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go books _ 우고의 서재
인천 로컬 매거진인 《spectacle 03. 시티 오브 누들》이 발간되었다.
이번에도 역시 텀블벅을 통해 후원을 했다.
스펙타클은 지역의 소상공인들과 협력하여 책을 배송하는 것이 아닌 각 가게에서 수령하는 방식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재단에서는 매거진을 후원한 사람들끼리 연수동에 있는 '디벨로핑룸'에서 수령하는 걸로 신청하고 하루 날 잡아 점심 커피 나들이를 하는 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스펙타클 3호는 인천의 '면'을 다루고 있다. 지역에 유서 깊고 다양한 '식' 문화가 존재한다는 건 해당 지역 출신들이 자랑스러워해도 될 정도로 의미 있다.
대표적으로 나처럼 경주가 고향인 사람들은 "경주에서 유명한 음식이 뭐야?"라고 말하면 딱히 해줄 수 있는 답변이 없다.
쌈밥? 떡갈비? 한우? 이러한 음식들이 문헌으로 경주와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확인할 수 없고 그렇다고 지역의 대표 음식으로 추천할 만큼 맛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인천에서 산 것도 햇수로 6년째가 되었는데 여전히 인천의 대표 음식 중 먹어보지 못한 것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책에도 등장하는 백령도식 냉면이 그렇다.
사실 평양냉면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날선 비난을 아끼지 않던 평냉의 시대에도 입맛 쇄국 정책을 펼쳤으니, 백령도식은 더더욱 시도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 도시의 문화를 경험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음식을 접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가면,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도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는 것이 그런 접근이지 않는가.
면은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식재료와 조리 방식이 다를 뿐 면 요리는 꼭 존재한다.
아시아 특히, 중국 문화권에서는 면은 단순히 음식으로만 소비되지 않는다. 면은 인간의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래서 돌잡이 때, 국수(혹은 실)를 놔두고 아이가 그것을 잡으면 "우리 00이 장수하겠네" 하면서 온 가족이 기뻐한다.
내가 겪은 다른 일화로는 설, 추석을 포함해 제사가 있을 때면 갓과 두루마기를 입고 나타나시던 경북 영천의 정씨 가문의 일이다.
어느 날 식사로 국수를 먹게 되었는데, 그날따라 국수를 가위로 잘라먹고 싶었다. 가위를 집어 대접에 넣고 자르려던 찰나, 밥상 위로 불호령이 떨어졌다.
"저놈이 빨리 죽으려고 작정했구나!"
그렇다. 면을 잘라먹으면 장수하지 못한다고 어른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돌아보면 가위로 잘라먹는 것보다 불호령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게 훨씬 더 내 수명을 줄어들게 한 것 같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면은 엄마가 해준 잔치국수다. 내가 아무리 따라 하려고 해도 그 맛이 나지 않는 딱 하나가 바로 국수다.
타지 생활에서 지치고 힘들고 외롭고 고향이 그리울 때, 자연스레 엄마의 국수가 생각난다.
대구 학교에서, 평택 부대에서, 부산 회사에서, 스페인에서, 인천 직장에서. 여전히 엄마의 정성만큼 쌓여 올라가는 고명이 그립다.
이처럼 아스라이 떠다니는 각자의 추억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리고 그 과거를 소환시키는 매개가 바로 '면'이다.
기억들을 다시금 현재의 내 앞에 나타나게 해주는 것들을 좋아한다.
이별의 아픔을 잊기 위해 들었던 노래, 바라고 바라던 스페인에 도착했을 때 처음 맡은 향기, 몸과 마음이 너무 지친 날 혼자 영화관에서 봤던 영화.
이러한 기억들이 모이고 모이면 그게 동시대의 문화가 되고 예술이 되는 과정이 참 인간답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번 《Spectacle 03. 시티 오브 누들》은 그래서 참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책이었던 것 같다.
뜨근한 국물 위로 퍼지는 하얀 연기 그리고 코 끝에 스치는 고기 육수 냄새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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