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로 만나는 일본8: 시코쿠 마츠야마(松山)
마츠야마 시내와 도고온천을 운행하는 명물인 봇짱 열차.
일본 4대 섬 중 시코쿠(四國)가 가장 작다. 시코쿠는 10세기 헤이안시대에 확립된 옛 행정구역에서 4개의 율령국(律令國)이 있었기에 이름지어졌다.
근대에는 난카이도(南海道)라고 불렀으나, 율령국 체제가 오늘날 4개 현과 일치한다. 시코쿠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현은 에히메(愛媛)이다. 다른 큰 섬인 혼슈, 규슈와 교류하기 가장 가까운 지리적 이점 덕분이다.
그래서 조선, 기계, 화학, 제지 등을 기반으로 경제 규모도 가장 크다. 에히메현의 현청 소재지이자 최대 도시가 마츠야마(松山)다.
길을 잘못 들어가 마츠야마성보다 먼저 방문했던 반스이소.
마츠야마는 1603년 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 1563~1631)가 마츠야마성을 쌓으면서 이름지어졌다. 왜 마츠야마라고 명명됐는지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 마츠야마성이 있는 산에 소나무(松)가 많이 있었다.
둘째, 요시아키가 모셨던 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의 일족인 마츠다이라(松平)에서 소나무 글자를 따서 붙였다.
이런 유래로 인해서 마츠야마는 마츠야마성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필자가 2023년 7월 8일 동안 시코쿠에서 성과 천수각을 주제로 테마여행을 했던 계기이기도 하다.
로프웨이터미널 앞에 세워진 가토 요시아키의 동상.
가토 요시아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끼던 7명의 근위 무사 중 하나였다. 따라서 도요토미가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관백에 오른 뒤 임진왜란을 일으키자, 수군으로 참전했다.
하지만 일본 수군은 이순신 장군에게 연전연패하다가, 원균이 삼도통제사가 되서야 대승을 거두었다. 이때 요시아키도 공을 세웠다. 도요토미 사후 요시아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지지파가 되었다.
1600년 세키가하라(關ヶ原) 전투에서 이에야스의 동군이 승리하자, 요시아키는 전공을 인정받아 20만 석의 다이묘(大名)가 됐다.
필자는 방문해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고 내려왔다.
당시 에히메는 이요(伊予)라는 옛 율령국 이름으로 불렸다. 이요 북부에는 다이묘 토도 타카토라(藤堂高虎)가 있었다.
타카토라는 축성의 달인이라 불릴 만큼 성을 잘 쌓았다. 마침 타카토라도 20만석의 다이묘가 되어 성을 짓기 시작했다. 요시아키는 타카토라와 사이가 안 좋았다. 그래서 타카토라와 경쟁하듯 성을 건설했다.
25년이 흘러 마츠야마성의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였다. 에도막부의 2대 쇼군인 도쿠가와 히데타다(德川秀忠)로부터 영지를 아이즈(會津)로 옮기라는 명령을 받았다.
쪼갠돌 쌓기인 우치코미하기로 쌓아 아주 견고한 석벽.
비록 아이즈에서 40만 석의 다이묘가 될 수 있으나, 요시아키는 심혈을 기울여 쌓은 마츠야마성을 두고 가기 아쉬웠다. 핑계를 대며 고사했으나 소용없었다.
요시아키는 죽을 때 “아이즈를 내놓고 옛 영지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후대인은 이런 요시아키를 추모하여 마츠야마성으로 올라가는 로프웨이터미널 앞에 동상을 세웠다.
로프웨이는 1955년에 완공됐고 길이 327m에 달한다. 바로 옆에 건설된 리프트와 함께 마츠야마성의 방문객에게는 필수 운송수단이다. 필자는 리프트를 타고 마츠야마성으로 올라갔다.
혼마루를 둘러싼 석벽은 최대 높이가 17m에 달한다.
마츠야마성은 해발 132m인 산 정상에 중심 건물군인 혼마루를 지었다. 그리고 석벽이 산 허리를 따라 평지까지 이어져서 휘감는 구조다.
혼마루가 정상이나 언덕에 지어졌기에 해안이나 강변의 평지에 있는 보급로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적을 평지부터 방어해야 했다. 따라서 성벽을 이어 쌓았는데, 평지에서 보면 석벽이 산을 타는 모습이라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라고 불렀다.
연곽식(連郭式) 평산성(平山城)이라고도 하는데, 전국시대에 유행했다. 현재는 마츠야마성과 히코네(彥根)성만 남았다.
쓰쓰이몬은 혼마루에서 가장 큰 문이자 핵심 방어선이다.
