 거주하고 있는 인물들로 이야기가 확장된다. 각 호마다 거주하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굳게 닫힌 현관문처럼 독립적이면서도 프라이빗하지만, 알고 보면 사하맨션의 공동 정원처럼 개방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이다.
사하맨션으로 들어온 남매 진경과 도경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701호 진경 --> 214호 사라 --> 201호 만(30년 전) --> 201호 이아 --> 714호 수와 도경 --> 311호 꽃님이 할머니(30년 전) --> 311호 우미 --> 701호 진경 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인물간의 갈등과 유대는 수축과 이완을 거듭하며 하나의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소설의 묘미는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흐름을 독자 스스로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자세한 줄거리와 결말은 서펑으로 남기지 않겠다.
이 책은 우리 사회와 참 많이 닮아있다. 도시국가인 '타운'은 거주민인 L과 2년마다 거주자격을 갱신해야하는 L2로 구성되어있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사하'로 불린다. L은 의사, 교수, 교사, 공무원 등의 전문직을 L2는 그 밑에 다양한 노동직을 수행했다. 사하는 아무도 하지 않으려하는 일용직을 전전했다.
'타운'은 계급별로 할 수 있는 일이 나눠져있지만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았다. 언제든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시대는 변했다. 어떤 직업이든 선택할 수 있지만 사실상 직업은 세대간 이어진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직업은 곧 계급이 되었고 그 계급은 철옹성처럼 굳어졌다. 개천에서 나는 용들은 승천하지 못하는 이무기가 되어 땅으로 떨어졌다.
어린 시절 내가 던졌던 "저런 곳에는 대체 누가 사느냐?"라는 질문은 그 시대에서는 철 없는 아이의 순수한 질문 정도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현 시대에는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할 수준의 혐오가 판을 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OO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랑은 친구도 하지마"라는 대사가 드라마에서 나오면 시청자들이 불같이 화를 냈다. 어떻게 살고 있는 아파트로 자녀의 친구까지 통제할 수 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위 보다 더 심한 수위의 발언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것도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 말이다.아마도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들어봤을 것이다. 'OO거지', '엘사' 등의 표현말이다. 이런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며 자란 아이들이 주축이 된 사회... 나는 무척이나 두렵다.
"우리는 '사하맨션'을 바라보는 '타운'의 주민들과 같은 혐오의 눈빛과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다. 이쯤되니 의문이 든다. 도대체 누가 범죄자일까"
이런 우울한 마음에도 책을 닫으며 안도할 수 있었던 것은, 사하맨션 그리고 사하들을 대표하는 인물인 '진경'이 책의 마지막에 남긴 대사 때문일 것이다.
"당신 틀렸어. 사람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우미와 도경이와 끝까지 같이 살 거고"
이 대사는 조남주 작가님이 사하맨션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하나의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하맨션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가장 지치고 나약하게 만드는 것은 차별과 억압이 아니었다. 그들의 어려운 생활환경 또한 더더욱 아니었다. 그들을 무너지게 만드는 것은 단지 원래 자리로 돌아가 전 처럼 그대로 일상을 살아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진경'에게 "원래 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은 사하면 사하답게 살아라는 말과 같다.
기득권, 권력자는 지금의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란다. 아마 L은 L2들이 원래 자리에 있기를, L2들은 사하들이 제자리에 가만히 있기만을 간절히 원할 것이다. 어차피 위로 올라갈 수 없는 사회에서 L2들은 사하와 연대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사회적 약자끼리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서로를 혐오하고 미워하고 분열하며 갈등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진경'의 "나는 우미와 도경이와 끝까지 같이 살 거고"라는 외침은 우리 사회를 향해 연대의 당위성을 부르짖는 깊은 울림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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