리프트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면 높고 넓은 석벽이 있다. 혼마루의 석벽으로 최고 높이가 17m에 달해 적의 공격을 대비했다.
대부분 돌을 가공해서 쌓아올리는 쪼갠돌 쌓기인 우치코미하기(打込み接ぎ)를 채택했다. 일부는 돌끼리 밀착되도록 가공한 깎은돌 쌓기인 기리코미하기(切込み接ぎ)를 채택했다.
원인은 1784년에 큰 벼락이 떨어져 천수각이 불타버린 데에 있다. 에도막부가 복원을 허가해 주었으나 재정난으로 공사가 계속 미루어졌다. 1854년에야 천수각을 재건하면서 일부 석벽을 기리코미하기로 복원했다.
천수각이 있는 스지가네몬으로 올라가는 길.
혼마루 안에는 여러 문이 있는데, 쓰쓰이몬(筒井門)이 가장 크고 견고하다. 혼마루를 정면에서 방어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쓰쓰이몬 뒤편에는 석벽이 있어 적이 진입해도 위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 가토 요시아키는 마츠야마성의 완성을 보지 못 했다. 요시아키의 후임으로 온 다이묘 가모 다다토모(蒲生忠知)가 니노마루(二の丸)를 완공하면서 대역사가 끝났다.
그러나 다다토모는 에도에 가서 일정 기간 머무는 참근교대(參勤交代)에 따라 교토를 지나가다 병사했다. 게다가 후사가 없어 대도 끊겼다.
안뜰에서 바라본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지어진 마츠야마성 천수각.
결국 마츠야마성을 본격 사용한 다이묘는 다다토모의 후임인 마츠다이라 사다유키(松平定行)이었다. 그 뒤 마츠다이라 가문은 메이지유신까지 마츠야마성에서 살았다.
천수각 등 중요 건축물이 집중된 혼단(本壇)은 혼마루 광장보다 8m 높게 쌓았다. 출입구도 스지가네몬(筋鐵門) 밖에 없다. 이는 성의 마지막 방어선이기 때문이다.
본래 천수각은 5층으로 지었다. 하지만 다시 지으면서 3층의 탑형으로 바뀌었다. 재건되기 1년 전에 미국 페리 제독이 함포 외교를 일으키면서 천수각은 더 이상 높여지지 않았다.
천수각 3층에서 내려다 본 마츠야마성과 마츠야마시의 전경.
천수각은 연립식으로 대천수, 소천수, 망루 등을 사방에 배치하고 와다리야구라(渡櫓)로 연결하는 구조다. 또한 건물에 둘러싸인 안뜰이 있다.
현재 마츠야마성은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7성 중 하나이자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된 12천수에 속한다. 필자가 마츠야마성을 방문한 날 해프닝이 있었다.
구글 지도가 입구를 잘못 안내해 반스이소(萬翠莊)를 먼저 갔던 것이다. 따라서 그 날 첫 방문객이 되어 둘러봤다. 반스이소는 1922년 히사마쓰 사다코토(久松定謨)가 마츠야마성 아래에 지은 프랑스 양식의 저택이다.
도고온천 근처에 있는 미나쿠치주조의 전시장.
사다코토는 20세기 전반기 일본 귀족이자 육군 중장까지 지냈던 지방 토호였다. 군인이었을 때 프랑스 주재무관으로 오랫동안 근무했다.
그래서 은퇴한 뒤 당시로써는 시코쿠 최고의 사교 장소를 고향인 마츠야마에 축조했다. 반스이소도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마츠야마에서는 2박을 했는데 저녁마다 미컁주(みきゃん酒)을 마셨다.
첫날은 돈키호테 쇼핑몰에서 우연히 샀고, 둘째날은 마츠야마성에서 도고(道後)온천을 가는 도중 술전문점에서 구입했다. 미컁은 귤 모양의 강아지로 에히메현의 마스코트다.
마츠야마공항에 있는 에히메현의 마스코트 미컁과 귤 주스 판매점.
에히메현은 일본의 대표적인 귤 산지다. 그렇기에 마츠야마공항 청사부터 주스와 술을 판매한다. 미컁주는 100% 감귤에 에히메의 전통 증류주인 쇼츄(燒酎)를 더하여 브렌딩한 술이다.
처음 마시면 단맛과 신맛이 균형을 이룬데다 비타민 C가 풍부해서, 맛있는 주스를 마시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알코올 도수가 8%에 달해서 많이 마시면 살짝 취한다.
사실 필자는 도고온천 근처에 있는 미나쿠치주조(水口酒造)를 방문해서 비싼 세이슈 2병을 샀지만, 이상하게 입맛이 당겨서 이틀 연속 미컁주를 대작했다.